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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달에 산 옷

바다박원자 8 1836
윤달에 산 옷

박 원 자

옷 두 벌 사서
장롱 위에 얹어놨으니 와서 보거라
국산은 너무 비싸고 믿을 수 없어
차라리 안 둘리는 중국산 삼베옷 두 벌
칠십만 원에 샀단다.

오랜만에 만난 언니
벌써 수의를 준비했다고 자랑하네

알몸으로 왔건만
무엇이  부끄러워
돌아가는 날은
옷을 입고 가려는가

죽기도 서러운데
살아서도 못 입는
그리도 비싼 삼베옷을 샀는가
가는 날이 엄동설한이면
어쩌려고 삼베옷을 샀는가?
8 Comments
시와사랑 2004.04.06 13:19  
  人生七十古來稀라!
누구나 가는 길인데 가기 싫은 길의
안타까움을 잘 표현해 주었군요.

生死란 화두 속에
슬픔과 서러움을 녹였군요.

선생님의 글을 잘 감상하였습니다.
장미숙 2004.04.06 14:36  
  가는 길에 초연할 수 있는
준비 된 귀가 길~
언니를 사랑하는 바다선생님의 마음과 함께
참 아름다워요~
아까 2004.04.06 23:58  
  저도 나이가 40이 넘은 두 아들의 엄마인데.
언젠가는 떠나보낼 부모님 생각을 하면 지금도 눈물이 흐릅니다.
윤달에 옷 잘 샀다고 칭찬했나요?
벌써 그런 거 샀다고 원망하셨나요?

아직도 어른들의 그런 생각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저를 보면서
바보스러운 건지?
집착이 강한 건지?
아무튼 모자라는 인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내일 일찍 엄마, 아버지 목소리라도 들어야 겠습니다.
음악친구♬ 2004.04.07 00:01  
  알몸으로 왔건만
무엇이  부끄러워
돌아가는 날은
옷을 입고 가려는가

...

부자로 살건 가난하게 살건 가는 날은 옷 한벌 얻어 입고 가는것을...
사는동안은 왜 그리도 많은 욕심이 생기는지요
채워지지 않는 끝없는 욕심들~
그 중 잴 큰 욕심이 오래 오래 사는것이라지요

바다님 글을 읽으니 괜히 눈시울이 붉어집니다

<가는 날이 엄동설한이면
어쩌려고 삼베옷을 샀는가>

가는 날을 준비하는 언니의 마음을 이리도 애닯게 표현하셨네요
붙잡고 싶어도 붙잡을수 없는...

그래도 살아 있기에 이 글을 읽을수 있으니 삶은 행복입니다
 

 

정우동 2004.04.08 00:02  
  一生一死는 피할 수 없는 인간의 숙명
정든 이를 보낼 생각을 하면 가슴이 찢어집니다.
한편, 보낸 이를 나도 뒤따라 만날 줄을 알기에
이별은 또한 미의 창조이기도 합니다.
그래도 이별하기 전에 여한을 남기지 않도록
정나누기에 지금 몰두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민간풍속에서 음력 윤달은 가외의 달이어서 재액이 없고
무슨 일을 하여도 꺼리낄 것이 없다하여 건축, 차례, 묘의 손질
수의 마련등은 흔히 윤달을 이용하였답디다.
개악-퇴영이 아니면서 개선-발전쪽이라면 무슨 일을 아무때 하기
로서니 무슨 탈이나 꺼리낄 일이 없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산처녀 2004.04.08 22:09  
  84세의 시모님과 82세의 친정어머님을갖인<?>저도 늙은 아낙입니다
시어머님께서 윤달든해만 되면 어김없이 당신의 수의를 하고자하시고
삼동네 소문난 아드님은 수의 소리만 들어도 눈가에 눈물이 고이며
펄쩍하는상황이 벌어집니다
어머니 가시면 수의 못할까보아서 그러시냐고 하며.
어머니는 얘 수의를 만들면 더 오래 산단다. 그래도 우리는 아직 어머님의 수의를 마련하지 못했읍니다



 
바다님의
바다 2004.04.09 17:53  
 
어느 분이 제게 보낸 글입니다.

바다선생님!
이별의 준비가 믿어지지 않으시겠지만 어쩌겠습니까?
왔다가 돌아가는 일은 인간의 일이 아닌걸요.
 다행스럽게도 우리민족은 죽음과 친숙해서
스스로 준비한답니다.

저도 어렸을 때 할머니 할아버지가 미리 준비하신
棺木과 수의를 본적이 있습니다.
손님이 오면 삼베나 명주 수의를 펼쳐놓고 자랑하면서
안도하시던 모습이 선합니다.
궁핍이 지배하던 시절에 당신이 돌아갈 때 입을 옷을
준비하는 건 우리 조상들께는 대사였던 것 같습니다.

천륜으로 만나 이승에서 함께한 인연인데,
돌아갈 준비를 하는 연로하신 언니를 바라보는
동생의 애뜻함이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도 종 환 시인의
‘살아서 못해준 새 옷 한 벌 죽어서 입힌’ 남편 마음이나
 항상 엄마처럼 의지하던 언니의 이승 하직 준비를 바라보는
선생님의 마음이나 뭐가 다르겠습니까.

맨 날 몸에 감고 살면서도 옷 한 벌에 맺힌 사연들은
 다 가지고 있는 모양입니다.
저도 조만간에 제 기억속의 옷들을 정리해볼까 합니다.
바다 2004.04.09 23:54  
  또 다른 어느 분이 보내주신 글입니다.

작품 잘 읽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생시에 스스로 수의를 준비하는
사람은 존경스럽습니다.평소에 죽음을 생각한다는것만으로도
그분의 삶을 대하는 자세가 진지해 보이거든요.
선생님의 시를 읽고 삶을 다시 생각해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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