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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객님의 '그리운 시절'을 읽고

바다 4 1839
가객님의 ‘그리운 시절’을 읽고
저도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제 고향의 어린 시절의 가을과 겨울로
추억 속의 여행을 떠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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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마을 앞 논에도 가을이 오기 시작한다
 
벼논에 물을 빼려고 도랑을 치면
논 속에서 붕어, 미꾸라지, 새우가 팔딱팔딱 아우성이다
 
사람들은 그것을 잡기 위해 신이 나고
그 날 온 동네는 풍성한 추어탕 잔치가 벌어지고
몰래 담궈 둔 농주가 여기저기서 함께 모아지고
모처럼 가을밤이 동네사람들의 가슴을 열어준다

들녘은 어느 새 빈 논이 되고
우리는 맨발바닥으로 논바닥을 걷는다.
둥그렇게 모양을 드러낸 곳을 파 우렁을 캐낸다.
하나라도 더 캐내기 위해
발걸음은 경보선수처럼 빨라지고
우리는 잠시 벙어리가 된다.
치마며 신발에 가득 우렁을 담아
저마다 자랑스럽게 집으로 돌아간다.

찬바람이 불어오고
다시 몇 배미의 논에는 물이 가득 채워진다
물이 없는 논에서는 아이들의 자치기. 야구(그 당시 하루라고 했음)
축구, 고무줄놀이가  한창이다
.
남자 아이들이 자치기와 하루만큼은 우리들도 끼워준다
축구는 바람 빠진 공이나 짚으로 만든 공이 일품이다

이젠 찬바람이 살을 애이게 불어오고
눈보라가 치고 온 산야가 동화 속 흰 궁전이 된다

앞산 밑 빈 콩밭에는 배고픈 꿩들이 나들이 나와 
혹시나 하고 이삭줍기 나왔다가
동네 청년이 싸이나를 넣은 콩을 쪼아 먹고 날다가 추락한다

마당 두엄자리 옆에는 참새들이 재잘거리며 아침을 노래하고
사람들은 키나 망태기 밑에 작대기를 받친 다음 모이를 뿌려놓고
새들을 유인하여 새끼줄을 길게 달아
안방에서 창문 틈으로 내다보다 재빨리 줄을 놓아 참새들을 가두어 버린다
그리고 참새구이는 남자들만 먹는다
여자들은 그릇을 깨니 먹어서는 안 된다며...
 
마을 앞 논이 꽁꽁 얼어붙어 스케이트장이 된다
남자애들은 나무판자와 대나무로 만든 썰매를 가지고 와 신이나 어쩔 줄을 모른다.
여자애들은  손을 맞잡고 서로 밀어주고 끌어준다
얇게 언 곳에서는 모두가 빠져 버려 그 날은 하루 종일 오돌오돌 떤다

이제 다시 처마 밑으로 간다
막대보다 더 긴 고드름을 한 입씩 입에 물고
오도독오도독 이리 굴리고 저리 굴린다

 해가 서산 마루에 걸리어도 집으로 돌아갈 생각을 않는다
아이들은 마지막으로 주머니속의 보물을 조심스럽게 꺼낸다 
입술이 새까매지도록 베고 또 베는 생고구마 ...

이제 배가 든든하니 한 가지를 더 해 본다

약간 녹은 듯한 눈으로
시골초등학교 운동회날 큰공굴리기 하는 것처럼
힘을 합쳐 지구만큼 큰 눈공을 만든다

눈공이 서로 만나 커다란 눈사람이 되어버린다
 
아이들은  이름을 붙인다
너는 순이
너는 철수라고......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그 시절을 가객님 덕분에 잠시 회상해 보았습니다
저도 도시에서 산지 30년이 되었어도 제 마음 속에는 그 고향이 떠나지 않습니다
아니 이제는 더더욱 가슴 가까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4 Comments
나리 2003.01.03 12:26  
  바다님!
다시 읽게 되어 기쁩니다.
너무나 정겹게 그려주신 고운 그림에,
한없이 빠져들며 행복합니다.
가객 2003.01.03 16:11  
  우리들이 어렸을 적에는
농촌에서 가장 한가로운 때가 바로 이 겨울철이었지요.
겨울에는 애들이고 어른이고 다 쉬면서 노는 때였지요.

