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를 보았네 바다를 보았네
어릴 적 바라보기만 하던
꿈꾸기만 하던 바다를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
우연히 보게 되었네
외로울 때 아무도 없을 때
산에서 멀리 바라보며 꿈만 꾸던
바다여 그 바다여
어른이 되어 배를 만들 수 있다면
찾아 가리라던 그 바다
호흡은 거칠고 머리카락 희어지고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은
우연히 그 어릴 적 바다가
그 맑고 깨끗한 바다가 보여서
그 바다가 다시 소년이 되어서
바다를 찾아 가네
기다리는 바다를 꿈의 바다
전주부터 예사롭지 않다.
기다리는 바다를 만나 환희에 넘치는 모습을 노래한 시와 곡이
아주 혼연일체가 되는 노래로 여느 가곡과는 다른 새로운 스타일의
노래로 마치 한 편의 아리아를 듣는 것 같다.
후주 또한 인상적이다
마치 콜룸부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것 같은...
새하늘과 새땅을 바라보고 안도하며 휘파람을 불고
콧노래를 부르며 안도하는 耳順의 소년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는 듯하다.
누가 그랬던가 명품은 명품을 낳는다고.
작곡자 오 교수님은 동시대를 살아온 김건일 시인님의 가슴을
누구보다도 잘 읽어내시고 곡을 붙이신 것 같다.
하늘빛 그리움으로
하늘처럼 너무나 먼 그대 그리다가
하늘빛 닮은 바다가 되어버린 소녀여
바람처럼 스치고 가고 없는 날에도
작은 배를 만들어 찾아오리라는
그대의 아름다운 약속을 잊을 수 없어
노을지는 바다에 은발머리카락 날리며
휘파람 불면서 노저어 오리라던 그대를
하늘빛 그리움으로 기다리는 소녀여
<기다리는 바다7> 은 김건일 시인께서 7번째 로 쓰신 바다 인가 하는생각입니다
7 자를 쓰셨기에...
이 시는 광활한 바다위에 마음껏 꿈을 펄쳐놓은 소년과같은 순수함과 원대한 희망이 샘솟듯 펄쳐있습니다.
어렸을적 꿈만 꾸던 그바다가 어른이 되어 다시 찾은 그바다는 환희에 차 있지요
그래서 후주에는 소년의 모습은 꿈과 환희에 차 소년처럼 휘파람 불며 흥얼거리는 모습이릴까요...
바다님의 해석이 너무 멋지군요
나도 오늘은 하늘빛 그리움으로 꿈을 기다리는 소녀가 되렵니다.
이 글은 동호회게시판에 올려진 글로
작곡가이신 오 교수님과 시인이신 김건일 선생님게서 주고받은 글로
이 노래를 감상하시고 부르시는 분들께 조금이라도 도움을 드리고 싶어
퍼 온 글입니다.
기다리는 바다 7
김 건 일
바다를 보았네
어릴적 바라보기만 하던
꿈꾸기만 하던 바다를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
우연히 보게 되었네
외로울 때
아무도 없을 때
산에서 멀리 바라보며
꿈만 꾸던 바다
어른이 되어 배를 만들 수 있다면
찾아가리라던 바다
호흡 거칠고 머리칼 흰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
우연히 그 어릴적 바다가
그 맑고 깨끗한 바다가
보여서
다시 소년이 되어
바다를 찾아가네
기다리는 바다를
꿈의 바다를
오숙자.#.b
2004-09-26
김건일 선생님
안녕하세요
1회 때 가곡부르기와 시낭송 때 뵈었으니 한참 되었죠.
저는 가슴이 따뜻한 사람이 좋습니다.
더우기 음악은 사람과 사람의 마음을 연결해주는 무선교신 역할을 하지요.
바로 일년 전입니다.
추석연휴에 집중적으로 <기다리는 바다7>에 빠져서 작곡을 마쳤습니다.
손과 손을 잡으면 마음까지 통하는 사람이 있지요.
그렇듯이 시와 선율이 서로 통하여 하나의 가곡이 탄생되었으니
손과 손의 유선연결이 아닌 시와 선율의 무선연결이 되온지라
무슨말이 더 필요하겠습니까
우리 그런 사이가 되어요.
감사합니다.
