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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게구름

뭉게구름 10 1848
                      뭉게구름(수필)
                                          김형규(뭉게구름)

  햇살이 따가운 삼복의 가마솥 찜통 폭염을 피해 산촌 숲 속을 찾아 들었다.
  벼가 퍼렇게 서너 뼘쯤 자란 다랑논, 두렁콩이 손바닥을 펴고 있는 논배미 옆, 옥수수 텃밭엔 뭉게구름이 일렁이고, 외양간 송아지 음매 하고 울적에 봉선화 곱게 핀 굽이굽이 돌담길을 오르는 농부의 굽은 어깨 위로 너울너울 노랑나비가 춤을 춘다. 하얗게 부서지는 여울에선 견지낚시를 즐기는 낚시꾼이 서성대고, 개울가 미루나무에서 들려오는 매미들의 합창으로 산골의 평화로운 정경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이 곳, 한 폭의 인상파의 그림을 보는 듯 하다.
  먼 옛적이 아닌 우리들 어려서만 하여도 개울은 물만 흐르는 곳이 아니었다. 냇가에는 모래밭도, 자갈밭도 있었고 갈대밭도 있었다. 그곳은 우리들의 일터고 놀이터이며 보물창고였다. 물가의 모래를 파서 샘을 만들고 고무신짝에 잡아온 가재며 물고기들을 넣고 꽃을 따고 풀을 꺾어다 햇볕을 가려 주었다. 꽃과 풀잎사이로 파아란 하늘과 새하얀 뭉게구름이 내려앉으면 맑은 개울물과 함께 우리들 마음도 차고 넘치었다.
  조그만 종이배를 띄우고 행운의 네잎 클로버를 찾아 헤매기도 했었고, 토끼풀 반지를 나눠 끼고 새끼손가락을 걸며 변치 않는 우정을 간직하자고 굳게 약속도 했었다. 지금도 아련히 떠오르는 것은 뒷동산 소나무 아래 짙푸르던 녹음 속에 드러누워 시리도록 파란 하늘에 펼쳐진 하얀 뭉게구름을 쳐다보면서 동심을 매달아 띄웠다.
  불볕더위에 지칠 줄 모르고 솟아나는 뭉게구름의 비밀이 어디에 있는지, 하얀 꿈을 안고 있는 품성이 무엇인지, 높은 산자락에 걸린 뭉게구름을 잡으러 산 정상에 오르려 마음먹었다.
  곰실곰실 피어나는 뭉게구름이 어찌나 뽀송뽀송하고 폭신폭신하게 보이던지, 솜털과 솜사탕도 저런 솜털과 솜사탕이 없는 것 같다. 한 조각 떼어다가 가슴에 품고 집에 가져가 이불 속에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었다.
  어쩌면 저렇게 갖가지 모습으로 뭉게구름은 넓은 하늘에 떠 있을까. 어느새 파란 하늘에는 갖가지 물고기가 떠다니고, 어느 때는 양과 곰과 코끼리도 되었다가, 곧 바로 바람결에 나부끼는 꽃과 나뭇잎이 되고, 드디어 멋있는 꽃봉오리와 산봉우리를 만들어낸다. 뭉게구름은 하늘이 추울까 봐 온갖 무늬 조각이불을 덮어 준다. 첩첩이 일어나는 뭉게구름 속으로 휘돌아 들어가면 거기에는 신선들의 잔치가 벌어지고 새하얀 옷을 입은 선녀들이 함께 춤을 추는 모습을 본다. 때로는 아름다운 구름꽃을 피우며 향긋한 구름향기를 내 뿜는다.
  간간히 부는 실바람에도 나무 잎은 하늘하늘 흔들린다. 나뭇가지에 걸려있는 뭉게구름은 잠간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듯 곧 흘러간다. 서로 만나면 합치고, 합치면 새로운 짝을 짓는다. 어느 틈에 보드랍던 보랏빛 그늘이 검은 그늘로 변해 버리고 햇볕을 가리면서 굵은 물방울을 내리 퍼붓는 소나기가 되면서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다. 낮잠 자던 아낙네가 장독 뚜껑을 덮고 빨래를 걷고 나면 소낙비는 딱 그치고 햇볕이 뭉게구름 사이에서 반짝 내려쬔다. 뭉게구름은 미안한 듯 저 먼 산골짜기에 황홀한 무지개를 낮게 드리운다. 이렇게 알 수 없는 비밀을 가지고 한없는 변화를 부리는 것이 여름 하늘의 뭉게구름이다. 뭉게구름은 창조주가 하늘에 펼치는 신비한 마술인가. 아니면 패션쇼나 전시회인가. 인간을 위해 베푸는 위안잔치인가.
  오묘한 대자연은 갖가지 곡선들을 조화시켜 저렇게도 아름다운 걸작품들을 만들어 내고 있으니, 인간은 대자연의 섭리 앞에 하잘 것 없는 미물에 지나지 않는가보다.
  풀빛 맺힌 푸른 하늘에 하얀 뭉게구름 머무르고, 잔잔한 호수에 하얀 그림자를 드리우지 않았던들 어찌 이 짜증스런 불볕더위를 이겨 낼 수 있을까!
  저 뭉게구름 잡아타고 내 마음 두둥실 띄우면서 푸른 하늘을 벗 삼아 세속의 온갖 잡념 훨훨 털고 끝없는 먼 유랑의 길을 떠나고 싶다.
  바다 위로 떠오르는 일출, 뉘엿뉘엿 산등성으로 스러지는 붉게 타는 저녁노을, 뭉게구름 위로 쏟아지는 달빛과 별빛을 가슴에 품으면서--,
  하늘에서 태어나 하늘에서 살아가는 뭉게구름. 자유롭고 변화무쌍한 모습이 부럽기만 하다. 보이기는 하여도 보이지 않고, 있는 것 같으면서도 없는 것 같은, 잡아도 잡힐 것 같지 않은 뭉게구름, 사랑할 것이 아무것도 없을 때 뭉게구름은 내게로 와서 나의 다정한 벗이 되어 주었다.
10 Comments
김경선 2006.08.11 16:56  
  피로가 쌓이는 오후시간입니다.
뭉게구름 덕분에 나도 따라
덩실덩실 춤을 추며 추억 속으로
날아 다녔지요.
바다 2006.08.11 18:35  
  저의 어린 시절 마을에서 보았던 그림이 그대로 되살아 옵니다.
여름불볕 더위에 시원한 청량제를 마시는 기분입니다.
교수님!
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건강하시구요
정우동 2006.08.11 20:02  
  그렇습니다. 염천 불볕이 뜨거워도 소나기가 시원하고
검푸르게 커가는 벼들이 고픈 배를 불려 줄 것이기에 더위도
가히 참아 낼만 합니다.
교수님의 아이디가 뭉게구름인것도 구름의 조화와 변화가
천변만화 무쌍하고 아름다운것을 취하였나 봅니다. 
도연명의 四季중의 여름구름도 생각납니다.

