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바라기 클럽 결성(명사들의 인생회고/격변기의 문화수첩)
‘해바라기 클럽’결성(명사들의 인생회고/격변기의 문화수첩:38)[국민일보] 1990-07-07
◎“어린이 위한 좋은 노래 만들자”/67년 가을 출범… 뒤에 「한국 동요동인회」로 개명/꾸준한 신작발표… 올해 15번째 동요집 내놔박태현씨의 동요 1백곡집의 제2집이 발간된 것은 1979년 10월의 일이다. 제1집은 언제 나왔는지 끝내 보지 못하였지만 제2집에는 나의 동요 「일학년」 한편만 수록되었다.
출판기념회는 바로 방송국 옆의 어느 회관에서 성대하게 개최되었다. 그때 찍은 사진들은 영원한 기념으로 나의 앨범에 남아 있다.
후일 그와 같은 직장에서 일하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던 일이다.
동요곡집은 또 다른 곳에서도 간행되었다. 이미 1970년에 숭의보육 음악교실에서 「한국 새 동요곡집」을 간행,동요보급에 큰 역할을 하였다.
그 동요곡집에는 무려 58편이나 실려 있었는데 나의 작품으로는 「고마우신 선생님」「무슨 소릴까」「달맞이꽃」이 수록되어 있다.
어쨌든 동요곡집이 많이 출판된다는 것은 어린이들에게 항상 기쁨과 희망을 안겨주는 뜻에서 기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렇듯 나의 작품도 뜻밖에 많다. 가곡은 「들국화」외 약 20편이지만 동요는 「바닷가에서」를 비롯하여 약 2백편에 달한다.
국민학교 중ㆍ고등학교 음악교과서에도 여러편 수록되었고 음반과 테이프로도 제작되어 있다. 동요집을 내기 위해 서서히 정리해야 되겠다.
그런데 하루는 종로 3가에서 작곡가 이은열씨를 만나 다방에 들어가 오랜만에 정담을 나누었다. 그 자리에서 나는 동요 활성화를 위한 모임이 필요하지 않을까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오래전부터 생각하고 있던 일이었다. 자라나는 새싹들을 위해 좋은 동요를 제공해주는 일이 필요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개인각자의 활동보다는 역시 단체를 하나 만드는 것이 좋겠다는 평소의 생각을 말했던 것이다.
작사가만의 활동도 있을 수 없고 작곡가만의 활동도 있을 수 없다. 노래는 그 두 분야가 조화를 이루어야만 가능한,절대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것이다.
이은열씨는 나의 말을 듣자 눈을 환하게 뜨며 함께 활동할 것을 약속하였다.
그와 헤어진 길로 나는 바로 근처에서 양복점을 경영하고 있는 박경종씨를 찾아가 이은열씨와 나눈 이야기를 하였다. 그도 반대할 아무런 이유가 없어 대찬성을 하였다.
그후 손대업씨를 만나 좀더 구체화시켰다. 이건 지엽적인 얘기지만 인적구성을 토의할때 손씨가 이은열씨의 참가를 극력 반대하는 바람에 끝내 이씨는 제외되었다.
어떤 감정관계가 있었는지는 몰라도 제일 먼저 같이 의논한 이은열씨가 빠지게 된 것을 나는 아쉬워했으나 어쩔 도리가 없었다.
동요단체 결성 작업은 본격적으로 진행되었다. 우선 단체 이름을 「해바라기 클럽」이라고 하였다. 이 명칭은 후에 「동요동인회」로 바뀌었다가 다시 「한국동요동인회」로 변경되었다.
어린이 노래를 위한 모임이니까 「해바라기 클럽」도 좋았으나 대외적인 활동을 위해서는 좀 약하다는 의견이 강했기 때문이다.
회원은 작사ㆍ작곡부문 각 12명으로 하고 회장직은 1년 임기,부문별 교대로 선출하며 회비는 없고 동요곡집을 내서 얻어지는 수입을 잡비에 충당한다는 등 규약도 결정되었다.
