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가곡해설 9 <떠나가는 배> 양중해 작시 변 훈 작곡
이국적 체취가 물씬 풍기는 가락 <떠나가는 배>
<떠나가는 배>는 작시자가 혼동되는 수가 많다. 1930년대에 활동한 시인 박용철(朴龍喆)
의 같은 제목의 시가 있는데, 변 훈이 작곡한 것은 양중해(梁重海)의 작시이다.
양중해(1927~2007)는 지금부터 1년 전에 작고한 제주도 출신의 시인으로 평생을 제주도에서 활동했다. 제주대학교 교수, 명예 교수직을 끝으로 타계했지만, 이 밖에도 양중해는 학문 연수에 열의를 보여 건국대학교 대학원 수료, 중화학술원(中華學術院)에서 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문학 활동면을 살펴보면 53년에 <<흑산호(黑珊瑚)>> <<비자림(榧子林)>> 등 동인지를 발간하여 시 <그리움> <천상(天像)>을 발표했다. 그 후 <<현대문학>>에 <슬픈 천사>를 추천받아 시인의 지위를 확고히 하였다. 이밖에 학술 저서와 논문이 다수 발표한 학구적인 면을 보인 시인이다.
이 <떠나가는 배>는 6.25의 산물이다. 이미 작고자 변 훈이 제주도에 피난해 있던 1952넌 작사자, 작곡자가 만나서 깊이 사귀게 된다. 변훈이 53년부터 81년까지 외교관 생활은 한 것으로 보아, 변훈이 제주도에 머문 기간은 1,2년밖에 안 되는 것을 알 수 이다.
이 기간은 짧다면 짧고 지루한 피난살이를 생각하면 길다고도 할 수 있으리라. 두 사람은 매일같이 부둣가에서 부산으로 떠나는 배를 바라보면서 변 훈은 이산 가족으로서의 울적함을 달랠 길이 없던 차에, 시인 양중해와 함께 그 때의 심정을 가곡으로 표현하기로 둘이는 의기 투합하여 그 작업을 시작했다.
이리하여 완성을 본 <떠나가는 배>는 만인의 가슴에 공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족했다. 단순한 단조의 센티멘탈리즘도 아니지만 가락 자체만으로도 청중을 사로잡기에 충분할 만큼 호소력이 강하다. 이에는 우리 가락의 요소는 없다. 가락의 흐름은 서양 음악의 체취가 물씬하게 풍겨 온다. 언젠가 양중해 시인은 “시를 나 홀로 다 한 것은 아니며 변선생님과 함께 가락에 맞도록 뜯어 고치기도 하면서 곡이 만들어졌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생각컨대 어떤 때는 작곡자가 솟아 오르는 악상을 악보화하면서 시를 이 정서에 맞도록 쓰게 하는 등 합동 작전을 한 모양이다.
변 훈(1926~2000)은 함경 북도 함흥 출생으로 연세대학교 정외과를 졸업, 외교관 공채에 합격하여 외무부 근무에 들어간다. 그후 바로 해외로 나가 미 샌프란시스코 총영사관의 부영사, 파키스탄 총영사, 포르투갈 대리 대사 등 해외 여러 나라의 영사관에서 외교관의 생활을 했다. 2003년 화관문화훈장이 수여되었다.
작곡은 47년 소월의 <금잔디> 53년 <떠나가는 배>,등 수십곡 외에 가곡집으로 <<변훈 가곡집>>(2004)이 있다.
<떠나가는 배>는 작시자가 혼동되는 수가 많다. 1930년대에 활동한 시인 박용철(朴龍喆)
의 같은 제목의 시가 있는데, 변 훈이 작곡한 것은 양중해(梁重海)의 작시이다.
양중해(1927~2007)는 지금부터 1년 전에 작고한 제주도 출신의 시인으로 평생을 제주도에서 활동했다. 제주대학교 교수, 명예 교수직을 끝으로 타계했지만, 이 밖에도 양중해는 학문 연수에 열의를 보여 건국대학교 대학원 수료, 중화학술원(中華學術院)에서 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문학 활동면을 살펴보면 53년에 <<흑산호(黑珊瑚)>> <<비자림(榧子林)>> 등 동인지를 발간하여 시 <그리움> <천상(天像)>을 발표했다. 그 후 <<현대문학>>에 <슬픈 천사>를 추천받아 시인의 지위를 확고히 하였다. 이밖에 학술 저서와 논문이 다수 발표한 학구적인 면을 보인 시인이다.
이 <떠나가는 배>는 6.25의 산물이다. 이미 작고자 변 훈이 제주도에 피난해 있던 1952넌 작사자, 작곡자가 만나서 깊이 사귀게 된다. 변훈이 53년부터 81년까지 외교관 생활은 한 것으로 보아, 변훈이 제주도에 머문 기간은 1,2년밖에 안 되는 것을 알 수 이다.
이 기간은 짧다면 짧고 지루한 피난살이를 생각하면 길다고도 할 수 있으리라. 두 사람은 매일같이 부둣가에서 부산으로 떠나는 배를 바라보면서 변 훈은 이산 가족으로서의 울적함을 달랠 길이 없던 차에, 시인 양중해와 함께 그 때의 심정을 가곡으로 표현하기로 둘이는 의기 투합하여 그 작업을 시작했다.
이리하여 완성을 본 <떠나가는 배>는 만인의 가슴에 공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족했다. 단순한 단조의 센티멘탈리즘도 아니지만 가락 자체만으로도 청중을 사로잡기에 충분할 만큼 호소력이 강하다. 이에는 우리 가락의 요소는 없다. 가락의 흐름은 서양 음악의 체취가 물씬하게 풍겨 온다. 언젠가 양중해 시인은 “시를 나 홀로 다 한 것은 아니며 변선생님과 함께 가락에 맞도록 뜯어 고치기도 하면서 곡이 만들어졌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생각컨대 어떤 때는 작곡자가 솟아 오르는 악상을 악보화하면서 시를 이 정서에 맞도록 쓰게 하는 등 합동 작전을 한 모양이다.
변 훈(1926~2000)은 함경 북도 함흥 출생으로 연세대학교 정외과를 졸업, 외교관 공채에 합격하여 외무부 근무에 들어간다. 그후 바로 해외로 나가 미 샌프란시스코 총영사관의 부영사, 파키스탄 총영사, 포르투갈 대리 대사 등 해외 여러 나라의 영사관에서 외교관의 생활을 했다. 2003년 화관문화훈장이 수여되었다.
작곡은 47년 소월의 <금잔디> 53년 <떠나가는 배>,등 수십곡 외에 가곡집으로 <<변훈 가곡집>>(2004)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