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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참 오기 싫은가 봅니다

모탕 3 1727
눈이 참 오기 싫은가 봅니다.
하늘을 쳐다보노라면 금새 눈이 쏟아질 것만 같던 날씨에도
끝내 오지 않은 것을 보면... (잠깐 날리는 걸 본 적은 있습니다)
아직껏 마음 속엔 가을이 머물고 있는데
아니, 마음은 가을을 더 잡아두고만 싶은데
쌀쌀해진 날씨 탓에 간살맞게도 벌써 눈을 기다리게 되는군요.

눈이 와서 반가울 것 하나 없는 이 나이에,
시쳇말로 그 눈 맞을 준비 하나 해둔 것 없는 이 시점에
눈을 기다리는 건 또 무슨 청승인지...
아직은 여러 모로 미성숙한(?) 때문이겠지만
어쩌면 가을과 겨울 그 경계선에
눈이 있어야 하는 거라고 믿는 사춘기적 믿음 때문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순백의 눈이 쌓인 설원을 밟아본 것이 기억 속에서 가물거리는 것을 보면
일상에 떠밀려 지워온 세월들이 눈발이 되어 회한으로 쌓일 것만 같습니다.
한 치의 여유도 제대로 누려보지 못하고
낡은 기억 속에서나 설원을 그려볼 수밖에 없는 이 도회지의 삶이란
도대체 누구를, 무엇을 위한 것인지...
눈사람을 만들어 본 기억이 족히 20년은 된 듯하니
어쩜 동심(童心)으로 회귀하기엔
너무도 먼 길을 와버린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은행잎이 바나나 껍질처럼 미끄럽던 거리를 걸으면서
엉뚱하게도 저는 레미드 구르몽의 <눈>이라는 시를 떠올려보았습니다.
하마터면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을 뻔하였던 때문만은 아닌데도...
구르몽의 <낙엽>이라는 제목의 시보다 훨씬 덜 알려져 오히려 좋았던(참 이상한 취미지요?)
<눈>이라는 제목의 시를 올려두도록 하지요.
(번역은 어느 분이 한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시몬, 눈은 네 맨발처럼 희다
시몬, 눈은 네 무릎처럼 희다
시몬, 네 손은 눈처럼 차다
시몬, 네 맘은 눈처럼 차다
눈을 녹이려면 뜨거운 키스
네 맘을 풀려면 이별의 키스
눈은 쓸쓸히 소나무 가지 위
네 이마는 쓸쓸히 검은 머리카락 밑
시몬, 네 동생 눈은 뜰에 잠들었다
시몬, 너는 나의 눈, 그리고 내 사랑
3 Comments
미리내 2002.11.15 03:47  
  모턍님^^
아직도 열정이 남아 있음을  말하여주시는것~같습니다,
오ㅡ늘은 정말로 눈발이 내리기는 하였습니다 ㅡㅡ오는것이 정말 싫었나봅니다,,

시몬 이라는 오래된 글귀^^보니 옛날에 젊은시절이 새록~새록 나는군요^^
나이는 먹었지만 ㅡㅡ아직까지 마음은  젊음이 못지않으니,,^^ ㅎㅎㅎ..

모탕님에 아름답고 고운마음을 훔쳐보고갑니다,,
달맞이 2002.11.15 16:50  
  아무리 기다려도 이곳은 눈이 내리지 않는 지방이랍니다.
행여 회색빛으로 머물쯤이면 눈이 올것같은데...마음만 서성이게되고
오지않은 떠난 님을 바라다 목이메일것 같은 옛추억만 들추이지요.올해는 아이들과 기필코 눈을 보러가려고 계획하고 있답니다.하얀 눈을 맞으러 가려구요........아마! 그곳에가면 시몬을 만나게 될까요?
음악친구 2002.11.15 21:32  
  눈이 오면  잴 먼저 방방~뛰는게 멍멍이라는데~
나도 거의 멍멍이 처럼 좋아서 방방떠요.

언젠가 우리 딸이 "엄마! 언제부터가 겨울이야?"하고 물었을때 "응~ 눈이 오면 그때부터 겨울이야~"했던 기억이 나요.
지금은 분명 겨울인데  눈은 안 오네요.

그 옛날 눈이 오면 하늘에다 입 벌리고 눈을 먹었던 기억이~
차가운 눈이 입에 닺자마자 녹아 없어지고, 눈에도 눈이 들어가고, 콧속에도 눈이 들어가 간지럽고~ 참 재미 있었는데...

지금은 눈을 먹는 사람을 못봤어요.
나 역시도 먹을 생각을 안합니다.
공해때문에 그 옛날에 내렸던 눈이 부신 흰색도 아니고...

하지만 허연색 눈이라도 많이만 내려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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