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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곡이야기

'기다리는 마음' - 김민부 시인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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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출봉에 해 뜨거든 날 불러주오
월출봉에 달 뜨거든 날 불러주오 -김민부

노래는 죽지 않고 살아서 우리가 사는 마을 뒷동산에 해도 띄우고 달도 띄우지만 노래를 바친 시인은 해만큼, 달만큼 살지 못한다.
사람들은 제 슬픔, 제 기다림, 제 사랑을 한껏 목청에 실어 가곡 '기다리는 마음'을 부르지만 정작 그 시를 지은 이의 이름을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이 시를 쓴 김민부는 내가 어찌해 볼 수 없는 한 수 위의 천재였다.

그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시집 '항아리'를 들고 나온 소년시인이었고 고등학교 3학년, 만 열여섯 나이로 195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시조 '균열'이 당선되었다.
그는 부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막바로 서라벌대학 문예창작과에 들어와 맞부딪혔으니 그가 별 네개 쯤의 장성이라면 나는 일등병쯤 되는 계급의 차이가 있었다.
신춘문예당선도 부럽기 그지없지만 그 보다도 나는 그의 '균열'에 기가 죽어 있었다.
"달이 오르면 배가 고파/배 고픈 바위는 말이 없어/할일 없이 꽃 같은 거/처녀 같은 거나/남몰래 제 어깨에다 새기고들 있었다." 이렇게 첫 수를 여는 이 시조는 서정시를 잘 쓴다는 어느 기성시인의 솜씨도 넘어서는 것이어서 글재주로만 돌릴 수 없는 신운(神韻)같은 것이 팔딱거리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김민부는 깊숙한 눈과 이국적 마스크를 내세워 자신은 순국산품이 아닌 혼혈아라고 우리를 을러대기도 했다. 혼혈아가 천재라는 미신을 이용한 것이지만 한 반 친구들은 어느 누구도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일찍 피는 꽃은 일찍 시드는 것인가. 눈에 이상한 빛을 띠면서 "그것은 숱한 달빛이 착종하는 꽃밭이었다"고 시 '나부(裸婦)와 새'를 컴컴하게 읊어대고 쉬는 시간이면 잔디밭에서 미당의 시'입맞춤'을 "오락꼬 오락꼬 오락꼬만 그러면"하고 부산 사투리로 잘도 외던 그는 시 쓰기를 접고 MBC에서 방송작가로 열중한다.

한동안 서로 왕래가 끊겼던 68년 날씨가 추워질 무렵 뜻밖에도 김민부에게서 전화가 왔다. 차 한 잔을 하자고 북창동까지 찾아와서 마치 수줍은 소년처럼 풀잎 빛깔의 표지에 김상옥의 제자를 은박으로 찍은 시집 '나부(裸婦)와 새'를 슬며시 내민다.
"친구들끼리 저녁이라도 먹자"고 해 저녁 먹고 헤어질 때 그가 MBC정동 방송국 쪽을 향하여 뒷짐을 지고 휘적휘적 가던 모습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그가 시인의 길로 돌아온 것을 환영하는 어떤 짓도 우리는 못해주고 그는 72년 가을 방문을 잠그고 스스로 석유난로를 엎어 시를 위한 소신공양(燒身供養)을 했다.

"나는 앞으로 더 많이 외롭고 더 많이 사랑하고 더 위대한 미아가 되리라"는 그의 시집 후기가 그의 시에 자주 나오는 '죽음'과 더불어 어떤 예감을 갖게 한다.
천재시인은 신의 영역을 침범해서 일찍 데려간다던가. 그의 '기다리는 마음'은 제주도 성산일출봉에 돌비로 서서 이 아침에도 뜨는 해를 기다리리라. 기다려도 기다려도 오지 않는 것은 임인가, 시인가, 시인인가.
이근배 <시인.한국시인협회장>

[중앙일보] 2003-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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