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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곡이야기

변훈의 '명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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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푸른 바다 바닷밑에서
줄지어 떼지어 찬물을 호흡하고
길이나 대구리가 클 대로 컸을 때

내 사랑하는 짝들과 노상
꼬리치고 춤추며 밀려다니다가

어떤 어진 어부의 그물에 걸리어
살기 좋다던 원산(元山)구경이나 한 후
이집트의 왕(王)처럼 미이라가 됐을 때

어떤 외롭고 가난한 시인이
밤늦게 시를 쓰다가 소주를 마실 때
그의 안주가 되어도 좋고
그의 시가 되어도 좋다

쨔악 짝 찢어지어
내 몸은 없어질지라도
내 이름만은 남아 있으리라.
`명태'라고 이 세상에 남아 있으리라.

<화성인(火星人), 장왕사, 1955>

밤늦게 시를 쓰다가 북어와 함께 소주를 마시는 어떤 외롭고 가난한 시인은 이 시를 쓴 시인 자신일 것이다. 그러다가 문득 그는 말라 비틀어져 입을 벌리고 있는 북어를 다시 한번 보게 되었고, 명태의 운명을 생각했을 것이다.

“명태, 너는 전생에 무엇이었느냐"고. 명태가 물었다.
”시인, 너의 전생은 무엇이었기에 나와 이렇게 인연이 되어, 내가 너의 한 잔 술 안주거리가 되어 너를 즐겁게 해주고 있느냐“고 물었다. 명태의 말 속에는 다음 생에서는 너와 나의 신세가 뒤바뀔 수도 있다는 것을 은연 중에 내뱉고 있었다.

찢겨져가는 명태를 보면서 시인은 어쩌면 마치 자신의 몸이 찢겨져 나가는 아픔을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이윽고 시인은 명태를 위해 시를 쓰기로 했다. 그러면 명태의 불운은 충분히 보상을 받을 것이니까.
시인은 독백한다. ‘너의 육신은 내 입으로 들어가 없어질지라도 너 영혼은 환한 저승길로 가라’ 고. ‘그리하여 너의 이름이 길이 길이 남아 있으리라’ 고.

명태는 월남 문인 양명문의 시에 6.25사변중 국군장교로 있던 변훈님이 곡을 붙인 가곡으로서 발표 당시에는 가히 혁신적인 곡이었다. 1952년 초연 당시엔 기존의 한국가곡의 틀을 깨는 돌연변이 같은 음악으로 치부되어 지독한 혹평을 받았다고 한다.

시인은 명태의 신세와 자신의 신세를 비유하면서 이 시를 썼지만 작곡가는 전쟁의 소용돌이에 갇혀 젊지만 자유로울 수 없는 영혼들의 자조 섞인 신세를  명태에 비유해 풍류를 즐기는 사람으로나마 남고자 하는 마음으로 노래를 만들었으며, 세월이 흐른 지금엔 자연을 벗하고저 바다 앞에 선 호쾌한 장부들의 권주가로도 손색이 없을 듯하다.

노랫말 때문인지 몰라도, 명태는 왠지 서민의 고달픈 삶을 많이 닮았다. 어부들에 의해 잡혀 올라와 북어나 동태, 생태, 황태 등 영문도 모른 채 팔자가 나눠지는 그 신세가 왠지 처량하기만 하다.
한국적인 익살, 그리고 한숨이 섞여있는 자조적이면서도 재치가 있는 노래 명태....명태와 바리톤 오현명씨의 인연을 오현명씨의 회고에서 찾아보았다.

일제시대 만주땅에서 출생한 그는 교회에서 찬송가를 부르며 자라다 6세 때 현제명 성악곡집을 듣고 음악적 감화를 받았다. 형의 친구인 작곡가 임원식씨로부터 목소리가 좋다는 말을 듣고 中 1때 교회 무대에 처음 섰고 「보리밭」의 작곡가 윤용하가 만든 조선 합창단 단원으로 함께 활동하기도 했다. 징병을 당해 일본까지 끌려갔다가 거기서 조국해방을 맞이하였고, 만주로 되돌아가던 중 38선이 막혀 서울을 떠돌게 되었다. 그러다 극적으로 현제명씨를 만났고 그 밑에서 일하다가 경성음악학교 장학생으로 입학, 평생의 스승 김형로씨를 만났다. 6·25 때는 좌익 학생들에 의해 납북되던 중 탈출하여 국군 정훈음악대에 들어갔다. 이 무렵 그는 일생의 레퍼토리가 된 가곡 「명태」를 만났다.

『1951년 해군 정훈음악대에 있을 때, 연락 장교로 있던 작곡가 변훈씨가 날 위해 만들었다며 던져주고 간 악보뭉치 속에 「명태」가 있었지요. 멜로디보다 가사 위주로 가는 생소한 방식, 해학적인 가사가 좋아 발표했다가 당시엔 지독한 혹평을 받았어요. 작곡가가 낙담해 진로를 바꾸기까지 했으니까요. 1970년에 다시 불렀다가 유명해져서 어딜 가나 오현명 -명태, 명태 -오현명으로 불리게 됐습니다』

작곡가 변훈(1926∼2000)은 함경남도 함흥 태생이며, 주포르투갈 대사 등을 역임한 외교관 출신 작곡가로 함남중학교를 거쳐 연희대학교에서 정치외교학을 전공, 53년 외교관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외교관 초임시절 브라질 등지의 한국대사관에서 근무하다 주샌프란시스코 총영사관 부영사와 파키스탄 총영사 등을 역임했으며,81년 5월 주포르투갈 대리대사를 마지막으로 28년간의 외교관 생활에 종지부를 찍었다.