김건일
2004-09-26
그 시는 작년 집을 떠나서 산에서 농막을 짓고 홀로 생활할 때
이상은 이루어지지 않고 비는 여름 내내 내리고 그리운 사람은
멀리 떨어져 있고
나의 고향 마산 바다도 멀리 있고 아무도 없고 외로울 때
오 교수님과 생질 조수미 관계로 전화를 할 때 불행하게도
나의 가장 사랑하던 사람이 가버리고 그래서 <가버린 꽃>이 탄생한 후
우연히 바다를 보아서 다시 절망에서 소년의 희망을 다시 찾게된 동기를
그린 시 입니다.
나에게는 절대의 고독 절명의 시기에 창작된 아픔이 깊은 시 기에
애착이 남다릅니다. 작곡해 주셔서 고맙고 발음만 정확하고 의미
전달만 정확히 된다면 한이 없겠습니다.
***....***....***...***...
두 분은 저의 인생에 있어서 새로운 지표를 마련해 주신 분들이라
두 분의 대화를 이 곳에 남겨 대작곡가와 대시인의 만남이
가슴과 가슴으로 만나는 무선교신이 오래도록 계속되시길 빌면서
이 <기다리는 바다7>이 불후의 명작이 될 것을 기원합니다.
작곡가 성악가 작사가 모든분들께 불만이 많았습니다.
가곡이 너무 고음이고 가사의 의미 전달이 안되고 아무리 귀를 기울여 그 가사의 의미를 알아볼려고 해도
의미가 정확히 귀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한국 신작 가곡에 절망하며 오래 떠나 있었습니다.
몇년이 지나서야 가곡의 가사가 익혀지고 뜻이 마음에 들어오니 비로소 가곡에 정이듭니다.
작곡가님들이 심혈을 기울이시고 성악가님들이 열창을 하셨지만 국민들 속으로 파고 들려면 좀더 낮은 음으로 작곡해 주셨으면 합니다.
편안하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작시한 시도 가곡에서 그 단어를 알아 들을 수 없었습니다.작시가가 못알아 듣고 의미를 모르는데 어찌하여 대중이 그 뜻을 알겠습니까.
예술 이전에 의미 전달이 안되면 그것은 하나의 음일 뿐 아무 의미가 없어서 가곡으로서의 가치가 없다는 뜻 입니다.
가곡 이전에 그 내용이 확실하게 청중들에게 의미 전달이 되는 가곡을 작곡해야 된다고 생각 합니다.
작곡가들을 폄하해서 하는 말이 아니고 신곡을 들으면 무슨 내용인지 도무지 알 수 없고 10번 20번 들어도 무슨 내용인지 심지어 가사를 보고도 그 가사의 발음이 귀에 들어오지 않고 높은 음만 귀에 울립니다.
너무나 안타까워서 개선의 방법이 없을지 심사숙고 끝에 한말 올립니다.
곡이 음이 아무리 높아도 의미 전달만 되면 아무 문제가 없겠지만 음이 높아서 그런지 아니면 성악가의 발음이 정확하지 않아서 그런지는 판단을 못하고 내가 있지만 내가 작시한 노래도 가사의 발음이 정확하게 귀에 들리지 않아서 무슨말을 하는지 모르겠고 몇번이나 따라 불러 볼려고 해도 따라 부를 수가 없었습니다.
솔직히 신곡이 많이 창작 되어도 국민들 속으로 파고 들지 못하는 이유를 연구해봐야 될것 같은 안타까운
마음을 이해해 주시기를...
김건일작시자의 안타까움을 이해합니다.
이 곡이 대중적이지는 않지만
이 곡을 듣고서 악보를 받아든 오래 전
어느 날 저의 가슴은 마구 뛰기 시작했습니다.
잘 부르지는 못하지만 불러 보았습니다.
작시자, 작곡자, 성악가, 관중이 동시에
상승효과를 낸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마는
작곡가 나름대로의 예술적 표현을
누가 감히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있겠습니까?
코발디님처럼 저도 가곡을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저도 저 나름의 의견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요즘 많은 가곡들이 시부터도 장황하거나 아니면 또 난해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곡들도 따라서 까다로워질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곡이 대중가요처럼 작사되거나 작곡되길 바라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가곡이 단지 시인의 감상적 느낌이나 작곡자 자신의 자존심이나 성악가의 높은 음의 경지에만 맞추어져 있는 것이라면 그들끼리의 축가로 그쳐야만 될 것입니다.
그런 식으로 만들어져 가는 게 많으면 많을수록 가곡은 한국인의 정서에 꼭 맞는 음악장르임에도 불구하고 외면을 당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