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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시절

가객 7 1810
남도천리!
내 고향 전라도 영광.....!
파란 들이 비단 같이 펼쳐져 서해까지 닿은 너른 곡창지대의 한 쪽 끝
배산임수(背山臨水) 지형의 안존한 품 속에 우리 고향마을이 들어 앉아 있다.

그 들판을 흥건히 적시며 서해로 흘러 들어 가는 강이 하나 있다.
그 것은 일제때 인공적으로 만든 것인데 강폭이 100m가 넘을 정도로 커서
우리들의 갖은 놀이의 터전이 되었다.

초.중학교시절 학교에서 돌아 오면
으례 동네 친구들 여남은 명과 꼴 지게지고 소를 몰고 그 강으로 간다.
소는 고삐를 풀어 마음껏 풀을 뜯게 해두고 우리들은 꼴 빨리 베기 시합을
시작한다.

얼른 꼴을 베어 지게를 채워 놓고 가능하면 빨리 함께 놀이를 하기 위해서다.
한 시간 정도면 다들 자기 지게를 채우는데 그러면 곧 우리는 백사장에다
금을 그어 놓고 양편을 갈라 놀이들을 시작한다.

그 놀이를 우리네 방언으로 '가이생'이라 했는데 그 게 일본말 같기도 한데
그 표준말은 모른다. 삼년고개, 8자, 사다리, 남자심볼 가이생등을 하다
보면 어스름하게 땅거미가 지기 시작한다.

그러면 우리들은 지게를 챙기고 소 고삐를 잡고 줄을 이루어 집으로 향하게
되는데, 그 때면 들판 건너편에 있는 극장에서 가요를 황혼 빛에 실어
들판을 은은히 적셔주곤 했다.

구식 호객행위의 모습이었던 것 같다.
그 날밤 상영되는 영화의 장르에 맞춰 노래가 흐르긴 했지만 주로 이미자
노래들이 많이 흘러 나왔었다.

빙점, 기러기 아빠, 꽃 한 송이, 한번준 마음인데, 홍콩의 왼손잡이,
울어라 열풍아, 섬마을 선생님, 흑산도 아가씨, 여자의 일생, 황혼부르스,
잊을 수 없는 연인, 비에 젖은 여인, 정동대감, 황포 돛대, 재일교포,
임이라 부르리까, 서귀포 칠십리, 지평선은 말이 없다...등
이런 노래 들이 모두 그 때 배운 것 들이다.

지금도 가끔 길을 걷다가 성당의 스테인드 글라스나 아파트 유리창에
비친 아름다운 노을 빛을 볼 때면 어린 시절의 그 모습들이 머리에 떠올라
혼자 이미자 노래를 흥얼거릴 때가 있다.

도시 사람이 된지 30년이 넘은 지금도 이미자 노래를 들으면 마음이 착
가라앉고 가슴이 편안해지는 걸 보면,
나는 역시 옛시절을 그리며 사는 영원한 촌놈인가 보다.
7 Comments
나리 2003.01.02 21:15  
  호호호----
우리 고향에선  어쩌다 한번씩 들어오는 "가설 극장" 의 이른바 "호객 행위"였습니다.
동네 조무라기들은 가설극장의 포장이 걷히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지요.
꾸벅꾸벅 졸면서----
잠시 옛 생각에 즐거웠습니다.
바다 2003.01.02 21:32  
  그 시절
우리 동네 남자 아이들도 그랬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지게니 꼴망을 짊어지고 들로 산으로 냇가로 나간다.
아니 나갈 수밖에 없었다

때로는 날마다는 아니었겠지만 우리 동네 아이들은 꼴 베는 일보다
노는 일을 먼저하고 해가 뉘엿뉘엿 진 후에야 허둥대며 꼴을 베어
집으로 돌아와 아버지들한테 쫓겨나거나 꾸중 듣는 일을 종종 본 일이 있다
그 녀석들은 미래를 내다볼 줄 몰랐던 것이다.

지금 자기 집이 유령의 집이 되고
어머니가 현대판 고려장이 되어도 모르고 있는 듯 하다
나는 그 녀석들이 보고싶지도 않다

그런데 그 곳의 아이들은 꼴 빨리 베기 시합을 한다.
어느 누구도 목표 달성을 못하는 아이가 아무도 없다
그리고 난 다음 삼년 고개. 8자 ,사다리. 남자 심볼 가이생...등 다양한 놀이를 한다.

