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커뮤니티 > 자유게시판
자유게시판

토요일 양수리의 단상 (첼리스트 최영철)

토요일 양수리의 단상 




연속되던 연주회와 봄 학기도 다 끝내고 오랜만에 한가로운 기분으로 휴식을 취하며 그동안 정리 못했던 서류들을 정리하다가 소파에 누워 잠시 쉬는데 전화가 온다.
리더스컬쳐 클럽 회장인 음악평론가 탁계석 선생이다.
양평 쪽으로 나가 점심이나 하자 하여 팔당댐을 거쳐 양평 쪽으로 향했다.
탁 선생이 아는 어느  원로 시인이  열었으나 지금은 다른 사람 소유로 넘어간 무너미 카페에서 점심을 하고 잔디 정원을 잠깐 거니는데, 잔디는 죽어가고 대신 온갖 잡초가 무성하다. 한때는 문인들이 자주 드나들던 곳이라고 한다.


거기서 서종 갤러리로 향했다.
강가에 자리잡은 현대식 미술관은 자연을 그린 풍경화들만이 고요히 우리를 맞는다.
서종 갤러리는 “미술세계” 잡지의 편집장을 하시던 이달희씨와 화가이신 부인 두 분이 운영한다. 두 분이 흰 개량 한복을 입으신 채로 예고 없이 들이닥친 우리를 반갑게 맞는다.
강이 내려다보이는 벽 한 면이 다 유리창인 전시실에 앉아 부인이 내놓은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눈다.
“문화 네트웤이 형성되어야 합니다. 각 문화 간에 교류가 없이 너무 단절되어 있어요.”


강 건너편 팬션하우스에 묵던 청년들이 식기 등을 씻으려는지 강가로 내려가는게 보인다.
“팬션에 묵으러 온 손님들이 미술관을 거쳐 가게 하면 어떨까요?”
“문화에 대해 너무들 무딘 것 같지요?”


미술관 옆 강가에 넓게 펼쳐진 공터에는 온갖 잡초들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다.
한쪽 켠 밭은 고추니 상추 등이 자리잡고 한참 자라고 있었고...
조금 더 뒤에는 옥수수밭으로 덮여 있었다.
상당히 넓은 땅인 것 같아 여쭈어보았다.
“땅이 굉장히 넓으네요.”
“서울의 아파트 팔아서 샀습니다. 아파트는 지금은 굉장히 올랐다고 하더군요. 저 땅들을 왜 샀는지 아십니까?”
터가 좋기 때문에 모텔 등 이상한 건물들이 들어서면 이제까지 죽을 힘 다해 공들여 가꾼 미술관이 한 순간에 망가질까봐 샀다는 것이다.
문화를 지키기가 이렇게 어렵구나...
망가지는 건 한 순간인데...



강 건너편 둑을 넘어가게 철제 난간을 만들어 놓았었는데 얼마 전 철이 귀하던 때에 누가 들어가 버렸단다.
차로 빙 돌아 강 건너편 팬션하우스를 들어갔다. 넓은 정원과 밭이 펼쳐져 있는데 하우스콘서트 하기에 안성맞춤이다. 한 삼십명 정도 밤새 담소하며 즐기기에 아주 좋아 보였다.
원래는 팬션이 아니고 화가가 그림 그리던 집이라는데 서울로 철수해 버렸다고 한다.
바로 옆으로 흐르는 작은 강 물소리에 서글픈 문화계의 현실을 잠시 잊을 수 있었다.



오면서 “칼날과 햇살”로 유명한 소설가 김용만씨의 양평 집을 찾았다.
도로와 가까운데도 길을 돌아 들어가자 갑자기 강원도 오지의 풍경이 펼쳐지고 넓은 잔디밭과 집들이 눈에 뜨인다.
김용만씨는 다른 양평의 문인들과 함께 서종면에 “황순원의 소나기 마을”을 유치하는데 주력하신 분이다.

