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곡운동본부의 오래된 추억의 자료
바다박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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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27 04:14
2004년 2월에 시작된 우리가곡운동본부의 초창기 소중한 자료를 올린다.
처음 애창운동을 시작했을 홍보도 덜 되고 사람도 모이지 않아 궁리 끝에
왼쪽 네임박스에 뜬 사람들을 사흘 동안 일일이 클릭하여 서울.경기에 주소를 둔 사람들에게 사비를 들여 광주에서 일일이 엽서를 띄웠다.
40여 명이 못 되던 회원들이 한성훈 작곡가를 모시는 날은 80여 명이 참석하여 성황을 이뤘던 기억이 새롭다.
당시 나는 홍보분과 분과위원장이라는 직함을 갖고 있었다.
광주에서 서울까지 올라가 행사를 마치고 심야고속버스를 타고 내려오는 일이 피곤하였지만
그저 우리가곡을 살려야겠다는 사명감으로 했었다.
그때 행사 안내를 하며 썼던 <그대 내 엽서를 받거든>은 후에 <그대 내 편지를 받거든>으로 수정하여 아름다운 가곡으로 탄생되었다.
그대 내 엽서를 받거든
봄꽃처럼
내 안에 피어나는
그대를 어쩔 수 없어
3일 동안
그대에게 쓴 편지
이 봄에
그대가 못 견디게
그립고 보고 싶다
나
긴 머리 휘날리며
화사한 복사꽃
예쁜 미소로 달려가리니
그대
내 엽서를 받거든
우리들의 사랑노래가
꽃처럼 피어나는
모짜르트 카페로
어서 오라 그대여
옷깃을 여미고
그대 내 편지를 받거든- 박원자 시 / 김형태 곡 / 소프라노 김인혜
꽃처럼 소담스레 내 안에 피어나는
아련한 기억 속의 그대를 어쩔 수 없어
사흘동안 써내려간 풀꽃 같은 편지
그대가 못 견디게 그립고 보고 싶다
사랑하는 그대여 내 편지를 받거든
우리들의 사랑이 꽃처럼 피어나던
길모퉁이 찻집으로 꿈을 타고 달려오라
옷깃을 여미고 그리운 내 사랑아
아름다운 가곡시리즈 3 - 시는 노래가 되어
한국예술가곡사랑회 / B&B Music(2005.11)
처음 애창운동을 시작했을 홍보도 덜 되고 사람도 모이지 않아 궁리 끝에
왼쪽 네임박스에 뜬 사람들을 사흘 동안 일일이 클릭하여 서울.경기에 주소를 둔 사람들에게 사비를 들여 광주에서 일일이 엽서를 띄웠다.
40여 명이 못 되던 회원들이 한성훈 작곡가를 모시는 날은 80여 명이 참석하여 성황을 이뤘던 기억이 새롭다.
당시 나는 홍보분과 분과위원장이라는 직함을 갖고 있었다.
광주에서 서울까지 올라가 행사를 마치고 심야고속버스를 타고 내려오는 일이 피곤하였지만
그저 우리가곡을 살려야겠다는 사명감으로 했었다.
그때 행사 안내를 하며 썼던 <그대 내 엽서를 받거든>은 후에 <그대 내 편지를 받거든>으로 수정하여 아름다운 가곡으로 탄생되었다.
그대 내 엽서를 받거든
봄꽃처럼
내 안에 피어나는
그대를 어쩔 수 없어
3일 동안
그대에게 쓴 편지
이 봄에
그대가 못 견디게
그립고 보고 싶다
나
긴 머리 휘날리며
화사한 복사꽃
예쁜 미소로 달려가리니
그대
내 엽서를 받거든
우리들의 사랑노래가
꽃처럼 피어나는
모짜르트 카페로
어서 오라 그대여
옷깃을 여미고
그대 내 편지를 받거든- 박원자 시 / 김형태 곡 / 소프라노 김인혜
꽃처럼 소담스레 내 안에 피어나는
아련한 기억 속의 그대를 어쩔 수 없어
사흘동안 써내려간 풀꽃 같은 편지
그대가 못 견디게 그립고 보고 싶다
사랑하는 그대여 내 편지를 받거든
우리들의 사랑이 꽃처럼 피어나던
길모퉁이 찻집으로 꿈을 타고 달려오라
옷깃을 여미고 그리운 내 사랑아
아름다운 가곡시리즈 3 - 시는 노래가 되어
한국예술가곡사랑회 / B&B Music(2005.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