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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말봉과 '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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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강서구쪽 구포대교에서 제방을 따라 내리면 1㎞쯤 자리부터 낙동강제방공원을 만나게 된다. 이 제방공원에는 중간 중간 시비와 노래비가 세워져 있다. 이는 시민의 산책길로 사랑을 받고 있는 제방의 정화와 시민정서를 북돋우기위해 1990년 초에 형성된 것이다.
제방공원 첫머리 자리에는 그리 높지않은 기단 위에 반달모양의 사면(斜面)을 가진 검은 대리석을 올리고 스테인리스관으로 관악기를 세운 양 하늘로 솟구치게 한 특이한 조각의 비가 있다.

대리석 사면에는 가곡 '그네'의 가사와 악보가 새겨져 있다. 글씨와 악보는 그네를 작곡한 작곡가 금수현의 자필이고,그 그네의 작사자는 문학가인 금수현의 장모 김말봉이고 이를 조각한 이는 김말봉의 외손자이자 금수현의 둘째 아들인 조각가 금누리다. 그러니 이 노래비는 외할머니와 아버지,외손자 3대(代)의 문학과 음악과 조각,세 장르의 예술이 어우러지게 조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노래비라 하니 금수현을 중심해서 한 말인데 이 노래비에서 바라보이는 자리에 금수현의 생가(生家)가 있어 노래비를 세운 뜻도 그러한데 영향을 준 것으로 본다.

금수현은 김해 대저동에서 1919년에 태어나서 37년 제2상업학교(현 부산상고)를 졸업하고,음악에 뜻을 두고 일본 도쿄(東京)음악대학 성악과를 졸업(40년)했다. 귀국하여서는 동래여자고등학교 교사로 있다가 경남여자고등학교 교감(45년)을 지낸 뒤 한동안 경남도립극장(부산 남포동 소재) 극장장 역할을 맡기도 했지만 다시 교육계로 돌아와 부산사범학교 교감,경남여자중학교와 통영고등학교 교장을 거쳐 문교부 편수관을 지내고 최고회의 행정 이사관 등 다방면의 활동을 하면서 영필하모닉 관현악단 이사장,음악저작권협회 이사,'월간음악'발행인 한국작곡가협회장 등 음악계를 위해 활약한 바 더 컸다.

그가 작곡가로 데뷔한 것은 그네를 46년에 발표한데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이 그네는 오늘날에도 애창되고 있고 62년에는 그네란 이름으로 '새로이사'에서 가곡집을 낸 바도 있다. 그로 보아서는 장모가 쓴 시이고 장모의 심성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그 심성에 동감 동조했던 작품이고 보니 명작을 낳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앞서 말한 노래비에 새겨진 김말봉의 그네는 다음과 같다.

~세모시 옥색치마 금박물린 저 댕기가 창공을 차고 나가 / 구름속 나부낀다. 제비도 놀란 양 나래 쉬고 보더라 // 한번 구르니 나무끝에 아련하고 두번을 거듭하니 / 사바가 발 아래라. 마음의 일만근심을 바람이 실어가네.// 로 되어 있다.

필자가 금수현을 처음 만난 것은 47년 봄이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그 당시 필자는 양산농업중학교(현 경남 양산시) 교사로 있었는데 교가가 그때까지 없었다. 당시의 교장 이항녕(李恒寧:이후의 홍익대학교 총장)이 자신이 쓴 교가 가사의 작곡을 금수현에게 부탁했다. 그에게 부탁한 곡은 이루어지고 그 사례비를 필자가 전하게 되었다.

필자는 당시 그가 교감으로 있는 경남여자고등학교로 가서 그에게 교장이 시키는 대로의 인사를 하고 봉투를 내밀었다. 그는 아주 반갑게 나를 맞으면서도 다 같은 학교 사이에 이럴 필요가 없는데…를 되풀이했다. 그러했던 양산농업중학교는 지금 양산고등학교로 바뀌었지만 이항녕 작사 금수현 작곡의 교가를 현재도 부르고 있다.

그 이후 필자도 부산으로 옮겨오고 교사들의 강습회 때 또는 한글학회가 발표하는 연구발표회 때 나가면 금수현을 만나는 경우가 있었다. 교사들 강습회 때는 그가 작곡한 '8·15'의 노래를 강습회 교사들에게 가르치기도 하고 한글학회 회원이 되어 있던 그 당시 한글 전용과 한자혼용의 여론이 갈라져 있을 때는 철저한 한글전용 주장자였다.

그 누구가 선생의 이름은 김수현(金秀賢)이지 어찌 금수현이냐하면 金은 본음이 쇠금이라 하고,금(琴)자가 있지 않느냐고 하면 나는 한자 금이 아니고 한글 '금'이라 했다. 그러한 그는 음악용어의 한글화에도 남다른 힘을 기울이면서 노래에 한자어가 들어가면 정감을 잃는 것은 우리의 심성은 한글에 담겨 있기 때문인데 한글을 열어가는 것이 우리의 심성을 열어가는 일이라 했다.

그는 그의 노래비가 완공된 92년에 별세했다. 그의 수필집으로는 '거리의 심리학' '음악·멋·맛' '음악의 문' 등이 있다.
 
이글은 부산일보에 기획연재된
'소설가 김말봉과 그 곁사람들 <1> ④ 金末峰과 금수현 '중에서 발췌한것입니다.


  들어보기 : 김말봉 시/금수현 곡/메조소프라노 정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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