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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슈베르트’ 작곡가 최영섭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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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신문]2005-06-27 05판 16면 4168자

우리는 분단시대에 살고 있다.
좌로, 우로 한(恨)도 많다.
그래서 목놓아 ‘저편의 너를’ 부르고 그리움으로 손을 뻗는다.
광복 60년이 됐지만 분단의 노래는 여전히 단장(斷腸)의 메아리다.

‘봉선화’(1919년) 이후 한국 가곡 86년사(史)에서 가장 애창된다.‘그리운 금강산.’ 분단의 비극과 통일의 염원을 켜켜이 담아냈다.
시보다 더 아름다운, 소설보다 더 감동으로 승화시킨 악상(樂想)이다.‘통일 주제가’로 ‘민족 가곡’으로 사랑받는다.
들을수록 애틋하고 향수가 있고 경건하다.

옛날이었다.
한 시인이 음악가를 꿈꾸는 중학생과 인천 앞바다를 거닌다.
시인은 오른쪽 주머니에서 소주병을 꺼내 벌컥벌컥 술을 들이켠다.
시인은 “이봐, 한 수 읊을 테니 적어봐.”라고 했다.
그러곤 “잊어버리자고, 바다 기슭을 걸어보던 날이”라고 소리친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바닷바람이 불었다.
성질 급한 학생은 “다음은요?”라고 했다.
시인은 다시 술을 마시며 “하루 이틀 사흘, 여름 가고 가을 가고, 조개 줍는 해녀의 무리 사라진 겨울 이 바다에”라고 했다.
학생은 또다시 “다음은요?”라고 보챘다.
시인은 또 목구멍으로 술을 꼴깍 넘기며 “잊어버리자고, 바다 기슭을 걸어가는 날이 하루 이틀 사흘….” 학생은 이튿날 가곡을 만들어 화답했다.

1954년 어느 날이었다.25살의 젊은 청년이 처녀가곡집을 냈다.
그러자 서울신문 문화면 전체에 다음과 같이 신랄(?)하게 비판하는 글이 게재됐다.‘악보 출판치고는 사상 최악이다.
그러나 이 청년의 장래를 정말 주목하지 않으면 안된다….’
앞의 시인은 2003년 작고한 조병화씨.
해방 직후 경복중학에 다니는 최영섭 학생과 인천 앞바다를 거닐며 ‘추억’이라는 시를 발표했을 때의 상황이다.
두번째는 청년 최영섭이 가곡집을 내자 당시 작곡가 나운영씨가 주저없이 나서 역설적으로 호평했던 일화다.

최영섭(77)씨.‘한국의 슈베르트’라고 한다.
샘솟듯 넘쳐 흐르는 악상과 특유의 직감으로 무려 200여곡의 가곡을 작곡해 ‘가곡의 왕’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그중 ‘누구의 주재런가∼’로 시작되는 ‘그리운 금강산’은 새삼 설명이 필요없을 만큼 민족의 송가(頌歌)로 널리 애창된다.
이 노래가 탄생된 지 올해로 45년째.

서울 종로구 세종로의 한 커피숍에서 최씨를 만났다.“희수(喜壽)가 됐으면 다 평화로워야 하는데….”라고 했다.
사연을 들어보니 지난 4월에 막내아들을 잃었다.
폐암으로 병원에 입원해 있는 4년 동안 온 집안 식구가 백방으로 살리려고 노력했지만 끝내 가슴에 못질하고 세상을 떠났다는 것.

최씨는 현재 서울 서대문구 모래내 한 주택가에서 반지하 월세방을 얻어 혼자 쓸쓸히 지내고 있다.
원래 세 아들을 낳은 본처는 암으로 일찍 세상을 떠났다.
한참 동안 혼자 살다가 모 방송국 PD의 중매로 둘째 부인을 만나 살았지만 1997년 뜻하지 않은 이유로 헤어졌다.
평생 살려고 약속했던 부인에게 재산을 다 주고 났더니 빈털터리가 됐단다.
그룹 ‘들국화’ 멤버였던 큰아들이 경기도 과천 집에서 함께 살자고 원하지만 집에 쌓인 책이며 음악자료들이 정들어 아직은 혼자 지내기로 했다.

“평생 가곡을 만들면서 살아왔어요.
올해가 광복 60년이고 분단 60년이 됩니다.‘그리운 금강산’을 만들 때는 곧 통일도 될 것 같았는데.
솔직히 더 이상 ‘그리운 금강산’이 불려져서는 안됩니다.
세월이 지난 뒤 ‘아, 옛날 그런 노래가 있었구나.’ 하는 정도면 족하지요.”
‘올해의 의미’에 대해 오는 11월11일이 제1회 가곡의 날로 선포된 점을 강조했다.
최씨 등 가곡인들의 오랜 노력 끝에 얻어진 결실이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9월8일부터 매주 목요일 가곡 연주회를 갖는다.
아울러 전야제 행사로 서울 종로구 신문로 옛 중앙기상대 건물 바로 옆 홍난파 선생이 살던 집에서 ‘봉선화의 집’이라는 현판식을 갖는다.

