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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곡이야기

젊은 두 교사의 영원한 연인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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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그라미 그리려다 무심코 그린 얼굴/ 내 마음 따라 올라갔던 하아얀 그때 꿈을/ 풀잎에 연 이슬처럼 빛나는 눈동자/ 동그랗게 동그랗게 맴돌다 가는 얼굴'  (심봉석 시/신귀복 곡)

「얼굴」은 사춘기 소녀가 풋사랑 소년의 모습을 생각하는 노래 같다. 소녀취향의 로맨티시즘과 수줍고 풋풋한 사랑의 감정이 표출돼 있다.그러나 실상은 소녀도 아니고 사춘기도 오래전에 안녕을 고한 두 청년 교사가 즉흥적으로 나름의 구원의 여인상을 머리 속에 상상하며 만들었다.

때는 1967년 어느 날, 두 사람은 서울 동도공고에서 교편을 잡고 있었는데 이 학교 교무실이 「얼굴」의 요람이다. 아침에 교무회의가 열리고 있었는데 교장의 말이 몹시 지루하게 느껴졌다. 지리함에 지친 생물교사 심봉석씨가 먼저 소근대며 말했다.
“교장 얘기 따분한데 서로 애인 생각하면서 노래나 하나 지읍시다. 제목은 ‘얼굴’이 어떻습니까?”
“좋죠. 심 선생이 가사를 짓고 나는 곡을 지어서 나중에 연결하면 좋겠군요.”
음악교사 신귀복씨도 대찬성이었다. 두사람은 열심히 메모지에 작업을 시도했다. 드디어 조회가 끝난 후 두 교사와 동료교사 10여 명이 음악실로 갔다. 악보에 심씨의 가사를 써 놓고 피아노를 쳤다. 대부분 교사들은 썩 좋다고 칭찬했고, 어떤 교사는 “맹물(생물)교사가 무슨 가사를 쓰느냐”며 농담도 걸었다.

심씨는 좀더 멋진 노래를 만들고 싶어서 보름 동안을 매일 퇴근 후 소공동 모 음악다방에  두시간씩 앉아 다듬었다. 1절 마지막 구절의 ‘맴돌다’를 ‘맴돌곤 하는 얼굴’로 바꾸면서 멋을 부리는 데만 일주일 동안을 고심했다.
신귀복씨는 작곡 후 “누구 얼굴을 그리워 하며 작곡했느냐”는 추궁을 부인과 친지로부터 귀찮을 정도로 많이 당했다고 한다.
이런 추궁은 심씨도 마찬가지여서 후에 결혼한 부인에게 곤욕을 치렀다고 한다.
심씨는 이렇게 해명한다.
“양정고교를 다닐 때 매일 우리집 앞을 지나가던 동그란 얼굴의 여학생이 있었지요. 말도 한 번 건넨 일이 없고 이름도 모르는 소녀였으나 매일 만났으므로 통통한 얼굴이 인상에 남았나 봅니다.”
억지로 얼굴의 모델을 찾으라면 그 여학생의 이미지를 닮은 허구의 여인이 모델이라는 설명이다. 그때 신씨는 KBS라디오의 ‘노래 고개 세 고개’프로의 심사위원으로 있었는데 담당 프로듀서에게 「얼굴」의 악보를 보여주었다. 그 노래가 방송을 타고 전국에 소개되자 여학생들의 펜레터가 쇄도했다. 악보를 보내 달라는 요청으로 3개월간 무려 8,000매를 복사해서 우송했다. 일본의 한 교포는 청와대로 편지를 보내 악보를 요청하기도 했다고 한다.

1937년생인 신씨의 고향은 경기도 안성군 안성읍 구포동 184의 2. 안성초등학교 옆집이다. 고속버스터미널에서 한참 걸어 깨끗한 거리에 서 있는 학교를 끼고 왼쪽으로 돌아 뒤쪽에 붙은 몇 채의 작은 집 틈에 그의 생가가 있다. 지금은 학교와 그의 생가 사이가 담으로 막혀 있는데 그가 어릴 땐 담이 없었다.
“집 마당을 지나면 곧장 학교 운동장이 되었지요. 30초면 등교를 했으니까요.”
학교는 그의 놀이터이기도 했다. 학교는 지대가 좀 높은데 그의 생가와 학교사이엔 축대가 없이 언덕에 호박 등을 심어 경계를 삼고 그리로 올라서 학교로 갔다.
학교 수업이 끝나도 그는 계속 남아서 놀고 오르간도 혼자 쳐 보았다. 매일 혼자 아무렇게나 두들겨 보며 신기해했고 점점 흥미를 느꼈다. 교과서에서 배운 노래도 혼자 흉내 내어 쳐보곤 했다. 매일 연습을 하는데 나중에 음악을 아는 담임 선생 눈에 띄어 그에게 악보 읽기 등의 기초 이론을 지도 받았다.
그의 생가는 지금 방이 5개 되는 ㄷ자형의 낡은 기와집으로 여러 가구가 옹기종기 산다.
카톨릭집안에서 자란 그는 초등학교 졸업 후 천주교 학교인 안법중고교에 진학해서 밴드부에 들어가 트럼펫을 불었다.
안법교교 재학시절 군청의 의뢰로 작곡가 이흥렬이 ‘안성의 노래’를 작곡한 일이 있었다. 작곡 후의 멜로디는 안법교교 밴드부가 시연을 했다. 이 학교 밴드부는 KBS주최 전국관악경연대회에서 여러 번 우승을 한 밴드의 명문이다. 학생들은 힘껏 연주를 하고 제법 잘했다고 자신에 차 있었는데 이흥렬은 박자가 안 맞는다고 노래로 불렀다. 노래는 과연 학생들이 냈던 소리와는 달리 절묘했다. 신씨는 그에 감동을 받고 “나도 저런 훌륭한 작곡가가 되고 싶다: 고 결심했다.

