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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조끼 아저씨

모탕 6 1815
노란 조끼 아저씨



은행잎이 온통 노랗게 물들었어요.
노란 조끼 아저씨는 그 아래서
꽃씨 봉지를 나누어주었어요.
마을 사람들은 줄을 길게 서서 웃으며 받아가요.
그 가운데는 아이들이 여럿이고, 할아버지도 있어요.

어느 해질 무렵에 있었던 일이에요.
뚱뚱한 아주머니가 꽃씨 봉지를 받다가
손에 든 지갑을 빠뜨렸어요.
두 개를 받으려고 욕심을 부리다가 그랬지요.
지갑 위에 노란 은행잎이 한 장 떨어졌어요.
또, 또 은행잎이 내려앉았어요.
그래서 지갑을 감쪽같이 숨겼어요.

………

다음날, 이른 아침이었어요.
노란 조끼 아저씨가 손수레를 끌고
언덕을 올라오고 있었어요.
그 때, 뚱뚱한 아주머니가 앞을 가로막았어요.
"어제 꽃씨 때문에 지갑을 잃었어요. 찾아내요."
"여기서 잃어버렸다면 걱정 말아요."
"…"
뚱뚱한 아주머니는 노란 조끼 아저씨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어요.

노란 조끼 아저씨는 빗자루로 길을 쓸었어요.
'쓱쓱 싹싹싹.'
가려운 곳을 긁듯이 시원스레 쓸었어요.
빗자루는 무엇이든지 잘 찾는
신기한 힘을 가졌댔지요?
은행잎 속에서 지갑을 쉽게 찾아냈어요.
"아, 내 손지갑 …"
뚱뚱한 아주머니는 얼른 지갑을 주워들었어요.

"은행잎들이 숨겼군요?"
뚱뚱한 아주머니가 의심을 했어요.
"아닙니다, 은행잎들이 밤새 지키고 있었지요."
노란 조끼 아저씨는
이마에 맺힌 땀을 훔치며 말했어요.
"아, 그렇군요. 내가 몰랐어요."
뚱뚱한 아주머니는 새로운 것을 많이
깨달았어요.
어제 받은 꽃씨를 벌써
마음에 뿌렸나 봐요.


* 어린 딸에게 책을 읽어주다가 글이 아름다워 여기에 올려봅니다.
  노란 조끼 아저씨와 같으신 분이 계시어 이 세상은 그래도 살만한 곳이라 여겨보며 …
6 Comments
나리 2002.11.09 14:21  
  정말이요, 모탕님 참 예쁜이야기군요.
저도 아이들을 불러 읽어보게 해야겠어요.
감사합니다.
그런데, 지난번 홍씨 일가들을 홍시를 무엇이라 부르나요???
달맞이 2002.11.09 21:27  
  후두둑 떨어지는 은행잎이 내 머리위로 날아듭니다.
차마 밟지 못해 옆으로 살짝 비껴보았습니다.
노오란 물감을 잘도 들여놓은것 처럼 색이 참 곱다고 생각했지요.
가지에 몇잎 남은 잎들이 바들거리고 있는것을 보고 돌아왔는데
누군가의 발밑에 ...

마음에 꽃씨를 뿌리면 어떤 꽃이 피는지
궁금합니다.
사람마다 다른 꽃이 피겠지요?
바다 2002.11.09 22:22  
  오랫만에 가슴을 울리는
따뜻한 글을 읽었습니다

욕심을 부리다가 손에든 지갑을 잃어버리고
자기 잘못을 남에게 전가하는 아주머니는
우리 모두의 자화상이 아닐까요?

 또 자기의 잘못을 깨닫고
 곧 새로운 것을 알고 받아들일 줄 아는 모습도
 우리들의 모습이 아닐까요?

 잔잔한 감동을 주는 글을 잘 읽었습니다

 딸에게 아름다운 글을 읽어 주시는 그 모습과
그 아빠의 글을 듣고 있는 딸이 무척 행복해 보입니다
규방아씨(민수욱) 2002.11.09 23:06  
  어린아이는 아니지만
우리 아들들에게도 나누어주어야겠어요...
비록 말수적은 아들들이지만
엄마가 일러주면
가슴이 따뜻해짐을 느끼겠지요????
좋은글 감사합니다
음악친구 2002.11.10 22:25  
  아빠가 읽어주는 책을 들으면서 잠드는 딸과 그 모습을 바라보며 미소짓는 아빠의 행복한 가정이 눈에 보이네요.

마음 따뜻한 이야기~ 잘 들었습니다.
모탕 2002.11.15 03:05  
  아, 사실 많이 부끄럽군요.
우리 집사람이 큰 애가 다니는 학원 간담회에 간다기에 구시렁거리다가
(그 때 제게 초읽기에 들어간 엄청 성가신 일이 있었거든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애랑 놀아주다가 딱히 할 줄 아는 게 없어서
큰 애가 어릴 적에도 그랬듯 책을 아주 실감나게(?) 읽어주었던 것인데
그러다가 글이 너무 좋아 소개한 것인데
과도하게 칭찬을 해주시니 정말 몸둘 바를 모르겠네요.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애들과 노는 일, 보통 중노동이 아니지요.
한 두 세 시간 놀다보니 배까지 고파지더라구요.
그 중노동(?)을 매일같이 하는 집사람에게 늘 미안함을 느끼면서도
또 어차피 하게 될 걸 뻔히 알면서도
구시렁거린 걸 보면 저란 인간도 참 한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남자회원님들! 부디 저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점수 많이 따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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