조금 후에 각 대학 국문과 교수들 대, 여섯 분이 대학생들을 데리고 도착하기로 되어 있다면서도 우리를 맞더니 잠깐 들러 인사나 하려 했다는데도 기어코 집으로 끌고 들어간다.
결국 이야기 보따리가 풀어지고 우리는 다과를 더불어 문화계에 대한 담론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양평에는 문인들이 많이 산다. 김용만 소설가와 마침 와 있던 다른 여류 소설가와도 이런 저런 얘기를 주고받으며 작금의 현실에 판치는 천민자본주의에 대해 여러 각도의 분석들도 곁들였다.

소설가 윤후명의 작품 세계, 황지우 시인의 작품 세계 등, 그동안 궁금했던 점들도 서로 묻고 답하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앉아 있다가, 드디어 손님이 도착하는 소리에 우리는 그제서야 정신이 난 듯 황급히 자리를 뜰 수밖에 없었다.
차까지 배웅 나오신 소설가 김용만씨 부부와 그 외 분들의 따뜻한 인사와 가까운 시일 내에 또 다시 방문해달라는 초대에 감격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예고도 없이 불시에 방문한 무례를 범하는데도 한결같이 따뜻하게 맞아주시던 화가, 소설가 문인 선생님들이 한없이 가깝게 느껴졌다.

팔당댐을 돌아 서울로 돌아오는데 아까부터 가슴에 박힌 김용만씨의 말이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드넓은 한강에 도도한 탁류가 흐르는데 맑은 물 한 방울이 떨어진들 무슨 소용 있습니까? 하지만 그렇게 살다 갈겁니다.”

창밖에는 황순원 소설의 주인공인 소나기가 차창을 때리고 있었다.



*첼리스트 최영철은 대학 후배로 첼로학회장을 맡고 있으며 첼로 포탈 사이트 cello.or.kr을 운영하고 있다.
5 Comments
정우동 2004.07.04 08:17  
  유월의 마지막 밤의 서울 갤러리에서의
그 첼로악기 처럼 키 크고 첼로음색 처럼 낮지만 심금을 울리던
연주를 해주신 최영철님의 귀한 글 읽게 해주셔서 감사 드립니다.

알아 질수록 실망스러운 문화현실에도 불구하고
도도히 흐르는 탁류를 거슬러 맑히려고 도전하는 예술가의 기개에
박수를 보냅니다.
평화 2004.07.04 12:21  
  존경하는 탁계석 선생님! 안녕하세요! *^-^*
제 노년의 꿈은 예술가 마을에가서 사는거랍니다.
그림그리고 우리의 노래 부르며 좋은 책 읽고 봉사하고
땀흘려 농사지으며 그렇게요.
그래도 최영철님과 탁선생님 같으신 훌륭한 분들이 계시기에
언젠가는 한방울의 맑은물이 큰강을 이루고 바다가 될날이
있으리라 믿습니다.

그리고 아름다운 예술을 멀리하고 물질문명에만 길들여진 인생도
우리와함께 세상의 한부분을 이루고있는 소중한 사람들이며, 신께서
우리와 똑같이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는것을 새삼 생각해봅니다.

선생님! 지금 창밖에 빗소리를 들으니 뜬금없이 황순원의 소나기가 맞고 싶어집니다. ^^ 늘 건강하십시요.

평화드림
톰돌 2004.07.04 15:04  
  저같은 문외한에게도
"문화간의 교류"란 어휘가
마음에 박히는군요
양평이란곳에 지성으로 꽉찬 모습이
보이는듯 합니다
유랑 2004.07.04 21:20  
  "텔" 보다 "갤러리" "관"이  많이 자리한 양평을 볼수 있을날이 꼭 올 것입니다.
우 리 2004.07.05 09:14  
  금요일 밤에...

양수리 밤은 혼자
고즈넉이도
물안개 피워가며
남한강 북한강을 달도 없는 밤을
제 생각에만 푹 빠져 있더라구요...

황순원 님 고향이 거긴 줄모르는 난
걸린 프랑카드 흔드림에 왜 ㅡ그래야 하는지..를
참 濕한 새벽 공기에 묻다가 왔네요...

빈 몸 보단
짐을 진 선지자엔 영광
그릴수 있음에  항상 그려 하며... 배우지요...
건안 하세요...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