이렇게 해서 정식발족한 것이 1967년 9월의 일이다. 각 부문의 명단을 보면 다음과 같다.
작사부문=김영일 김요섭 이원수 박경종 박송 박홍근 박화목 석용원 어효선 윤석중 한정동 장수철
작곡부문=김대현 김성태 김동진 나운영 박재훈 박태준 박태현 손대업 안병원 이계석 이흥렬 정세문
현재는 부문별로 15명씩으로 증원되어 있다. 사망등의 사유로 결원이 생겨도 그 부문에서만 충원을 하게 되어 있다.
또 회장직도 교대로 선출하게 되어 있다. 다른 단체에 비해 특색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첫째 모일 때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모두가 하나같이 말하는 특색이라 하겠다.
「새 동요곡집」은 세광음악출판사에서 계속 맡아주고 있다. 그리고 출판기념회 혹은 월례회가 있을 때마다 그 비용은 출판사에서 부담해 주고 있다.
회원 각자의 회비를 징수하지 않더라도 회를 운영해 나가는데 있어서 전혀 지장이 없는 것도 이 모임의 아름다운 특색이라 하겠다.
초기에는 어린이회관 같은 곳에서 신작발표회를 가지곤 하였으나 여러가지 어려운 여건때문에 한때 중단된 일도 있었다.
최근에는 서울사대부속국민학교 강당에서 신작발표회를 가졌고 금년 6월8일에는 바로 세광음악출판사에서 「새 동요곡집 제15집」 발간기념 신작발표회를 가졌다.
새로 입회한 명단을 보면 작사부문에 홍은순 유성윤 엄기원 김완기 송명호 김종상 유경환 등이다. 그러니까 창립때의 멤버중에서 이원수 한정동 두 사람이 별세한 셈이다.
또 작곡부문은 거의 교체되다시피 하였다. 즉 김순애 구두회 이상섭 김숙경 한용희 김공선 김규환 조대원 이수인 김은석 등이 새 얼굴이다.
하여튼 「한국동요동인회」는 영원히 존속할 것이다. 그래서 좋은 노래를 어린이들의 마음속에 심어줄 것이다.<장수철 시인ㆍ아동문학가>
◎“어린이 위한 좋은 노래 만들자”/67년 가을 출범… 뒤에 「한국 동요동인회」로 개명/꾸준한 신작발표… 올해 15번째 동요집 내놔박태현씨의 동요 1백곡집의 제2집이 발간된 것은 1979년 10월의 일이다. 제1집은 언제 나왔는지 끝내 보지 못하였지만 제2집에는 나의 동요 「일학년」 한편만 수록되었다.
출판기념회는 바로 방송국 옆의 어느 회관에서 성대하게 개최되었다. 그때 찍은 사진들은 영원한 기념으로 나의 앨범에 남아 있다.
후일 그와 같은 직장에서 일하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던 일이다.
동요곡집은 또 다른 곳에서도 간행되었다. 이미 1970년에 숭의보육 음악교실에서 「한국 새 동요곡집」을 간행,동요보급에 큰 역할을 하였다.
그 동요곡집에는 무려 58편이나 실려 있었는데 나의 작품으로는 「고마우신 선생님」「무슨 소릴까」「달맞이꽃」이 수록되어 있다.
어쨌든 동요곡집이 많이 출판된다는 것은 어린이들에게 항상 기쁨과 희망을 안겨주는 뜻에서 기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렇듯 나의 작품도 뜻밖에 많다. 가곡은 「들국화」외 약 20편이지만 동요는 「바닷가에서」를 비롯하여 약 2백편에 달한다.
국민학교 중ㆍ고등학교 음악교과서에도 여러편 수록되었고 음반과 테이프로도 제작되어 있다. 동요집을 내기 위해 서서히 정리해야 되겠다.
그런데 하루는 종로 3가에서 작곡가 이은열씨를 만나 다방에 들어가 오랜만에 정담을 나누었다. 그 자리에서 나는 동요 활성화를 위한 모임이 필요하지 않을까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오래전부터 생각하고 있던 일이었다. 자라나는 새싹들을 위해 좋은 동요를 제공해주는 일이 필요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개인각자의 활동보다는 역시 단체를 하나 만드는 것이 좋겠다는 평소의 생각을 말했던 것이다.