그의 작품으로는 1947년 김소월의 시에 곡을 붙인 가곡「금잔디」를 시작으로 윤동주 작시의 「무서운 시간」, 시인 김광섭의「차라리 손목잡고 죽으리」, 김광섭 작시의 「나는야 간다」, 김소월의 「초혼」「진달래꽃」, 정공채의 「갈매기 우는구나」, 조병화의 「낙엽끼리 산다」, 김영삼 시 「귀향의 날」등의 작품을 남겼으며 작품집으로 <갈매기> (세광출판사, 1981년)가 있다.

작사가 양명문은 평양출생(1913~1985) 문인으로 호는 자문(紫門). 1942년 일본 도쿄센슈대학[東京專修大學] 법학부를 졸업하고 1944년까지 도쿄에 머물러 있다가 북한에서 8·15해방을 맞은 뒤 1·4후퇴 때 월남했다. 1951년 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 구국대원 및 육군종군작가로 활동했다. 1955~58년 서울대학교 교수를 지낸 뒤 국방부 전시연합대학, 수도의과대학 등에서 시론과 문예사조를 가르쳤으며 1966년 이후에는 국제대학교 교수로 재직했다. 한국자유문학가협회 회원, 국제 펜클럽 한국본부 중앙위원, 한국시인협회와 한국문인협회 이사 등을 지냈다. 1957년 한국에서 열린 국제 펜클럽 대회와 1970년 아시아 작가회의에 한국대표로 참석했다.

극작가 김자림이 그의 부인이다. 시인의 막내아들 형태(나라은행 미국 벨뷰 소장)씨는 "어머니는 문학 선배의 소개로 아버지에게 희곡 작품을 보여주기 위해 찾아간 것이 인연이 돼 부부가 되셨다"며 "아버지로부터 `당신은 글쓰는 공부를 다시 시작해야 하겠다'는 말에 자존심이 상해 오기로 글을 써서 계속 보여드린 결과 서로 사랑하는 마음이 싹터, 13년의 나이차를 극복하고 결혼했다"고 한다.

1940년 첫 시집 〈화수원 華愁園〉을 펴내 문단에 나왔으며, 일제강점기에 일본어로 쓴 몇 편의 시를 발표했다. 이어 8·15 해방 이후에는 감정을 솔직하게 나타내거나 반공 이데올로기와 민족정신을 바탕으로 한 현실참여적인 시를 썼다. 대표적으로 〈부두의 만가〉(문화세계, 1953. 9)·〈푸른 비둘기〉(현대문학, 1955. 8)·〈두루미의 노래〉(자유문학, 1957. 8)·〈밤나무〉(현대문학, 1968. 8)·〈민족의 대행진〉(자유공론, 1982. 8) 등이 있다. 시집으로 〈송가 頌歌〉(1947)·〈화성인 火星人〉(1955)·〈푸른 전설〉(1965)·〈이목구비〉(1965)·〈묵시록〉(1973) 등이 있다.

- 글 : 내마음의 노래(2006. 10. 1)


명태의 여러가지 이름.....

1. 봄에 잡은 명태 -- 춘태
2. 가을에 잡은 명태 -- 추태
3. 겨울에 잡은 명태 -- 동태(冬太, 凍太와 헷갈리지 말 것!)
4. 그물로 잡은 명태 -- 망태
5. 낚시로 잡은 명태 -- 조태
6. 원양어선에서 잡은 명태 -- 원양태
7. 근해에서 잡은 명태 -- 지방태
8. 강원도에서 나는 명태 -- 강태(江太)
9. 새끼명태 -- 노가리
10. 갓 잡은 명태 -- 생태
11. 얼린 명태 동태(凍太)
12. 그냥 건조 시킨 명태 -- 북어(또는 건태 乾太)
13. 반쯤 말린 명태 -- 코다리,
14. 얼렸다 녹였다 반복해서 말린 명태 -- 황태
8 Comments
오경일 2006.10.01 20:31  
  사랑하고 즐겁게 살아야 할 우리의 인생을 안주가 된 명태 처럼 쫙쫙 찢어져서 없어질 우리의 현실을 이름 석자라도 가족과 세상에 남기고픈 전쟁중의 군인이나 우리의 삶을 노래 했다고 보면 좋을까요.
운영자님 감사합니다.
정창식 2006.11.15 11:50  
  명태곡을 가장 사랑하고 좋아하는 곡임니다. 오현명 선생님은 잘 알지만  변훈선생님은 직업외교관 이시면서 많은곡을만드셨다는 정도로 알았습니다. 그러나 작사가 양명문 선생님에 대해선 잘 몰라 너무죄송합니다. 너무 훌륭하신 분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운영자님 의 너무나 많은 지식 너무나 감사합니다.
유열자 2007.02.13 10:18  
  명태의 변신이 우리의 참 모습이 아닐까
조정희 2007.07.09 22:10  
  명태의 피아노 반주 악보를 구할수있을까요??
추억은 2007.08.04 14:23  
  제가 참으로 좋아하는 곡인데..
이런 자세한 설명이 너무 좋습니다,
이수현 2007.10.24 01:30  
독특한 노랫말과 곡의 전개가 참 좋네요.
허허실실 2007.10.26 18:06  
명태도 시기와 상태에 따라 그렇게 많은 이름이 있는 것을 미처 몰랐습니다.
규방아씨민수욱 2007.11.09 21:11  
진짜 이름이 많군요...놀라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