春水滿四澤 ( 춘수만사택 )
夏雲多奇峰 ( 하운다기봉 )
秋月揚明輝 ( 추월양명휘 )
冬嶺秀孤松 ( 동령수고송 )
.
뭉게구름 2006.08.11 20:48  
    김경선 원장님, 바다 시인님, 정우동 고문님,
  무더위에 부족한 글을 읽으시고 격찬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작년 문예지에 발표했던 수필을 이제서야 올렸습니다. 찌는 별볕 더위에
 잠간 몸과 마음을 씻으시고 뭉게구름을 타고 하늬바람을 맞으며 짙게 물던        초록  의 향기를 맡으시는 시간을 가지시기를 기원하는 뜻으로 올렸습니다.
  정우동님의 도연명의 명시 四季를 소개해 주셔서 너무나 감사합니다. 
뭉게구름 2006.08.11 21:00  
  바다 시인님의 <양평리의 뭉게구름>의 아름다운 글과 멋진 뭉게구름의 사진이
 일품입니다.  바다님은 유명한 시인이신 줄만 알고 있었는데 또한 유명한
 사진작가이신가 봅니다. 
별헤아림 2006.08.12 18:25  
  여름날 저녁 낮은 언덕배기에 누워서
무심한 뭉게구름을 바라보며 한없이 상념의 나래를 펴는
한 청년이 화폭에 들어옵니다.

그 청년은 자연을 벗하며 부드러운 심성을 지닌
훌륭하신 경제학자에다 교수님에다 수필가도 되셨지요.

지금도 음악을 사랑하시고, 그림을 그리시고, 서체를 갈고 닦으시는
교수님.
자연과 가까이 지내면 지낼수록 자아실현이 더욱 견고해짐을 가르쳐 주심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성윤맘 2006.08.13 10:38  
  더운 여름이지만 아름다운 글을 읽으며
뭉게구름에 실려 어린시절의 추억속으로 떠다니는 기분입니다.
오늘은 성윤이와 함께 하늘을 다시금 올려다보고 싶습니다.
뭉게뭉게 떠다니는 뭉게구름을 찾아 뭉게구름님을 생각하며
구름이야기를 나누어 보아야겠습니다.
이 아름다운 글도 같이 읽어보며, 아직 어려서 제대로 이해할 순 없어도
뭉게구름님의 글이라면 가만히 듣고 있습니다.
뭔가 전해지는 느낌이 있나봅니다.
자연이 주는 새로운 신비와 아름다움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언제나 그리웁고 감사드리는 마음입니다.
장미숙 2006.08.13 12:36  
  흘러가면 그만.. 흩어지면 그만.. 인 구름을 잡으시어
이 토록 아름답게 독자를 감동시키는군요.
한 조각 떼어다가 이불속에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다..는
표현은 구름만 보면 제 생각 속에서도 피어날 것 같습니다.

송인자 2006.08.16 10:17  
  구절구절 사랑스럽고..가슴 뛰게 만드는 멋진 글입니다.^^
올 여름따라 늘 상 찌뿌둥했던 서울 하늘 아래.....
그것조차 올려다 볼 여유도 없이 살다가
엊그제 찾아간 계곡에서 뭉게구름이 두둥실 떠 있는
파란 하늘을 올려다봤습니다.
늦둥이 녀석이 유난히 좋아라 하더군요.
"엄마,엄마 모양이 금방금방 바뀌네요!"
고운 수필 감사합니다. ^^
뭉게구름 2006.08.16 23:32  
  시인 별헤아림님, 약사 성윤맘님, 시인 장미숙님, 수필가 송인자님,
 이 곳에서 훌륭한 분들을 뵙게 되어 무척 기쁩니다. 좋은 글 주시고 격려해 주시어 가슴이 설렘니다. 더욱 더 큰 꿈을 뭉게구름에 띄우겠습니다.
랭스턴 휴스의 <꿈>이란 시가 떠오릅니다.

                    <꿈>
 꿈을 잡아라
 꿈이 사그라지면
 삶은 날개 부러저
 날지 못하는 새이니.

 꿈을 잡아라
 꿈이 사라지면
 삶은 눈으로 얼어붙은
 황량한 들판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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