작사가만의 활동도 있을 수 없고 작곡가만의 활동도 있을 수 없다. 노래는 그 두 분야가 조화를 이루어야만 가능한,절대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것이다.
이은열씨는 나의 말을 듣자 눈을 환하게 뜨며 함께 활동할 것을 약속하였다.
그와 헤어진 길로 나는 바로 근처에서 양복점을 경영하고 있는 박경종씨를 찾아가 이은열씨와 나눈 이야기를 하였다. 그도 반대할 아무런 이유가 없어 대찬성을 하였다.
그후 손대업씨를 만나 좀더 구체화시켰다. 이건 지엽적인 얘기지만 인적구성을 토의할때 손씨가 이은열씨의 참가를 극력 반대하는 바람에 끝내 이씨는 제외되었다.
어떤 감정관계가 있었는지는 몰라도 제일 먼저 같이 의논한 이은열씨가 빠지게 된 것을 나는 아쉬워했으나 어쩔 도리가 없었다.
동요단체 결성 작업은 본격적으로 진행되었다. 우선 단체 이름을 「해바라기 클럽」이라고 하였다. 이 명칭은 후에 「동요동인회」로 바뀌었다가 다시 「한국동요동인회」로 변경되었다.
어린이 노래를 위한 모임이니까 「해바라기 클럽」도 좋았으나 대외적인 활동을 위해서는 좀 약하다는 의견이 강했기 때문이다.
회원은 작사ㆍ작곡부문 각 12명으로 하고 회장직은 1년 임기,부문별 교대로 선출하며 회비는 없고 동요곡집을 내서 얻어지는 수입을 잡비에 충당한다는 등 규약도 결정되었다.
이렇게 해서 정식발족한 것이 1967년 9월의 일이다. 각 부문의 명단을 보면 다음과 같다.
작사부문=김영일 김요섭 이원수 박경종 박송 박홍근 박화목 석용원 어효선 윤석중 한정동 장수철
작곡부문=김대현 김성태 김동진 나운영 박재훈 박태준 박태현 손대업 안병원 이계석 이흥렬 정세문
현재는 부문별로 15명씩으로 증원되어 있다. 사망등의 사유로 결원이 생겨도 그 부문에서만 충원을 하게 되어 있다.
또 회장직도 교대로 선출하게 되어 있다. 다른 단체에 비해 특색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첫째 모일 때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모두가 하나같이 말하는 특색이라 하겠다.
「새 동요곡집」은 세광음악출판사에서 계속 맡아주고 있다. 그리고 출판기념회 혹은 월례회가 있을 때마다 그 비용은 출판사에서 부담해 주고 있다.
회원 각자의 회비를 징수하지 않더라도 회를 운영해 나가는데 있어서 전혀 지장이 없는 것도 이 모임의 아름다운 특색이라 하겠다.
초기에는 어린이회관 같은 곳에서 신작발표회를 가지곤 하였으나 여러가지 어려운 여건때문에 한때 중단된 일도 있었다.
최근에는 서울사대부속국민학교 강당에서 신작발표회를 가졌고 금년 6월8일에는 바로 세광음악출판사에서 「새 동요곡집 제15집」 발간기념 신작발표회를 가졌다.
새로 입회한 명단을 보면 작사부문에 홍은순 유성윤 엄기원 김완기 송명호 김종상 유경환 등이다. 그러니까 창립때의 멤버중에서 이원수 한정동 두 사람이 별세한 셈이다.
또 작곡부문은 거의 교체되다시피 하였다. 즉 김순애 구두회 이상섭 김숙경 한용희 김공선 김규환 조대원 이수인 김은석 등이 새 얼굴이다.
하여튼 「한국동요동인회」는 영원히 존속할 것이다. 그래서 좋은 노래를 어린이들의 마음속에 심어줄 것이다.<장수철 시인ㆍ아동문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