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음을 멈춘 문자들
걸음을 멈춘 문자들
- 바람의칸타타. 22 -
송 문 헌
빗소리에 후다닥 책상 위 모니터 속으로 뛰어 들어와 앉는다 저녁나절 빈 마당을 툴툴거리던 바람, 타타타타 행간을 달리던 자막들이 흘깃흘깃 뒤돌아 보다 발걸음을 멈춘다 ‘넌 어디서 왔니? 네 고향 들녘에도 할미꽃 피고 달빛 창백한 밤이면 뒤란 울타리에 아직 찔레꽃이 피던?’
너무 예뻐서 슬퍼, 찔레꽃은 너무 예뻐 슬프다던 누이가 희디흰 밤을 떠나던 때도 찔레꽃이 밤을 밝혔다 시간이 지나 내가 한창때 그 꽃이 세 번이나 피고 지는 동안 *파스를 한웅큼씩 삼키리라고 누이는 생각이나 했을까 어둑발을 더듬어 문득 엔터를 치니 흐트러진 부호들 행간에 걸음을 멈춘 문자들이 무심히 나를 쳐다보고 있다
‘시간은 흐르는 것이 아니고 쌓여가는 것’ 이라고
어둠이 내리고 나서야 외등이 고요한 것을 알게 되는 걸까? 빗소리는 여전히 밤을 흔들고 있다
* 파스 : 결핵 치료약
- 바람의칸타타. 22 -
송 문 헌
빗소리에 후다닥 책상 위 모니터 속으로 뛰어 들어와 앉는다 저녁나절 빈 마당을 툴툴거리던 바람, 타타타타 행간을 달리던 자막들이 흘깃흘깃 뒤돌아 보다 발걸음을 멈춘다 ‘넌 어디서 왔니? 네 고향 들녘에도 할미꽃 피고 달빛 창백한 밤이면 뒤란 울타리에 아직 찔레꽃이 피던?’
너무 예뻐서 슬퍼, 찔레꽃은 너무 예뻐 슬프다던 누이가 희디흰 밤을 떠나던 때도 찔레꽃이 밤을 밝혔다 시간이 지나 내가 한창때 그 꽃이 세 번이나 피고 지는 동안 *파스를 한웅큼씩 삼키리라고 누이는 생각이나 했을까 어둑발을 더듬어 문득 엔터를 치니 흐트러진 부호들 행간에 걸음을 멈춘 문자들이 무심히 나를 쳐다보고 있다
‘시간은 흐르는 것이 아니고 쌓여가는 것’ 이라고
어둠이 내리고 나서야 외등이 고요한 것을 알게 되는 걸까? 빗소리는 여전히 밤을 흔들고 있다
* 파스 : 결핵 치료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