그 때는 오늘처럼 함박눈이 와서 녹으면
그 다음날에는 어김없이 고드름이 처마끝에 주렁주렁
길게 매달려 있곤 했지요.

우리들은 고드름들을 누가 많이 따는가 내기한다며
막대기로 후려치는 장난도 치고
또 딴 고드름을 빨아 먹기도 했지만
어른들은 고드름을 따면 흉년이 든다며 따지 못하게 했지요.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고드름을 딴다고 흉년이 들리는
없겠지만, 따다가 잘못하면 끝이 뾰족한 고드름에
얼굴등을 다칠지도 모르니 그 걸 방지하느라고 말씀하신
어른들의 지혜라는 생각이 듭니다.

행복했던 어린 시절을 생각나게 한 좋은 글...
추억 속에 잠겨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서들공주 2003.01.03 17:39  
  저도 가객님글과 바다님 글 보면서 가만히 미소지어 지는걸 보면
제가 살아온 시간이 제법 긴가 봅니다.

꼬맹이 일적,
잠시동안 간척지 바닷가 마을에 살았던 적이 있었어요.
생전 처음 타본 기차멀미에 정신이 몽롱해진 제가 걷고 있는 길은 하얀색이었어요.
바다를 막은지 얼마되지 않은 땅에 남아있는 소금기로
하얀색이 된 땅은 무척이나 신기하고 인상적이어서
내가 꿈을꾸고 있는건 아닌가 생각했어요.

밤섬,
바닷가 마을은 바람이 아주 많은 곳이었어요.
습기를 많이 머금은 비릿한 바다냄새를 담은 바람이 불어오면
자꾸만 기분이 좋아져서,
양팔을 벌리고 하늘을 바라보며 빙빙돌면
금방 몸이 붕~떠올라 하늘을 날것만 같았습니다.

큰언니를 따라 나무하러 뒷산에 갔을때 바라본,
그 크고 뜨거운 불덩이가 바닷속으로 빨려들어가면서 ,
하늘과 바다와 모든공기를 붉게 물들이던 기억은 너무나 강렬해서
아마도 평생 잊지 못할겁니다.

덕분에 추억여행 즐거웠습니다.
음악친구 2003.01.05 00:21  
  그러고 보니  난 내가 중년을 준비하면서 앞으로 나이 먹는다는 생각만 했지~
지난날을 돌아 보지를 않았네요.

분명 나에게도 어릴적 그리운 그 옛날의 추억이 있었을텐데...

우리 아빠 고향은 강화고, 우리 엄마 고향은 김포고,
강화와 김포 사이에 마송이라는  곳이 있는데 난 거기서 태어났어요.

그래서 난 옛날에 부모님들은 그들이 태어난 곳으로부터 서로에게 다가가 중간 되는 곳에서 결혼해서 사는 줄 알았어요.
우리 아빠가 나에게 그러셨거든요~ 난 그말을 곧이 믿었고~ㅎㅎ~

겨울이면 지금처럼 눈이 엄청 많이도 왔던 기억이 납니다.

눈이 오면 오빤 비닐로 된 비료푸대를 잘라서 뒷산으로 올라갔어요.
나도 물론 그림자처럼 뒤 따라갔죠~
그러고는 언덕 아래로 미끄럼을 타는거예요~
오빤 나를 앞에 태우고 내 뒤에서 나를 붙잡고 내려 갔어요.
다 내려갈때쯤이면 어김없이 넘어지고~ 또 오뚜기처럼 일어나 다시 올라가 타고~
지금의 눈썰매는 그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것 같아요.

마을 입구 성당 부설로 있는 이름도 거룩한 "부활 유치원"
난 그때 뭘 배웠나는  하나도 생각이 안나는데 호박죽을 수녀님이 주셨던 기억, 또 무슨 떡인지~ 빵인지~ 너무 맛있었어요.

여섯살때 서울로 왔으니 그 이전 기억일텐데~ 어렴풋이 기억이 나네요.

그 시절이 그리워 옛날 사진첩을 뒤지니 원장 수녀님과 함께 찍은 색바랜 사진이 한장~
갑자기 가슴이 뭉클 해졌어요.

가객님과 바다님 덕분에 저역시 추억여행을 다녀 왔습니다.
공해 없이 깨끗하고 아름다웠던 그 시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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