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신일
바리톤
용산 고등학교 졸업
총신대학교 종교음악과 성악전공 수료
한양 대학교 음악 대학 성악과 졸업
로씨니 국립 음악원 (Conservatorio di “ G. Rossini” )
오시모 시립 아카데미아 (Academia Lirica e Corale di Osimo)
사사: 조성문, Sesto Bruscantini , Giuseppe Valdengo, Antonio Tonini
로씨니 200주년 기념 페스티발 오페라 “세빌리아의 이발사” 피가로 역으로 유럽무대 데뷔
라 트라비아타 제르몽역, 피가로의 결혼 백작역, 돈 죠반니 ,돈죠반니 역,마담 버터플라이 샤르플레스역등 공연
그 외 100여회 콘서트 출연
현 아메데오 성악 스튜디오 대표
현 푸른 소리 남성 앙상블 상임 지휘자
현 전국 교회 지휘자 협회 부회장
현 칸티암 기독 성악가 예술감독
현 신일교회 시온 성가대 지휘자
현 서울 기독대 합창,지휘 지도교수
현 클래식공연 코디네이터
성악이 뭐 그리 어려운가?
그냥 하면 되지........
수학문제 풀기가 그렇게 어렵고 학교 공부 하려고 책만 펴면 몸에 쥐가났었다..
대학이란델 가기 위해 고등학교 3년 내내 머리 싸매고 고민 했지만 점수는 제대로 나오지도 않고 고민고민 끝에 원서를 썼지만 결과는 낙방...........
후기 대학이라도 가려고 눈치 보고 있을 때 어머니의 강권에 못이겨 일주일 동안 노래 두곡 달달 외워 총신대를 붙어 버렸다
참 허무 했다
이럴줄 알았으면 고민 할필요가 없었을텐데...
총신대 4년을 성악을 배우면서 남들이 잘한다니까 욕심이 났다
마침 군대도 면제 받아 남들 다가는 군대 3년의 기간을 벌었다
그래서 또 사고(?)를 쳤다
9월말 원서내고 10월 한달 공부 해서 한양대로 다시 입학 했다
잘한다는 눔들은 어떻하나 보려고 .......
뭐 별거 없었다 , 다 그게 그거였다
한양대 졸업과 동시에 유학을 갔다
뭐 남들이 다 가니까.. 그리고 선생님들도 의례 유학을 갈줄 알았다
쥐 뿔도 없었는데 전세금 빼서 이탈리아로 유학을 갔다
장학금 받으면서 학교 다니는 맛도 쏠쏠했고
뭐 학교는 시험 보는데로 붙고
거리낄 게 없었다
나에게 성악은 그렇게 재미가 있었다
그러다 보니 20대의 나이에 유학을 가서 40대 중반이 되도록 베짱이 짓만 한 셈이 됬다
15년 만에 아이 둘을 만들어서 귀국을 했다
서울은 너무 바쁘다
공연 하랴 ,학교 출강하랴, 레슨하랴, 합창단 지휘하랴.......
그냥 베짱이 처럼 노래 공부 하고 좋은 판 사러 다니고 희귀한 악보 찾아 돌아 다니던 이태리가 자꾸 그리워 질라고 그런다
푸른 초원을 보며 음악듣고 악보 들여다 보는 삶을 다시 살 수 있을까?
* 김신일의 홈페이지에서 *
용산 고등학교 졸업
총신대학교 종교음악과 성악전공 수료
한양 대학교 음악 대학 성악과 졸업
로씨니 국립 음악원 (Conservatorio di “ G. Rossini” )
오시모 시립 아카데미아 (Academia Lirica e Corale di Osimo)
사사: 조성문, Sesto Bruscantini , Giuseppe Valdengo, Antonio Tonini
로씨니 200주년 기념 페스티발 오페라 “세빌리아의 이발사” 피가로 역으로 유럽무대 데뷔
라 트라비아타 제르몽역, 피가로의 결혼 백작역, 돈 죠반니 ,돈죠반니 역,마담 버터플라이 샤르플레스역등 공연
그 외 100여회 콘서트 출연
현 아메데오 성악 스튜디오 대표
현 푸른 소리 남성 앙상블 상임 지휘자
현 전국 교회 지휘자 협회 부회장
현 칸티암 기독 성악가 예술감독
현 신일교회 시온 성가대 지휘자
현 서울 기독대 합창,지휘 지도교수
현 클래식공연 코디네이터
성악이 뭐 그리 어려운가?
그냥 하면 되지........
수학문제 풀기가 그렇게 어렵고 학교 공부 하려고 책만 펴면 몸에 쥐가났었다..
대학이란델 가기 위해 고등학교 3년 내내 머리 싸매고 고민 했지만 점수는 제대로 나오지도 않고 고민고민 끝에 원서를 썼지만 결과는 낙방...........
후기 대학이라도 가려고 눈치 보고 있을 때 어머니의 강권에 못이겨 일주일 동안 노래 두곡 달달 외워 총신대를 붙어 버렸다
참 허무 했다
이럴줄 알았으면 고민 할필요가 없었을텐데...
총신대 4년을 성악을 배우면서 남들이 잘한다니까 욕심이 났다
마침 군대도 면제 받아 남들 다가는 군대 3년의 기간을 벌었다
그래서 또 사고(?)를 쳤다
9월말 원서내고 10월 한달 공부 해서 한양대로 다시 입학 했다
잘한다는 눔들은 어떻하나 보려고 .......
뭐 별거 없었다 , 다 그게 그거였다
한양대 졸업과 동시에 유학을 갔다
뭐 남들이 다 가니까.. 그리고 선생님들도 의례 유학을 갈줄 알았다
쥐 뿔도 없었는데 전세금 빼서 이탈리아로 유학을 갔다
장학금 받으면서 학교 다니는 맛도 쏠쏠했고
뭐 학교는 시험 보는데로 붙고
거리낄 게 없었다
나에게 성악은 그렇게 재미가 있었다
그러다 보니 20대의 나이에 유학을 가서 40대 중반이 되도록 베짱이 짓만 한 셈이 됬다
15년 만에 아이 둘을 만들어서 귀국을 했다
서울은 너무 바쁘다
공연 하랴 ,학교 출강하랴, 레슨하랴, 합창단 지휘하랴.......
그냥 베짱이 처럼 노래 공부 하고 좋은 판 사러 다니고 희귀한 악보 찾아 돌아 다니던 이태리가 자꾸 그리워 질라고 그런다
푸른 초원을 보며 음악듣고 악보 들여다 보는 삶을 다시 살 수 있을까?
* 김신일의 홈페이지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