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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선생님

꽃구름언덕 3 1767
선생님!
코스모스 꽃들이  이제 자기들의 세상이 왔다고 곳곳 마다 서늘한 바람을 몰고와
여름이 뒷걸음질 치려 합니다.

선생님은 오늘도 힘찬 개울물 처럼 너털 웃음 웃으시면서 손풍금을 연주 하시는지요?
아마도 손주들의 피아노를 치시기도 하시겠지요.

초등학교 아니 그때는 국민학교였지요.
흰구름이 머문다는 강원도의 산골, 백운 국민학교 5학년 가을이었어요.

마지막으로 내리 쬐는 햇살이 따사롭던 어느 날,친구와 함께 코스모스 꽃밭에서
점심을 먹고 책을 읽다가, 아마 '비밀의 화원'이였을 거예요.
깜빡 잠이 들고 말았습니다.

오후 수업을 알리는 교무실의 종소리가 울렸지만 교실 뒷편에서 조금 떨어진 꽃밭이라
우리는 듣지 못하였지요.

오후 수업 시작과 함께 우리들의 부재를 아신 선생님은 반 아이들과 저희들을 찾으셨고,
소란스런 소리에 놀라 잠이 깬 우리는 맑고 푸른 가을 하늘을  배경으로 웃고 계시는
선생님 모습에 어쩔 줄 몰랐었지요.

단봉을 들고 전체 기합이라도 받을줄 알았는데 예의 그 너털 웃음을 웃으시며
"책벌레들이 책을 읽다가 가을 볕이 따뜻해서 잠이든 것이니 가을볕이 유죄지"
하시면서 한 시간 수업도 못하고 찿아 다닌 일이 아무것도 아니라는듯
말씀 하신일 기억 하시나요?

"너희들 집에 가다가 들국화 핀 곳에서 또 잠자거라 해지면 호랑이가 깨울것이다."
하시면서 놀리셨어요.

대처 고향에 좋은 학교를 마다 하시고 벽지 학교에 그것도 두 학년이 한 교실에서
수업을 하는 추자 나무만 커다랗던 산골 분교에 자원해서 오셨지요.

1,2학년한 반, 3,4학년, 한 반, 5,6학년 한 반 교실은 세개였고,
교무실겸 실험실과 도서실이 전부인 미니 학교에 오신 선생님은 학교 생활을
최대한 즐기시는 듯 보였습니다.

비만 오면 잠을 설쳐야하는녹슨 양철 지붕이 초라한 사택에서 방과 후에도
책을 좋아하는 아이들에게 많은 책들을 빌려 주시고 더 넓은 세상을 꿈꾸도록 가르치신 선생님!
철없던 그 시절 , 선생님의 별명을 페스탈로치라 지은 것은 지금 생각해도
참 근사한 별명이었던것 같습니다.

아참, 눈물나게 아름답고 슬픈 그리그의 '솔베이지의 노래'는 지금도 지긋이 눈감고 부르시는지요?
열정을 다해 산골 촌놈들에게 '아 목동아'를 기르쳐 주셨지요.
상급학교가면 배울 노래들을 우리들에게 미리 다 가르쳐 주셨습니다.

오월의 햇살이 빛나던  그 어린이 날도  못 잊을거예요.
지금이야  어린이날엔 부모의 넘치는 관심으로 오히려 자유스러움과 천진함도 줄어들고,
때로 숨막혀 하기도 하지만  그 시절 산골 아이들에겐 종종 어린이 날도  별 의미가
없는 교과서속의 내용일 뿐이었습니다.

도시에서 이사온 우리집만 빼면 모두 7,8남매가 예사인  그 학교 어린이들의
공휴일이나 어린이 날은 그저 남자 아이들은 소꼴을 베고 여자 아이들은 동생들 돌보며
집안 일을 하는게 고작이었으니 빨간날을 모두 싫어해도 무리는 아니었던것 같습니다.

그런 시골 아이들에게 5월 5일이 방정환 선생님의 날이 아니고 어린이 날이라는 것을
추억 하도록 요즘말로 깜짝 이벤트를 준비 하시기도 하셨어요.
영문도 모르는 전교생들은 전교생이라야  백명이 안되었지만요.

다른 선생님들은 읍내에 있는 집으로 가시니 선생님 혼자 그 큰 행사를 하셨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대단한 일을 말입니다.

5월5일 아침 모두 선생님의 지시대로 화판을 하나씩 메고 색칠을 하면 
그려지기보단 밀리는 것이 더 많은 12색 '비둘기표'크레용을 챙기고
우리는 어린 동생들까지 데리고 냇가로 갔습니다.

함박꽃이 환하게 피고 찔레꽃향기 가득한 숲길을 지나가는 '큰 골'이란 곳은
사계절 아이들의 놀이터 였습니다.
그 비밀하고 좋은 골짜기를 언제 알아봐 두셨는지 궁금해요.

수업이 끝나면 반장이 고급스런 하얀컵에 배급으로 주던 미국에서 구호 물자로 건너온 건빵을
아예 한 포대를 메고 오셨구요. 꽤 많은 알사탕도  준비 하셨습니다.