신씨의 첫 작품은 1966년 ‘말하기 좋다 하고(정철 시)’. 이 곡도 KBS합창단을 통해 방송으로 소개되었다.
「얼굴」은 그의 두 번째 작품이자 대표곡이다. 1983년까지 김성태편 교과서에 수록됐고 TV드라마 배경음악으로 사용돼 대중적으로 애창되기에 이르렀다. 특히 여고생과 여대생들의 애창곡이 되기도 했다. 멜로디가 쉽고 콧노래로 부르기도 쉽다. 「얼굴」에는 에피소드가 많다. ‘자신이 작사.작곡’했다는 가짜가 수없이 나타나 직접 그들을 만난일도 있다고 한다. 관악구 모학교 학생들은 ‘우리 학교 교감선생님이 작사,작곡 둘 다했다고 말씀하셨다“면서 주장하기도 했다. 어느날엔 검문소에서 신분증이 없어 곤란을 겪었을때에 「얼굴」을 불러주고 작곡가라고 말하고 통과하기도 했다.

한편 작사자 심봉석씨는 현재 상봉교역이라는 조그만 의류수출업체를 경영하고 있다. 그는 충남 공주군 탄천면 안영리에서 1941년에 태어났다. 서울 사대 생물과를 졸업하고 여러 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얼굴」의 작사 당시는 미혼이었으나 그 후 서울 사대 동기동창생과 결혼했다.  신촌의 어느 술집 여주인은 「얼굴」의 열렬한 팬이어서 지금도 술값을 안받는다고 한다. 한때 대중가요로 편곡돼 불리기도 한 「얼굴」은 그래서 대중가요로 아는 이도 있지만  결코 대중가요는 아니라고 두 사람은 이구동성으로 강조한다.

이향숙 '가곡의 고향' 에서 발췌.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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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들 성원 힘입어 생애 첫 콘서트 해요" / "얼굴"의 가수 윤연선 
 
'동그라미 그리려다 무심코 그린 얼굴/ 내 마음 따라 올라갔던 하아얀 그때 꿈을/ 풀잎에 연 이슬처럼 빛나는 눈동자/ 동그랗게 동그랗게 맴돌다 가는 얼굴'
마음 속에 갈무리해 두었던 사람을 뭉클 눈 앞에 떠오르게 하는 노래 '얼굴'. 시간이 흘러도 노래는 계속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지만 정작 노래를 부른 가수를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 주인공 윤연선(51). 서울 홍익대 앞에서 까페 '얼굴'을 운영하며 오랫동안 꽁꽁 숨어 지낸 그가 다음달 11일 오후 8시 부산 남구 가람아트홀에서 작은 콘서트를 연다.
그로서는 처음인 이번 콘서트는 아직까지 '얼굴'을 기억하고 사랑하는 팬들이 만들어 준 무대다. 양희은의 노래 선생님으로 포크송의 대부인 김의철(51)씨가 기타 연주와 노래지도까지 맡고 나섰다. "다시 노래한다는 게 두려워 여러 번 제의를 거절했지만 팬들의 격려에 '못이기는 척' 서는 무대"라고 소개한 그는 "지난날을 회상하는 따뜻한 시간으로 만들어 볼 계획"이라고 부끄러운 듯 말했다. 이번 콘서트에서 그는 당시 금지곡이었던 '고아' '강매' 등의 노래도 들려준다.
윤씨가 지구레코드에서 '얼굴'이 담긴 두번째 독집 앨범을 낸 것은 1975년. 명지대에 다니며 대학연합 노래동아리에서 활동하던 그는 우연히 '얼굴'이라는 노래에 대해 듣게 됐고 무작정 작곡자 신귀복(66)씨를 찾아가 "이 노래를 내가 부르게 해 달라"고 졸랐다.
'얼굴'에는 수 많은 아름다운 이야기가 담겨 있다. 노래가 태어난 곳은 67년 서울 마포구에 있는 동도중학교 교무실. 교무회의의 지루함을 견디다 못한 음악교사 신귀복씨는 옆 자리에 앉아 있던 심봉석 교사에게 "내가 곡을 만들 테니 애인을 생각하며 가사를 만들어보라"고 제안을 했고 그 둘이 교무회의가 끝나기도 전에 '얼굴'을 완성했다. 심씨는 얼마 후 '얼굴'의 진짜 주인공이었던 애인과 결혼에 골인했다. "당시 여고생들이 까페에 찾아와 내 노래를 매개로 결혼에 골인했다며, '사랑을 이루어 주는 노래'라고 말하고 간다"고. 하지만 정작 노래를 부른 가수의 사랑은 언제쯤이나 이루어 질는지. 윤씨는 아직 미혼이다.
'얼굴'은 최근까지도 TV드라마의 배경음악으로 등장하고 있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노래가 잊혀지지 않는 이유에 대해 그는 "누구에게나 그리운 얼굴이 하나쯤 있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첫사랑에 빠진 소녀의 표정으로, 가슴에 깊숙하게 담아 놓은 누군가를 떠올리는 듯 애잔하게 노래하는 그의 수줍은 모습은 긴긴 세월조차 비켜 간 듯하다.

[한국일보] 2003-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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