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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곡이야기

귀천[시인 천상병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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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밤 무심코 시선을 돌린 TV에서 영상과 함께 자막으로 흘러가는 그의 시를 읽는 순간 무엇인가 마음이 뭉클하기에 누가 지은 것인가 하고 열심히 보고 있다가 엉겁결에 갖고 있던 노래악보에 적어 놓았다.「천상병」…. 천상병? 좀처럼 생각이 안났다. 내가 외우고 있는 노래시에는 이런 작시자가 없었는데….
갖고 있는 몇 권 안되는 시집, 명시 해설집에도 없고 한국가곡집을 찾아봐도 천상병이라는 작시자는 없었다.이튿날 한 문인단체에도 알아봤으나 시인은 아는데 주소나 전화번호를 모른단다. 수소문 끝에 서울 인사동의 「귀천」이라는 찻집이 무언가 관련이 있는 듯 하니 그리 알아보라기에 114에서 전화번호를 알아내 그 집 주인인 천상병시인의 부인 목순옥여사와 전화로 마주쳤다. 그러나 천상병시인은 3년 전에 이미 유명을 달리했음도 알았다. 부인께 전화를 하게 된 자초지종을 말씀드린 다음 우선 「귀천」시 전문을 받아 적었다. 시 「귀천」을 노래로 작곡하여 제가 부르고 싶다고 말씀드리고 작곡은 나의 친구인 「명태」의 작곡가 변훈형에게 부탁하겠다고도 했다. 그러나 변형이 요즈음 병상에 누워 있으니 속으로는 참 답답한 일이었다.
며칠 후 목여사께서 보내주신 세 권의 책을 받았다. 천시인의 시집과 자서전, 목여사의 회고집인 「날개 없는 새 짝이 되어」였다.사흘만에 다 읽고나니 오래 전부터 사귀던 친구인양 천시인을 더욱 가까이 느끼게 되었다. 평소 문학이나 글쓰는 방면에 소양이 없는 내가 그 분의 시를 이렇다 저렇다 감히 말할 수는 없지만 가장 쉽고 느낀 그대로를 표현하는 천진하고 순수한 시인이었다고 생각된다.

세 권의 책을 받고 용기를 얻어 변훈형에게 시를 전해주고 작곡을 종용했다. 시를 본 변훈형도 내용이 좋다고 작곡의욕을 보였다. 혹시 이 시의 작곡을 계기로 그의 건강이 회복되지나 않을까 하는 나의 바람도 있었다.특히 「귀천」시의 마지막 연인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가 변훈형의 가슴에 청아하게 와닿는다고 했다. 나도 그것을 느꼈으니 말이다.

그 뒤 부활절예배를 보고 교회에서 돌아오는 길에 인사동에 들러 물어물어 사람 둘이 겨우 들어갈까 말까 하는 좁은 골목의 찻집 「귀천」을 찾았다. 목여사와는 첫 대면이었지만 서먹하지 않았다. 천시인이 항상 지켰다는 그 자리도 금방 알 수 있었다. 시인은 그 자리에 앉아 있다가 젊은 여인이 들어오면 큰 소리로 『야! 니 참 이쁘데이』라고 서슴없이 고함쳤다는데 그 모습도 충분히 떠올릴 수 있었다.며칠전 아침 변훈형에게 전화했더니 가곡 「귀천」의 멜로디가 떠올라 거의 끝을 보게 됐다고 했다. 그 노래를 처음 불러볼 기쁨과 기대에 나는 지금 무척 행복감에 젖어 있다.

그는 술을 좋아해 술에 얽힌 일화가 많다. 대학시절 소설가 한무숙의 집에 식객으로 있을 시절, 어느날 잠도 안 오고 술생각이 간절해 낮에 얼핏 본 안방 화장대 위의 양주병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모두가 잠든 사이 안방에 숨어들어 어둠 속에 어렴풋이 보이는 양주병을 들고 나와 단숨에 들이키고 보니 향수였다는 일화가 있다.

1967년 동백림 사건에 연루되어 6개월간의 옥고를 치른 후 천상병의 몸과 마음은 서서히 파괴되어 갔다. 한때 행방불명되어 그가 죽었다고 생각한 문우들은 80여 편의 시를 모아 유고시『새』를 내었다. 살아있는 사람을 두고 유고 시집이 나오는 해프닝이 벌어진 것이다.

1993년 4월 28일 그는 이 세상 소풍을 끝내고 하늘로 돌아갔다. 소설가 천승세의 말처럼 평생 평화만을 쪼던 새가 하늘로 날아간 것이다. 시집 『새』,『귀천』,『주막에서』 등과 산문집 『괜찮다 괜찮다 다 괜찮다』를 남겼다.(경남 마산출생; 1930-1993)

한국일보 96. 5. 12
1 Comments
이수현 2007.10.24 02:04  
하나에 정말 많은 이야기들이 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