아이들은 이 광경에 놀라 눈이 휘둥그레 졌습니다.
큰 바위를 무대로 차례로 노래 자랑도 시키시고 옛날 이야기도 해 주셨지요.

그 예쁜 봄 풍경을 그리도록 하시고 순래잡기며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놀이도 함께 하셨지요.
그때 제가  지은 동시가 백운 학교가 폐교 되기전까지 복도에 걸려 있었었대요.
참으로 선생님은 동심에다 날개를 달아 주셨어요.

선생님은 음악을 참 사랑하시는 분이셨어요.
교과서의 동요 외에도 외국 노래나 가곡도 가르쳐 주시구 음악 시간을 제일 신나 하셨으니까요.

 지역 라디오 방송국 어린이 합창단에도 참여하도록 해주셔서 신기한 방송국 구경에
 너무도 신이 났었지요.
지금도 그때 부른 동요가 문득 문득 생각납니다.

저희 동창들이 유난히 노래를 많이 안다는 사실, 선생님은 모르시죠?
노래 자랑을 그렇게나 많이 시키셨으니 그럴 수 밖에요.

가을날엔, 아! 그러니까 선생님도 저처럼 가을을 좋아 하셨나봐요.
억새풀 반짝이는 언덕에서 단풍이 아름다운 가을 산을 자주 그렸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그때 그렸던 옆집 병숙이네 소는 너무 순하게 그렸다고 말씀하신 기억이 또렸합니다.

그 많던 굴 참나무 숲의 도토리를 함께 주우며 호기심 가득한 빛난 눈동자들에게
생각 없이 무었을 하지 않도록 구르몽의 시를 일어 주셨지요.

메아리가 되도록'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발자국 소리가....'
하시던 테너의 음성이 들릴듯 합니다.

지난 가을에 시인이된 첫째 동생과 그곳을 찾았습니다.
선생님도 아시지요?
웅변을 지도해 주셔서 강원도 대표로 나가곤 했던 ...... .
선생님!
그 학교는 오래 전에 폐교되어  전설 처럼 잊혀지고 우물가의  녹슨 두레박만이
그때의 일을 기억하는듯 하여 한참을 말없이 앉아 있다 돌아 왔습니다.

이제 추억을 찿으러 해도 먼 기억 속의 영상일 뿐입니다.
선생님도 가끔 백운 학교가 생각 나시죠?

선생님이 전근 하시던 날 이미 졸업생인 우리들과 밤새도록 얘기하셨지요.윷놀이도 하구요.
제가 선생님을 많이 이겨서 죄송했던 생각이 납니다.

그리고 눈이 무릎까지 쌓인 산길을 친구들과 버스가 다니는 신작로까지 배웅했었습니다.
제가 오랜 도회 생활을 정리하고 시골로 오기전까지 그 긴세월 한해에 몇번씩은
좋은 책을 소포로 부쳐 주시던 선생님!

그 새벽에 저와 친구들이 왜 그리 까닭 모르게 서럽게 울었는지
자세히 이유를 댈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순수가 아닐까 미소 지어 봅니다.
선생님이 정들어서 라고 하기엔 너무 많이 울었으니까요.

그동안 가을이 수십번 가고 코스모스가 수십번 다시 피었어도 찿아 뵙지 못하고
서신으로만 연락 드려서 정말 죄송합니다.

이제 코스모스 꽃밭을 보아도 그 속에서 책을 읽을 수 없는 나이가 되었고 함께
도시락을 먹고는 천진하게 잠이들던 옥순이도 멀리 살아요.
아이들 결혼식때나 봐야 겠다고 아쉬워하곤 한답니다.

그 시절 그 향기나던 오월이 그 맑던 시월의 하늘이 선생님이 계셨으므로
더 큰 그리움으로 바래지 않는 향기를 발하고 있습니다.

그리운 선생님!
우리들은 어리고 선생님은 젊으시던 그 때가 좋았습니다.
희망과 꿈만 있던 그 흑백 사진 속에 가을이 다시 왔으면 좋겠습니다.


 



 



 



3 Comments
임현빈 2003.09.02 11:01  
  그토록 아름다운 추억이 부럽네요

그때 그 시간을 빌릴 수 있다면
잠깐이라도 갖고 싶네요

잠시 눈을 감고
가을이 그때의 시간에 잠겨 봅니다
서들비 2003.09.02 11:08  
  그렇게 훌륭하신 선생님의 가르침으로 자라셨군요.
그래서
따뜻하고 고운 마음이 배어나는군요.

글을 읽으면서
왠지 코끝이 싸아해 오네요.

저도 오늘은 제 은사님께 문안전화라도 드려야 할까 봅니다.
꽃구름피는언덕 2003.09.02 11:20  
  제 이런 추억들이 시인이라면 고운시로
화가라면 멋진 그림으로 잘 살려 낼탠데
무딘 붓끝이 야속하기만 합니다.
그 많은 추억들을 이 가을엔  어찌해야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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