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고등어를 구우며

간고등어를 구우며
박수호 시/김경양 곡/소프라노 유소영/피아노 김민경

남해 따뜻하고 맑은 물에 살찌우고
동해 푸른 물에 사랑 키웠네
내 생 또한 만남과 배신, 이별로
황량함이 가득할 때도 있었으나
거친 바다 숨소리에 놀라지 않고
같이 몸을 섞어 깊어지고
물결들의 미세한 움직임도 읽을 수 있을 때까지는
많은 것들을 버려야 하는 세월 흘렀지
언젠가 나는 길을 떠나고 몸은 나를 버릴 것인데
그대 식탁에 오르면 거두어 주시게
내가 얻는 이름 하나

산사의 고적과 여유를 즐기고 싶었느니
눈부신 가을 자한편(子罕篇)을 읽다가 뭍에 올랐네
어차피 가야 한다면
희미한 흔적도 남기지 말아야 한다지만
뒤척이다 바다 쪽으로 돌아누우면
바다 소리 자꾸 등을 파고 들었어
안동 유가에 불려 나가 양반의 풍모 배워
이름 얻었으니 얼간재비야

무엇이 되려했는지는 묻지 마시게
선비의 걸음걸이로 흐를 수 있다면
흘러서 그대 마음에 닿을 수만 있다면
길을 묻건 물결을 가르든 무에 대순가
바다의 거친 숨결을 생각하면 아직 가슴 일렁이지만
마음속에 남겨두어야 더 아름다울 바다 냄새와
한결 그윽해진 눈빛을 보게 되리라
언젠가 나는 길을 떠나고 몸은 나를 버릴 것인데
그대 식탁에 오르면 거두어 주시게
내가 얻는 이름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