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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가곡 가사전달 '아리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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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21일  부산문화회관 대극장에서는 작곡가 이상근 추모음악회가 열렸다. 살매 김태홍의 향토색 짙은 시어(詩語)로 빚어낸칸타타 '분노의 물결'이 지난 1976년 초연 이후 26년만에 재연됐다.
그런데 질곡의  부산 근대사를 경상도 사투리로  뿜어내는 현장에서음악은 있으되 시어는 사라지고 말았다.
합창단과 바리톤이 들려주는 노래의 가사가 청중에겐 제대로 전달되지 못했던 것.  성악무대의 불분명한 가사전달 문제는 한국가곡에만 국한된 게 아니다. 한국어로 번역된 오페라는 더욱 심각한 상황. 세계적인 소프라노 조수미의 앨범에서도 가사를 모르는 상태에서 음악을 듣다보면 노랫말이 어떤지 거의 알아들을 수 없는 형편이다.

왜 그럴까. 전문가들은 우선 성악가의 문제를 든다. 서양언어에 바탕을 둔 서양 발성법에 익숙한 성악가들이 우리말과의 차이를 간파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 모음 중심의 서양발성법과 달리 받침이 많고 자음으로 분절되는 경우가 많은 우리말의 특징을 읽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소리를 멀리 전달하기 위해,또는 예쁜 소리를 만들기 위해 발성을 하다보면 가사 전달이 상대적으로 무시되는 결과가 나오기도 한다. 외국어와 달리 한글은 이미 익숙하다는 이유로 한국어 발성법에 대한 커리큘럼이나 체계적인 연습이 부족한 것도 한 원인.

테너 이은민은 '조금 소홀한 것이 결과적으로는 엄청난 차이가 난다'며 '외국가곡을 그 나라 사람 앞에서 부를때의 긴장감을 갖고 한국가곡을 불러야 한다'고 조언한다. 단어 하나 하나를 음미하면서 부르는 연습과 정확한 테크닉이 필요하다는 것. 이와 관련해 이탈리아 음악대학의 필수과정인 '마르떼 쉐니까'(무대연기)는 참고할 만하다. 이 과정은 시나 희곡을 읽으면서 발음법과 표현력을 익히는 커리큘럼.

작곡가의 문제도 있다. 슈베르트는 언어의 특성에 맞게 곡을 쓴 대표적인 작곡가. 독일어의 억양과 선율의 음조가 함께 흘러가 가사와 선율이 딱 떨어진다.

하지만 한국 가곡 중에는 시어의 흐름과 무관한 선율로 작곡돼 가사전달을 방해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수인이 작사 작곡한 '내 마음의 강물'이 성악가들의 단골 레퍼토리가 된 것은 시적 운율과 곡의 선율이 잘 맞아들어가기 때문이라는 게 성악가들의 설명.

바리톤 김길수는 '한국어 발성법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 특히 무대 언어에 대한 새로운 정립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부산일보 [2003.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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