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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도 전화기

비솔 4 2056
효도 전화기

일요일 대낮, 전화벨이 울렸다. 고향에 혼자 계신 어머니였다.
"일요일인데 안 와?"
"뭐라고? 안 들려. 전화기가 고장 났나 봐."
올해 미수(米壽)인 어머니는 귀가 어두우시다. 마주 보고 대화를 할 때도
소리치듯 해야 알아들으시는데, 전화기 선을 통한 목소리는 더 못 들으신다.
큰소리로 오늘은 가기 어렵고 다음주에나 가겠다고 해도, 혼자 말씀만 하시더니 전화가 끊겼다.
평소 웬만해서는 오라는 말씀 잘 않으시는 분이 얼마나 적막했으면 전화를 다 하셨을까.
오늘은 휴일이니 자식들 중 누가 오려나 기다리실 어머니,
저녁이 되도록 오지 않으면 실망 반 걱정 반으로 밤잠을 못 이루실 어머니 모습이 떠올랐다.
다른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외출 중에 있는 아내와는 상의하지도 않고 하향(下鄕)을 준비했다.
정말 전화기가 고장 났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집 근처 상가에 가 전화기부터 찾았다.
눈과 귀 어두운 노인들을 위한 전화기가 없느냐고 물었더니 숫자 버튼이
큼직하게 만들어진 걸 보여준다. '효도 전화기'란다.
소리도 특별히 크게 들리는 전화기도 있느냐 물으니 볼륨을 크게 하면 된단다.
돋보기를 끼시고 숨죽이듯 힘들게 버튼을 누르시던 어머니를 떠올리며,
그걸 만든 자상한 이에게 고마운 마음마저 얹어주고 샀다.

서울을 빠져나가 경춘가도를 타고 가다가 강을 만나고, 그 강을 끼고 한 참을 간 후
꼬불꼬불 넘는 고갯길. 어머니는 바로 이 길을 일 년에 두 번 오가신다.
겨울 동안 서울 자식들 집에 지내시다가 이른 봄 고향에 내려가시느라 한 번,
텃밭에 채소며 잡곡 농사를 조금씩 지은 후 늦가을 서울 자식들 집에 가느라
또 한 번 이 길로 다니신다.
어머니는 이렇게 거둔 채소며 알곡을 자식들에게 나누어주는 것을 기쁨으로 삼고 계시지만,
한적한 산골에 연로하신 어머니가 혼자 계시는 봄부터 가을까지 자식들은 항상 불안하다.
자식들은 어머니가 서울에 올라오신 후 내려가시지 않게 하려고 해 보나,
평생을 산골에 사신 어머니와 도시생활과는 궁합이 맞질 않는 모양이다.
콘크리트 아파트 생활이 닭장 속에 갇힌 까투리 신세라며, 답답하고 불편해 하신다.
거기다 시골에 계실 때는 괜찮던 다리와 허리도 아프시다 했다.
결국, 어머니는 이번 봄에도 시골로 내려가시고 말았다.

어머니는 텃밭에서 풀을 뽑고 계셨다. 90도도 더 꼬부라진 허리를 애써 펴신 어머니는
"뭐 하러 왔어, 고단한데 쉬지."
하시며 반가운 마음을 애써 감추신다.
어서 가 밥 해 먹자며 앞장서시는 어머니 굽은 등을 바라보니 가슴 가득 서러움이 치민다.
어머니는 열 명도 넘는 자식을 낳으셨다. 지금 살아 남은 자식이 여덟이니
어려서 죽은 자식도 꽤 여럿인 셈이다. 그 죽은 자식을 가슴에 묻은 채,
산 자식 살리기 위해 어머니는 허리를 펴실 수 없었던 거다.
아이를 낳은 다음 날도 들로 나가셨다.
그 덕분에 어머니의 허리는 예순도 채 안 되시어 굽어지고 말았다.
뱃속의 살 떼어 여러 자식 낳으신 후 등에 지고 다니셨으니,
그 배는 얼마나 허전하고 등은 또 얼마나 무거우셨을까.