다양한 놀이를 통해서 세상을 배우게 하고
혼자만 잘 사는 게 아니라 더불어 잘 살게 하는
공동체의 힘이 길러지고 수 십년 동안 변하지 않을 우정이 자란다
.
거기에는 학교에서 반장이면서 공부도 제일 잘 하고
매사에 모범생인 지혜가 있는 리더가 있었던 거 같다
그 지혜가 있는 리더는 누구였을까?

유성 2003.01.02 22:00  
  남도천리 ! 소몰고 꼴베고  가설극장 이라!  모두가 동화책 아니면 TV 에서 보았던
아름다운 그림이 그려지는 정경이군요  이렇듯  고향의 추억이 있는 사람들은
 참 좋겠다 ...

헌데 바다님!  매사에 모범생이며 지혜있는 리더는?  혹시 바다님 아닌가요?
deborah 2003.01.02 23:13  
  세상에서 제일 부러운 사람이시네요,어린 시절 저는 가로등 (전봇대)밑에서 다방구나 말뚝받기,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정도로 놀고 공기놀이 정도밖에,그것도 시멘트에 손 까지면서요,그렇게 놀았습니다.많이 삭막했지요,"가고파"가 생각납니다.
서울이 고향입니다.흑흑흑~~~
평화 2003.01.02 23:27  
  가객님! 세상 사는 동안에 우리는 문득 삭막한 도회지 생활에 지칠때
지나온 추억의 흔적을 더듬으며 그리운 시절로 돌아가고 싶을때가
있는것만 같습니다.

어딘가에 두고온 우리들의 유년시절!

우거진 숲속에서 맑게 지저귀는 새소리와 피아노의 높은 건반을
두드리듯 영롱한 소리를 내며 돌틈 사이로 흘러내리던 개울물소리,
너른 들판을 메뚜기때 잡으러 질주하던 아이들의 순수한 모습들.

캄캄한 밤 보석처럼 세상을 밝혀주던 반딧불의 유형,가을밤 깊은잠을
독촉하던 귀뚜라미 소리,석양에 수많은 들꽃들이 아름답게 웃고있는
모습을 저는 지금 눈을 감고 조용히 그려보았습니다.

그리고보니 몇년전 읽었던 "로버트 제임스 월러"의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가 떠오르네요.
영화로도 제작된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배경이 되었던
아미쉬 마을은 지금도 기계문명을 거부하고 그들 나름대로의
경험에서 축적되고 발전된 지혜로서 아름다운 인간관계와
아름다운 자연을 보존하며 살고있지요.

또한 아미쉬 사람들은 모든 세속적인 것들과 일치되지않는
종교적인 생활방식을 가지며 8학년 이상의 공식적인 학교교육은
거부되고 소년에게는 농부가 되기 위한 직업훈련이 소녀에게는
가정관리를 위한 직업훈련이 주어집니다.
제가 느끼이에 그들에게서는 각박한 세상의 찌들린 삶이 아닌
아름다운 삶의 향기가 나는것 같아 부러워졌답니다.

가객님 덕분에 모처럼 지난 시절의 추억에 젖어보았습니다.
아름다운글 기쁜마음으로 잘 읽었습니다.

수선화 2003.01.03 15:29  
  추억할만한 어린시절의 고향이 있다는 건..   
도시에서 유년시절과 청소년시절을 모두 성장해온 사람에겐
한없이 부러운 일이라 여겨집니다.

김재호/이수인님의 고향생각을 들으면
떠올릴만한 고향이 없는 사람에게도
막연히 피어오르는 고향의 냄새가
내 안에.. 알 수 없는 *향수*를 일으키게 합니다.

가객님.바다님.나리님 그리고 평화님..
님들의 그리운 고향생각에 저도 잠시 글 속에 몰입을 해 보았지만
안타깝게도 그 느낌에 전혀 전이되지 못하고 그저
소설 속의 장면..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듯 막연하게 느껴지는군요.

그래서 경험이란 무척 중요한 것 같습니다.
제게도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맘껏 뛰놀수 있었던 유년시절의 낭만이 있었다면
님들처럼..  지금 더 풍요로운 감성의 소유자가 되어있지 않았을까..

나이가 들면 그래서 사람들은 답답한 도시를 벗어나
자여과 더불어 호흡할 수 있는 한적한 시골을 그리워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린시절에 누리지 못했던 자연과 더불은 삶을
나이가 들어서라도 보상받고 싶은 심정에..
저도 노년의 전원생활을 꿈 꾸는 것 만으로도 행복하답니다.

 
신재미 2003.01.06 16:38  
  오늘 저녁은 아름다운 선율에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영광 굴비 구워 저녁밥 먹어야지///
남도천리 구경 잘하고 돌아가는 여울이
가객님의 행복을 빌어 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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