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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잎클로버[김순애 시/김순애 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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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초의 여류작곡가 김순애(1920-)는 황해도 안악에서 출생했다. 「네잎 클로우버」는 김순애씨의 대표작이다 . 노랫말과 곡조가 티끌하나 없이 맑고, 구름 한점 없이 청명한 느낌을 준다. 가곡「네잎 클로우버」의 이와 같은 분위기는 세상이 온통 분홍빛으로만 보이던 작곡가 김순애의 19세 처녀시절의 생기발랄함이 그대로 묻어나오기 때문일 것이다.

당시 김순애는 이화여전에서 피아노를 전공하고 있었다. 학교 연습실의 앞과 뒤뜰에는 클로버가 소담스럽게 많이 돋
아 있었고, 학생들은 틈만 나면 네잎클로버를 찾아보곤 하였다. 김순애도 마찬가지로 네잎클로버를 찾기에 열중했었는데 네잎클로버를 찾기 시작한지 2년이 지난 어느 날 초저녁에 드디어 네잎의 클로버를 발견하게 되었다. 너무나 감격한 김순애는 이 기쁨을 곧바로 시로 쓰고 피아노 연습실로 뛰어가 곡을 붙였는데 이 곡이 김순애의 공식적인 처녀작인 「네잎 클로우버」이다.

16분 음표로 연주되는 말고 깨끗한 전주가 끝나면 곧이어 8분의 6박자로 시작되는 찬란한 노래가 여성다운 섬세함과 낭만을 노래한다. 이어 "아 아 행복의 네잎 클로우버 " 부터 휘날래로 접어들고 "아 젊음과 사랑의 영혼아 빛나라" 에서 최고점으로 상승하여 씩씩하고 미래지향적인 축복으로 이 노래는 마쳐진다. 많은 클로버가 깔린 초원에서 행운을 준다는 네 잎 클로버를 찾아낸 순수한 감동이 살아있는 이 곡은 해방전에 작곡된 곡 중에서 몇 안되는, 생명력 넘치는 밝은 느낌의 곡이라는데서 그 개성를 뚜렷이 한다.
 
「네잎 클로우버」는 주변에서 좋은 평을 들었다. 1941년 대학을 졸업한 그는 대구 신명학교 교사로 부임했는데 여기에서의 5년간은 음악을 품에 안은 시기이다. 학교 주변 아름다운 동산에서 산책하고 시를 암송하며 많은 곡을 지었다. 1946년 서울 경기여고로 전근하고 그 해 여름 첫 작곡 발표회를 가졌는데 당시 동료교사인 조지훈 시인이 「네잎 클로우버」의 가사를 보고 칭찬하며 다만 3절의 "---노을에 물든 반달 가벼운 미소---" 를 "---고요한 미소" 로 바꾸는게 좋겠다고 말했고 김순애씨는 이를 수락하고 그렇게 고쳤다고 한다. 이 노래는 원로 성악가 김자경씨가 초연했다 .

김순애, 그는 워즈워드, 쉬츠 등 낭만적인 시를 매우 좋아했다. 그러나 그의 걸작들은 결코 낭만적이 아닌 고통과 수난의 시기에 탄생했다. 1950년, 6, 25 때 남편 김형로(당시 서울 음대교수)가 납북되어 결혼 4년만에 불행을 맞이했다. 생애 처음 맛본 시련기에 그는 많은 곡을 작곡했다. 1960년에는 이화여대 교수로 부임했는데 이 해에 그는 정신적 지주였던 친정어머니를 잃고 10년 만에 또다시 큰 비애를 맛보았다. 1970년에는 그의 세 번째 아픔을 겪었다. 치명적인 병으로 사경을 헤메다 기적적으로 소생했던 것이다. 김순애는 이 기적적인 소생을 신의 뜻으로 여겨 70년대 들어와 무려 60여곡의 종교음악을 작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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