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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러 보내라

별헤아림 0 8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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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러 보내라
권선옥(sun)

흘러 보내라
권선옥(sun)

교육청 마당에 오기만 하라는 휴일 아침
시문학 기행으로
고속버스를 타고 옥천엘 갔었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 향수를 노래하며
죽향초등학교에서 기자들과 문학 퀴즈도 하고
온 김에 육영수 여사 생가를 찾았다.

오래된 연못과 고풍스런 옛집
그 주변의 우람한 나무와 숲
깊은 산 속에 온 듯
코끝에 닿는 신선한 유월의 내음

평평한 곳에 이르러 발걸음 멈추고
우람한 설송과 단풍나무에 눈 크게 뜨며
시선 따라 오르다 하늘 끝 바라본다.

누군가 주위를 집중하게 하곤
이런저런 나무의 이름에다 지식을 보태주니
고개 끄덕이며 고마워 할 때까진 좋았다.

이런 외래종 나무가
우리 나라에 들어온 것이며
역사와 배경을 따져서
베어 버리고 멸종시켜 버려야 한다네.
자기의 이름도 고향도 내세우지 않는 나무
말없이 자신의 키를 키우는 나무

한 나라 안에서
네 고향이 어디냐 네 아비가 어떤 놈이냐
묻지를 말 것이며,
한 지구상에서 인간 아닌 것들에게
흘러간 역사를 가르치려 하지 말라.
꽃은 꽃이요,
나무는 그저 나무일 뿐이며,
물은 흐를 뿐이다.
그러니까 흘러 보내라.

<2006. 3. 19.>

<시작 노트>

2004년 6월 6일(일요일) 대구광역시교육청에서 <제 4회 꿈과 사랑의 시 잔치 한마당> '가족과 함께 하는 시문학 기행'에 딸과 함께 참가한 적이 있다. 시인 정지용의 <파아란 하늘빛>을 찾아서 떠난 일요일 아침, 지금도 생각하면 가슴 벅찬 하루였다.

<향수>의 시인 정지용.
그는 내가 좋아하는 시인 중의 한 분이다. 1930년대 모더니즘적인 주지시 계열의 이미지즘과 새로운 언어 감각에 의한 시를 창작하였을 뿐만 아니라, <문장>지를 통하여 1939년에 시 추천위원으로 있으면서 박목월·조지훈·박두진 등 청록파 시인들뿐만 아니라 소설가 춘원 이광수와 시조 시인 김상옥 등 많은 문학가들을 추천하여 한국 문학사를 빛낸 분이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88년 해금조치 이전까지는 우리 문학사의 그늘에 묻혀 있어야만 했다. 그의 시가 사상적인 불온성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단지 한국전쟁 때 북으로 갔다는 이유로 <월북 시인>으로 분류되어 무려 40년이나 이름조차 언급할 수가 없었다.

이 월북이라는 것도 그렇다. 후에 남북이산가족 찾기에서 정지용의 동생과 아들이 서로 남과 북으로, 북에서 남으로 생사를 묻게 된다. 그럼 그는 어디로 갔는가. 그는 한국전쟁에서 희생된 피해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죄 없는 그의 시, 빛나는 그의 시를 40년이나 가두어 두었다.
그 결과 지금은 교과서 여기 저기에 올라 있는 그의 시를 읽으면서, 40년 간이나 그의 시를 접할 수 없었던 대한민국의 학생들을 떠올려 본다. 본인도 당연히 그 세대이다.
교과서에서는 당연히 볼 수 없었던 그의 이름이 참고서의 문학사에서는
<정* *, 박* *., 김**>로 표기 된 것을 본 적이 있다.
그를 빼놓으면서 지식의 오류를 범할 수도 없고, 그의 이름을 올릴 수도 없어서.

그의 시를 나의 가슴에 새길 수 없었던 중고등학교 시절이 안타까움으로 남는다. 안타까운 것이 어찌 나만의 학생시절이겠는가. 그의 시를 가슴에 새길 수 있는 40년이란 긴 시간을 잃음이 그러하고, 배움의 기간을 지나간 수많은 학생들이 그러하다.

그의 시는 그의 시였을 뿐이다.
그래서 그의 시에는 그의 정서와 감각만이 있을 뿐 아무런 사상적 빛깔이 없다.
시인도 시도 깨끗한 그가 받은 피해를 거울삼아, 앞으로의 세계화 시대에는 시인도 시도 억울한 일이 없어야 할 것 같다. 시인의 사상과 정서가 시로 탄생이 되는 일이니, 혼탁하고 오염된 예술가에 의해 맑고 아름다운 예술품이 창작될 확률은 적다. 하지만 간혹 그런 일이 있을지라도 예술가는 인간으로서 평가되고, 예술은 예술로서 평가되어야만 할 것 같다.

혼탁하고 오염된 예술가를 용서하는 일이 아니라, 훌륭한 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일반인의 권리를 보호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또한 예술가와 그의 예술 작품이 정치적인 수단이 될 수 없고, 정치적인 배경의 희생물이 될 수 없음이다.

-참고-
<정* *, 박* *., 김**> : 정지용, 박영희. 김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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