최씨는 “난파 선생이 돌아가시기 1∼2년 전 협박에 못이겨 일본군가를 편곡했는지는 모르지만 생전에 민족 가곡 100여개를 작곡할 만큼 우리들에게 많은 용기를 불어넣어준 위대한 작곡가가 아니냐.”고 강조했다.‘봉선화’를 작곡하는 등 평생의 95%는 우리 가곡과 동요에 헌신하고 독립을 간절히 원하며 살았는데 왜 그가 친일파로 매도돼야 하는지 이해가 안 간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리운 금강산’의 탄생시절로 거슬러 올라갔다.1961년 8월이었다.KBS(남산 시절)에서 ‘남산에 올라’‘한강의 노래’‘낙동강 칠백리’‘백두산은 솟아있다’ 등 정열적인 작곡 생활을 하고 있을 때였다.
하루는 한용희(‘파란 마음 하얀 마음’ 작곡자)씨가 남산 ‘산길다방’에서 차를 마시자고 했다.
다짜고짜 “최 선생, 한강 백두산 낙동강을 다 다루면서 정작 금강산은 왜 안하는 거요.”라고 불쑥 말했다.

아차, 무릎을 탁 친 최씨는 그 길로 시인 한상억(92년 작고)씨를 찾아갔다.
숨가쁜 목소리로 “한 선생님, 여태껏 금강산이 없습니다.”고 했다.
한씨는 “허허, 나는 이미 다 써놓고 있었네.
안그래도 줄 참이었지.”라고 했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새벽 2시까지 ‘콩나물’과 씨름했다.
다른 곡 같으면 며칠이 걸렸을 법한데 ‘그리운 금강산’은 4∼5시간 만에 완성했던 것.
이튿날 방송국에 악보를 전달하고 곧 녹음에 들어갔다.
서울대 음대 동창인 이남수씨가 지휘했다.3일 뒤부터 KBS 가곡프로그램인 ‘이주일의 노래’에 연달아 방송됐다.
팬레터가 쇄도했고 32세의 청년 최영섭은 일약 가곡계의 스타로 떠올랐다.

이듬해 6·25전쟁 발발 12주년 때 서울 명동의 시공관에서 ‘아름다운 내강산’이란 주제로 KBS교향악단·합창단 등의 협연으로 ‘최영섭 가곡특집’을 발표했다.
이때 받은 30만원(당시 집 한채 값)으로 둘째 아들의 병원비를 충당했다.
생애 가장 잊지 못할 추억이다.

‘그리운 금강산’은 국내외 정상급 성악가 50여명의 CD에 담겨 있다.
조수미를 비롯해 플라시도 도밍고, 루치아노 파바로티, 소프라노 홍혜경, 그리고 세계적 음반회사 데카에서 낸 소프라노 안젤라 게오르규의 ‘마이월드(My World)’에도 ‘그리운 금강산’이 포함돼 국내외에서 애창된다.

최씨는 인천시 강화군 화도면에서 태어났다.
여섯살 때 동네 병원에서 축음기를 통해 클래식 음악을 자주 들었다.
또 마니산에 올라 연평도 쪽에서 들려오는 ‘경기뱃노래’에 매료됐다.
초등3학년 때 호르겔피아노를 처음 접하면서 천부적 음감을 확인했고 이화여고에 다니는 누나한테 음악을 배웠다.
인천중학 재학 시절에는 바이엘과 체르니를 독학으로 배웠다.
서울 경복중학으로 전학한 후 이화여대의 임동혁 교수한테 작곡수업을 받았다.49년 경복중학 6년(당시 6년제)때 첫 작곡발표회를 가졌다.
서울대 음대 시절에 김성태 선생을 만나면서 오늘날 민족 작곡가의 길을 걷게 된다.

“올해 김성태 선생한테 세배를 갔더니 세뱃돈 3만원을 주더군요.
그분은 96세의 나이에도 동요를 작곡하고 있어요.
여전히 배울 점이 많아요.”
최씨는 지금까지 가곡 외에 편곡 1600여곡, 기악곡 40여곡을 만들었다.
미발표된 것도 수십곡에 이른다.
재산은 하나도 없지만 가득 쌓인 문학책과 음악자료들을 볼 때마다 남부럽지 않게 여긴다.
혼자 맥주 마시며 책들과 대화하는 시간이 가장 행복하다는 그는 올 가을에 발표될 신곡 20곡을 기대해 달라며 식지 않은 창작열을 과시했다.
오래전부터 ‘고운산’이란 필명으로 작사도 한다.
건강유지 방법을 물으니 “지하철이 곧 헬스클럽이다.
음악이 있어 인생은 참으로 아름다운 것”이라며 웃었다.
생활비는 저작권료로 받는 월 200만∼300만원으로 충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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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가 걸어온 길
▲1929년 강화 출생
▲49년 경복고 졸업, 제1회 작곡 발표회, 임동혁 교수에게 작곡이론 사사
▲54년 서울대 음대 작곡과 졸업, 재학시절 김성태 교수에게 작곡이론 사사.
오스트리아 빈 국립음악대학원 석사
▲61년 ‘그리운 금강산’ 작곡
▲62년 6·25 12주년때 서울 명동 시공관에서 ‘최영섭 특집 가곡 발표회’ 개최.
이후 작곡발표회 5회.

▲76년 드라마 주제가 ‘아, 이조 오백년’ 작곡
▲95년 광복50주년 기념교성곡 ‘오 사랑하는 나의 조국’ 전 24장 발표.

▲가곡 ‘모란이 피기까지’‘추억’‘망향’ 등 200여곡 작곡.

▲인천여중고·인천여상고·이화여고·한양대·상명여대·세종대 등에 출강.

▲현재 작곡가회 부회장, 한국예술가곡진흥회 회장.

■ 상훈 인천시문화상(59년), 경기도문화상(61년),MBC방송대상(87년), 대한민국 방송대상(92년),MBC가곡 공로대상(94년), 한국음악상(96년), 세종문화상(98년), 서울시문화상(200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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