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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곡이야기

한국가곡 80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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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가곡의 태동


인간이 세상에 태어나면서 부터 거의 자생적으로 생겨난 것이 음악이요 그중에서도 가장 먼저는 성악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사람은 신체의 결함이 없는 한 누구나 노래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노래를 즐겨하는 것을 흔히 인간이 타고난 음악적인 본능이라고 한다.

지난 날 고대의 노래는 가사에 의한 단조로운 억양의 기복(起伏)에 지나지 않았다. 이것이 시대의 흐름에 따라 지속적인 변화를 거듭했는데 유럽에서는 개인적인 창작활동의 표현으로서의 가곡을 불렀다는 것을 그리스에서 볼 수 있었다. 근세 유럽에서는 11세기경 귀족층 기사들의 가인(歌人)들에게 노래가 성행하기 시작했다. 중세기의 가곡은 시가 우위였으며 멜로디는 종속적이었으며 리듬은 불규칙하였다. 그러다가 14세기경에 와서 점차 가락본위로 변화하게 되었다. 그 후 합창. 중창. 독창 등 말하자면 예술적인 독창가곡의 길은 16세기에 와서야 열렸다.

독일에서는 종교개혁 이후 민요계통의 새로운 성가를 쓰기 시작했는데 그같은 영향은 마침내 독일가곡의 기초가 되었으며 18세기 후반 독일의 창작 가곡에 박자를 더해 근대 예술가곡으로의 발전을 보았다. 17세기에는 이탈리아의 오페라가 독창곡 중심으로 성행하였으며 그 외에 가벼운 기분의 「칸쪼네타」가 생겼다. 이 시대에 독일에서는 모차르트, 베토벤 으로부터 슈베르트, 슈만, 브람스, 시트라우스에 이르는 근대예술가곡의 전형을 이룩하였다. 프랑스 또한 독일의 영향으로 프랑스의 근대시와 결부하여 프랑스 가곡의 전통에 알맞는 가곡을 창작하였다.
19세기 중기에 이르러서는 러시아를 위시해 노르웨이, 체코 등 여러나라의 민족적인 예술가곡의 성행을 보았다. 이 시기에 와서, 비로소 흔히 말하는 문학성과 민족성이 강한 예술가곡의 전성을 이루기 시작하였다.

한편, 우리나라에서 원래 가곡이라는 말은 우리 전통음악에 있어서 관현악에 흡사한 형태의 반주에 얹힌 시창조의 가까운 노래를 뜻함이고 또 그렇게 쓰여져 왔으며. 근래에 정악(正樂)에 속하는 성악곡이 있었는데 그것은 가야금 등의 속악기(俗樂器)를 사용하여 애정을 구가한 뜻이 높고 아담한 노래들이었다.

그러다 1885년 기독교 선교사에 의해 소개된 찬송가의 신선한 매력과 폭발적인 대중성은 새로운 시대의 여명기에 들어선 우리나라의 젊은이들을 사로잡기에 충분했고 이는 서양음악이 우리나라에 들어온 효시이다. 그 뒤 구한말 학부에서 발간된 창가집은 서양음악이 일본을 통해서 다시 들어오게 된 하나의 표본이라고 하겠다.

이어서 설립된 새로운 교육기관인 <학교>의 발전과 때를 같이하여 우리의 음악사도 그 시발점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런속에서 자라난 것이 우리가곡의 초창기 모습이다.

그 후 1900년경, 즉 광무4년에 만들어진 <군악대>는 이른바 서양음악을 연주하는 최초의 악단이었으며 1904년 김인식에 의해 작곡된 2절 16마디 짜리 "학도가"의 탄생은 개국이래 최초의 창작가곡으로서 드디어 우리나라 신음악의 전환점이 된 것이다. 이는 현재의 수준으로 볼 때에는 그 단순성이 안타깝고 본격적인 가곡이라고 말하기에도 무리한 점이 없지 않았으나 찬송가조의 곡조로라도 우리말의 노래를 만들 수 있었다는 것에서 당시로서는 놀라울 정도의 혁신이었다.

김인식씨가 음악교육에 종사한 것은 1911년 우리나라의 음악교육기관의 효시라고 볼 수 있는 조선정악전습소의 교사로 취임하면서이다. 조선정악전습소에서 가르킨 제자가운데 이상준(李尙俊)은 역시 우리나라 가곡의 요람을 누빈 가곡 작곡가의 한 사람이다. 이상준의 노래는 지금도 기록에 많이 남아있다. 이 두사람의 작품이 예술적이라고 하기보다는 창가라고 표현하는 것이 좋겠지마는 그중에는 찬송가나 일본의 군가조에서 벗어나 한국적인 취미를 살린 경향도 보이는 점은 흥미롭다.,

이들의 뒤를 이은 작곡가가 홍난파(永厚)이다. 난파는 두 사람과 비교해 볼 때 외국에서 음악공부를 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그럼으로서 전기작품에 비해서 후기의 작품은 월등하게 음악적인 進境을 보여주었다. 그의 가곡의 수법은 고전학파 혹은 전기낭만음악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지만 봉선화(1920)는 그 가사를 민족적인 울분에다 호소한 것이기 때문에 줄기찬 호소력을 가지고 있었다.

바로 뒤를 이어 현제명, 채동선, 이흥렬, 김노현, 구두회 등 명실상부한 1세대 작곡가들이 등장하면서 우리가곡에 본격적인 뿌리가 내리고 주옥같은 우리가곡들을 발표하면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서정적인 아름다운 노래가 많이 작곡되고 유포되었다.

<참고 문헌 : 음악평론가 이성삼. 이상만의 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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