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자료실 > 가곡이야기
가곡이야기

전직 교장 홍승훈씨 가곡·동요 등 300여 곡 영어 변역

운영자 0 4781
"한국 가곡과 민요, 동요의 아름다움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가사를 영어로 번역한 지 벌써 34년이 흘렀네요."
14년 전 정년퇴임한 전직 교사 홍승훈(80)씨는 우리 노래 300여 곡을 리듬에 맞게 영역(英譯)해왔다. 그렇게 번역한 노래들을 자신의 블로그(blog.naver.com/nanamps)에 올리는 작업을 최근 마무리한 홍씨는 11일 기자를 만나 "많은 이들이 블로그를 찾아서 아름다운 우리 노래들을 세계에 널리 알리는 데 나섰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홍씨는 "요즘 영어 교육은 입시에 목매느라 점수 따기에 급급하다"며 "아름다운 우리 노래를 영어로 부르며 학습하고 풍류도 즐겼으면 하는 마음에 번역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그는 1996년 나주중 교장으로 재직할 당시 이 공로로 한국일보가 주최하는 제15회 교육자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1954년 교편을 잡은 그는 1976년 교감으로 부임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우리 노래를 번역해서 학생들에게 가르쳤다. "1997년 정년퇴임까지 7개 학교를 옮겨 다녔는데, 매번 음악교사를 설득해 방과 후 영어 노래 수업을 했어요. 교감, 교장이면 어때요. 학생들 만나는 게 제 기쁨인 걸."
홍씨의 번역곡 목록에는 초중고 교과서에 수록된 노래는 물론 '아 대한민국' 같은 노래도 포함돼 있다. "지금 세대에게는 유행가가 더 익숙할 테지만 교사로서 아이들을 위해 동요를 선곡했다"는 그는 "노래를 문학적으로 번역하면 음절과 강세가 잘 맞지 않아 부르기 곤란해진다. 전치사와 관사를 적절히 배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민요는 여음이 있어 비교적 음절을 맞추기 쉽지만, '고향의 봄'처럼 단순한 동요가 오히려 번역하기 까다롭다는 것이다.

영미 문화와 가까운 표현을 사용하기 위해 홍씨는 늘 영한, 한영, 영영 사전을 동시에 뒤적였다. 하지만 그는 "사전만 믿다가는 엉터리 해석을 할 수도 있다"며 웃음을 터뜨렸다. "하루는 '국화 옆에서'의 '소쩍새'를 번역하는데, 한영 사전에는 뻐꾸기과 정도로 나와 있었어요. 원래 올빼미과거든요. 서점까지 달려가서 조류 백과를 찾았죠." 이렇게 초벌 번역을 마친 뒤에는 원어민 교사ㆍ교수의 감수를 받아 완성도를 높였다. 그는 "스무 번이나 교정본이 오고 간 곡이 있을 정도로 힘들었지만, 그들이 내 덕에 한국문화를 많이 배웠다는 말을 할 때면 큰 보람을 느꼈다"고 했다.

그는 1,000여 곡의 외국 노래를 한국어로 옮기기도 했다. 그러다가 국내에 번안된 외국곡이 원문과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점을 발견했다. "우리가 즐겨 부르는 '클레멘타인'의 첫 소절 '넓고 넓은 바닷가에 오막살이 집 한 채'는 원곡에서 어떤 단서도 찾을 수 없어요. 저는 '어느 계곡 광산 위에 파 놓은 동굴 속에'로 직역해 보았지요." 홍씨는 자신의 번역이 자연스럽지는 않지만 원문에 담긴 뜻을 느낄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했다.

홍씨가 이 일을 해오면서 가족들은 외출도 자제하고 식사시간 외에는 작업에만 매달리는 그를 걱정스레 바라봤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 가족들은 그가 즐겁게 노래를 번역한 덕분에 여든 나이가 되도록 맑은 정신을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완벽한 번역은 없어요. 앞으로 더 비판 받아 수정한 결과물을 책으로 내고 싶어요."

김혜경 기자 thanks@hk.co.kr" rel="nofollow">thanks@hk.co.kr
[한국일보]|2010-03-12|37면 |41판
0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