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前 대학병원장의 자작시, 김동진 작곡가의 유작으로 출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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前 대학병원장 자작시→명품 가곡 재탄생
경희의대 장성구 교수, 故 김동진 선생 미발표곡 추모앨범 제작 마쳐

데일리메디 / 2014.02.17 06:30 입력 


[화제]햇살은 눈부시게 비춰졌지만, 아직 겨울 추위가 가시지 않은 2월의 어느 날. 얼그레이 홍차를 들고, 방문한 한 원로 교수의 방에는 잔잔한 가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안내를 맡았던 직원의 “홍차, 괜찮으십니까?”라는 물음에 함박웃음과 함께 무릎을 탁 치며 “그럼, 당연히 괜찮지”라는 호탕한 대답에 소탈한 성품이 그대로 느껴졌다.

//## ▲장성구 원장의 앨범 프로필 사진


지난 2009년 작고한 우리나라 작곡계 거목 김동진 선생의 유지를 받들어 최근 가곡집 ‘초심(初心)’을 세상에 선보인 경희의료원 장성구 교수(비뇨기과)의 인터뷰는 그렇게 시작됐다.

김동진 선생과 장성구 교수 인연은 2000년 진찰실에서 처음 맺어졌다. 경희대 음대 교수로 정년퇴임을 한 김동진 선생은 노년기 흔한 배뇨 관련 치료를 위해 장성구 교수를 만나게 됐다.

대가(大家)는 대가를 알아본다고 했던가. 장성구 교수가 80여 편의 시(詩)를 창작했다는 사실을 듣고, 김동진 선생은 곡을 붙여주겠다는 제안을 했다.
 
장성구 교수는 “처음에는 너무 부담스러워 손사래를 치며 조심스럽게 사양했다”며 “나중에는 왜 시를 보여 달라고 요청하는데 갖고 오지 않느냐고 역정을 내실 정도”라고 회상했다.

김동진 선생의 완고한 뜻을 꺾지 못한 장성구 교수는 시를 건넸고, 김동진 선생은 두 달이 지난 후 자작곡이 담긴 악보를 들고 왔다. 전통 방식의 작곡을 고집했기 때문에 큼지막한 오선지가 진료실에 놓여졌다.

장성구 교수는 “병원 내 장비로는 복사가 불가능해 외부 복사업체에 맡겼다”며 “그렇게 2장의 악보를 어떤 날은 본인이 원본을, 어떤 날은 내게 원본을 건네며 ‘이제 이 곡들은 세상에 둘 밖에 없는 우리만의 보물’이라고 웃으며 말씀하시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고 말했다.
 
이번 앨범[사진]에는 총 12편의 가곡이 실렸다.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성악가들이 대거 참여해 앨범이 탄생했다.
음반회사와 성악가와의 접촉은 경희대 음대 학장을 역임한 김영목 교수 역할이 컸다.

김영목 교수는 마침 제자가 대표로 있던 음반회사 ‘Strad’를 적극 추천했다. 이처럼 뜻 깊은 가곡이 세상에 빛을 보지 못하는 것은 너무 안타까운 일이라고 조언했다.

장성구 교수는 “생전에 김동진 선생은 출생신고 후 주민등록번호를 받는 것처럼 음반 발표 후 저작권 등록까지 꼭 마칠 수 있기를 희망했었다”며 “마침 지난해가 김동진 선생 탄생 100주년이었다. 이에 따라 김영목 교수 등 관계자들과 함께 작업을 시작하게 됐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이어 “발음이 어려운 관계로 성악가들이 우리말 가곡은 기피하는 장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그러나 김동진 선생의 미발표곡이라는 이야기에 선뜻 참여 의지를 보여주는 이들을 보며, 성악가들의 전문성과 열정을 새롭게 보는 계기가 됐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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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월드컵 환희가 담긴 ‘북소리’ 등 명곡 담겨

장성구 교수는 고인이 작고하기 전에 음반작업을 하지 못한 사실에 안타까움을 피력했다. 10번 트랙에 담긴 ‘북소리’의 경우 김동진 선생이 밤을 새며 완성한 곡이다.

우리나라 민족이 가진 애잔한 역사에 비춰 희망을 노래한 이 곡은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진출 확정이 된 다음날 탄생했다.

장성구 교수는 “보통 출근을 7시쯤에 하는데 그 날은 김동진 선생이 나보다 먼저 진료 대기실에 도착해 있었다”며 “고령인 관계로 어디 편찮으셔서 일찍 나오신 줄 알고 깜짝 놀랐다”고 지난 시간을 떠올렸다.

그는 “알고 보니 월드컵 4강의 전율을 그대로 곡에 담기 위해 밤샘 작업을 한 후 바로 진료실로 찾아오셨던 것”이라며 “시도 그렇지만, 작곡 역시 한 번 영감이 떠오르면 그 때 바로 작업을 해야 그 느낌이 그대로 산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밝혔다.

"시·음악·그림 창작 행위는 '영혼의 영양제'"

의대 교수로 재작하면서 시를 창작하고, 평론을 제작하는 등 활발한 문예활동을 펼치는 장성구 교수. 그에게 예술과 인문학은 어떤 의미일까.

장성구 교수는 “고등학교 때 문예창작반 활동을 할 정도로 관심이 많았다”며 “문과였지만 당시 경희대에서 최초로 문과, 이과 교차 지원이 가능해 의대 진학을 할 수 있었다”며 웃었다.

그는 “의사는 천직이다”며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의료는 인간의 생명을 다루는 신성한 영역이기 때문에 영혼을 즐겁게 하는 행위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의료계 후학들에게 하고 싶은 조언을 묻자 장성구 교수는 “시, 음악, 그림 등 본인에게 맞은 창작 활동을 하는 것은 분명 도움이 된다”며 “날이 갈수록 의료계 환경이 척박해져 가고 있지만 영혼만큼은 풍요롭고, 순수한 의학자로 성장할 수 있길 고대한다”고 소박한 바람을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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