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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월[구두회 시/구두회 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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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곡 사우월(思友月)은 아름다운 사랑의 세레나데이다.
8.15 해방직후의 혼란속에서 약혼녀와 헤어져 있어야 했던 작곡가의 애절한 마음이 선율로 형상화 된것이다.
시도 작곡가의 것이어서 이 가곡은 더 한층 깊은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

작곡가 구두회씨는 평안남도 강서군 초리면에 있는 봉선이라는 조그마한 부락에서 해방을 맞았다. 구씨가 이곳 덕흥국민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을때이다.
동경고등음악학교에서 작곡을 전공한 그가 이런 벽촌에서 어두운 나날을 보낸데는 그런 사연이 있었다.
일제는 전쟁이 막바지에 이르자 전력부족을 메우기 위해 우리나라의 젊은이들을 마구잡이로 잡아 전쟁터에 내보냈다.
음악같은 것은 사치에 불과하다고 해서 음악학교에 대한 징병은 더욱 심했다. 구씨가 징병을 피하기 위해 몸을 둔 곳이 이곳 덕흥국민학교였다.
"형이 국민학교 교사로 있던 부여군 송천면에 숨어 있었는데 주재소 주임이 찾아와 피신을 결정했죠"

기독교는 일제의 탄압아래 허덕이던 우리민족에게는 커다란 정신적 안식처가 되었다.
구씨도 기독교 신자였고 일본으로 가기전 평양의 요한학교에서 신학공부를 하였다.
그는 국민학교 선생을 하면서 여러 교회에서 성가대를 조직하기도 하고 음악예배를 봐주는 것으로 마음을 달래기도 하였다.

덕흥국민학교는 거의가 한국인이었는데 그들은 점심때가 되면 모여서 합창을 하기도 하고 일제의 말로를 몰래 이야기 하기도 하였다.
일본인 교장은 한국인 교사들끼리 모이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겨 군 기관장회의에서
구씨가 비밀결사대를 조직하여 독립운동을 한다고 말하기도 했으나 당시 기독교인이었던 강서경찰서장(일본인)이 교장에게 '그렇다면 당신이 먼저 책임져야 할 일 아니냐'고 해서 무마되었다.
감격의 해방을 맞았으나 강서군에는 일본인들이 무장을 풀지않고 있었는데 이 기간동안 구씨는 자신이 어떻게 처신해야 좋을지 곤혹스러웠다고 한다.

해방된지 한달남짓 되었을 때 교장이 평소 가지고 있던 일본도(日本刀)를 뽑아 손질을 하고 있었다. 구씨는 섬뜩한 생각이 들어 학교 정문 앞에 있던 사친회 회장집을 찾아갔는데 때마침 그집에는 아무도 없었다고 한다.
구씨는 보리짚단이 이곳 저곳 널려 있는 그집을 서성이다 밤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구씨는 밤하늘의 달을 보면서 약혼한 김경환여사 생각이 간절했다.
약혼자 김씨는 당시 강서읍에서 교편을 잡고 있었다.
구씨는 방으로 들어가 머리에 떠오르는 시 귀절을 종이에 옮기면서 거기에 선율을 붙여갔다.
바람결에 보리짚 냄새가 몰려왔다. 이렇게 작곡된 곡이 '사우월'이다.
구씨는 1921년 충남 공주에서 태어났다. 동경제국고등음악학교를 거쳐미국 보스턴 음악대학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구씨의 작품으로는 가곡외에도 바이올린 협주고, 피아노 협주곡, 교향시 등이 있고 저서로는 '화성악연구', '대위법연구'와 가곡집 '머들령'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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