전화기가 정말 고장 났나 서울 누님 댁으로 전화를 해 보니, 수화기에서 잡음이 들리며
저쪽에서 하는 말이 모기소리 같다.
사온 전화기로 바꿔 설치한 후 다시 전화를 해보니 훨씬 또렷하다.
어머니에게 통해보시라 했더니 그제야 대화가 된다.
다른 곳에 한 번 직접 전화를 걸어 보시라 하니, 작은 상자 안에서 접은 종이를 꺼내신다.
거기엔 여덟 남매 자식들 이름과 전화번호가 큼직하게 적혀져 있었다.
얼마나 많이 사용했던지 손때가 누렇게 묻어 있다. 막내딸이 적어 줘 아주 요긴하게 잘 쓴다 하시며,
종이의 숫자 하나를 보신 후 전화기 숫자 하나 누르고,
다시 하나 보고 또 누르기를 반복하신다.
아, 어머니는 뿔뿔이 제 갈 길로 가버린 자식들 올 날 기다리는 그 적막한 시간,
아들 딸 보고 싶을 때마다 저걸 펴놓고 저렇게 전화기 버튼을 누르셨구나.
숫자 하나씩마다 자식 눈, 코, 입을 떠올리시며.
그렇게 힘들게 전화를 하여 엉뚱한 사람 등장한 적이 얼마나 많았겠으며,
바르게 눌렀어도 자식이 부재중이라 통하지 못하신 적은 또 얼마나 될까.
그런데 요행히 바로 자식이 전화를 받았어도 고장 난 전화기 속에서
앵앵되는 모기소리만 들으셨다니….
어쩔 수 없는 불효자는 그 종이에 쓰인 형제들 이름과 전화번호에,
어머니가 더 쉽게 보실 수 있도록 굵게 덧칠을 할 뿐이다.

어머니가 차리신 두부찌개에 더운 밥 먹고 나니, 어둡기 전에 출발하라며
다시 또 아들 염려를 하신다.
어느새 준비하셨는지 산나물 싼 봉지를 차에 넣어 주시며,
"이젠 죽을 때가 됐나 봐. 다리가 아파 나물도 잘 뜯을 수가 없어."
하신다. 오늘따라 떠나는 자식 바라보시는 눈에 처연함이 가득하고,
어서 가라 내저으시는 손이 한결 더 쇠잔하다.

어머니를 뒤로하여 넘어가는 서낭당 고갯길.
어머니는 이 길로 자식 여덟을 객지로 내보내고 남편 상여도 보내셨다.
그 시절 울퉁불퉁했던 황톳길은 콘크리트로 맵시 있게 단장되었는데,
고우시던 어머니 모습은 세월의 수만큼이나 골이 지고 앙상하게 변했다.
고갯마루에 올라서 돌아다보니, 어머니는 아직도 텃밭에 쪼그려 앉으신 채
아들 탄 자동차를 바라보신다.

그래, 저기 계신 어머니와 나 사이에는 길이 있다.
어머니와 나도 늙고 약해져 가나 둘 사이의 길은 더 튼튼해졌다.
비포장 흙길이 포장도로로 바뀌고, 걷던 길로 차를 타고 오간다. 어디 그뿐인가.
어머니의 눈과 귀가 더 어두워지더라도, 큰 글자에 큰소리로 나는 효도 전화기,
어디서라도 통할 수 있는 휴대 전화기도 있지 않은가. 어머니에게 다가갈 수 있는 찻길,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말길(言路)이 이렇게 잘 뚫려 있는데
저 거리가 무슨 상관이 되랴.

문제는 마음이다. 이제부터라도 어머니에게 향하는 마음의 길을 다져 가야지….
고개를 넘어 서울로 향하는 길 굽이굽이,
뒤늦은 사모곡(思母曲)을 불러본다.

04. 4월 불효자 조병설




4 Comments
정우동 2004.04.24 13:52  
  호미도 날히언마라난
낫같이 들리도 없어니이다
아바님도 어이어신마라난
위 덩더둥셩
어마님같이 괴시리 없어라
아소 님아
어마님같이 괴시리 없어라

어머니 계신 곳이 산골이라 신작로는 끊어져도 산길은 이어지고
거리 멀어 또는 세상 사는 어려운 제약들로 뵈올 길이 끊어져도
어머니를 향한 마음길을 여러모로 뚫을수 있는 것이 다행입니다.
자식 줄려고 챙겨둔 음식 마다 거절 못하는 효자 조선생님은
나이 70 세에 때때옷 입고 춤추고 어린아이 재롱을 부려서 늙은
부모를 위안했다는 노래자(老萊子)의 고사를 생각나게 하고
일본의 시인 이시까와 다꾸보꾸의 시처럼 눈물나게 합니다.

장난하듯이 엄마를 업어 보니
너무 가벼워 참을 수 없는 눈물
세 걸음 걷지 못해
비솔 2004.04.24 20:03  
  정선생님,
이제 저도 詩를 배워야 할 것 같습니다.
단 몇줄로, 제가 쓴 몇 장 마음을 표현하셨군요.
감사합니다.
평화 2004.04.25 13:44  
  비솔님께서는 언제라도 찾아 뵐수있는 어머님께서
계셔서 너무 좋으시겠습니다.
지금은 하늘나라 계신 친정어머님 그리운 생각에 가슴 뭉클하여
눈시울이 붉어지는 아름답고 감동적인 글 잘 읽었습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십시요.*^-^*
비솔 2004.04.26 15:23  
  평화님,
어머니가 고향에 계시기를 고집하는 또 다른 이유는
돌아가신 아버지 때문일 것 같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던 사람들을 가슴에 품고
살아있는 남은 사람들을 사랑하게 되나 봅니다.
읽어주시고 동감해 주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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