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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고성들

이종균 3 1846
9-3. 독일의 고성(古城)들
  우리나라에서는 성(城), 성채(城砦), 성새(城塞), 이름이야 어떻든 모두 적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한 구축물이란 통일된 개념이 있다.
  그러나 독일에서는 일반적으로 전쟁에 대비한 성을 부르크(Brug)라 하고, 주거용 성을 슐로스(Schloss)라 하며, 도시 근교에 있는 작은 성을 레지덴츠(Resident)라 부른다.
  뾰족한 산 위에도 밋밋한 언덕 위에도 서있는 성의 모습은 멋스럽고 신비롭고 전설이 서린 듯, 보는 사람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그래서 유럽에서도 가장 유명한 관광지라는 하이델베르그(Heidel Berg)를 찾았다. 이곳은  독일에서도 교육문화의 중심도시로 손꼽히는 곳이다.
  1386년에 설립되었다는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가진 하이델 베르그 대학을 비롯하여 테어도어호이쓰 다리 건너 넥카강변에서 시작하여 신성산(神聖山) 허리를 가로 지르는 철학자의 길(Philosophen Weg), 그리고 교회와 곳곳에 세워진 조각 조형물 동석상등에 얽힌 내력과 사연이 어찌 깊지 않으랴만 하이델베르그 고성(Schloss)은 아데네의 신전 ,그리고 베르사이유 궁전과 함께 유럽의 3대 관광명소로 관관객수가 연간 3백만에 달한다니 실로 놀라운 일이다.
  넥카 강 남쪽 예덴불 산 가파른 중턱에 자리 잡은 이 옛 성은 13세기경 처음 세워진 후 1400년부터 1620년까지 궁전과 부속건물들이 건축되었다는데 선제후들의 호화롭던 주거문화를 짐작할 수 있으려니와 건축물의 지형을 이용한 입체적인 설계와 예술적 건축양식이 경탄 할만하다.
  이 성은 1618년에 시작된 팔츠 선제후의 왕위 계승 전쟁 즉 독일 30년 전쟁과 1764년 낙뢰로 두 번 파괴되었다는데, 19세기 후반에 이를 복원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으나 이를 잘 극복하고 역사적인 현상을 그대로 잘 보존하고 있다고 그들은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다.
  선제후 루프레히트 3세가 독일 왕으로 선출되면서 1400년부터 주거용으로 지었다는 성문 바른쪽의 루프레히트 궁, 프리드리히 2세의 뒤를 이어 1556년 오토하인리히가 등극하여 지었다는 오토하인리히 궁(현 의약박물관), 프리드리히 4세가 이 성의 노후 된 예배당과 성탑을 헐고 건축물의 배열을 가다듬은 뒤 가장 낮은 곳에 지었다는 프리드리히 궁, 모두가 예술적인 극치를 이루는 호화로움에 아연할 뿐이다.
  그리고 이 궁성의 동남쪽에 1460년경에 지었다는 벽체가 6.5미터나 되는 화약고 와 그 위에 솟은 성탑과, 선제후 프리드리히 5세가 그의 왕비가 된 영국 공주 엘리자베트 슈투어트의 19번째 생일선물로 1615년 단 하룻밤 새에 만들었다는 엘리자베트 문 등은 불가사이하기만 하다.
  여기 있는 시설 건축물 하나하나가 다 신기하고 흥미롭지만 내 맘을 사로잡은 건 헐어지다 남은 벽에 머릿돌처럼 박힌 괴테(Johann Wolfgang Goethe;1749~1832)에 대한 마리안네(Marianne Von Willemer; 1784~1860))의 사랑의 시와 궁성 정원에 있는 괴테의 흉상 아니 흉상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목이 짧게 잘린 두상이었다. 
  “... 사랑하고 사랑받는 나는
      이곳에서 행복했노라.”
  1814년 65세의 괴테가 30세의 마리안네를 처음 만나는 순간 벌써 사랑은 시작되었다.
  이를 눈치 챈 그녀의 양부 프랑크프루트의 은행가 빌레머(Johan Jakob Von Willemer)씨는 서둘러 한 달 뒤에 자기와 결혼을 하나 괴테와의 사랑은 익어만 가고, 1815년 가을  이곳에서 마지막 만남을 갖는다.
  어린 소녀나 성숙한 처녀, 기혼여성이나 미혼여성, 그리고 유부녀나 미망인을 가리지 않았다던 괴테의 사랑은, 김동인 작 광염쏘나타의 작중 인물인 백성수가 어떤 충격적인 감흥에서 위대한 음악을 창조했듯이, 괴테는 사랑을 할 때마다 위대한 문학을 탄생시켰으니 그의 여성 편력을 어찌 바람기라고만 하랴!
  북부 독일 오스나뷔르크(Osnabruck)시 남쪽 쾌적한 요양지로 알려진 밧  이브르크(Bad Ibrug)에 있는 이브르크 성(Die Ibrug)은 서기 780년경 칼 대제(Kaiser Karl Der Grosse)가 오스나뷔르크 교구의 기본을 세우고 첫 번째 교회로 지었다는데 이 성은 외세의 침공에 이어 몇 차례 파괴되었을 뿐 아니라 교구의 방어를 위한 주교들과 신교, 교권(敎權)과 왕권(王權), 그리고 시민(民權)들 사이에 서로 빼앗고 빼앗기는 끊임없는 갈등과 투쟁의 긴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남부독일의 아담한 도시 시그마린겐(Sigmaringen)에 있는 호헨졸런 성 (Hohenzollern Schloss)은 일명 칼 안톤 성이라 부른다.
  그리 높지 않은 언덕에 있어서 지금은 도심에 들어 있다.
  한 때 이락의 후세인이 세면대의 수도꼭지까지 순금으로 만들어 사치의 극을 이루었다더니 이 성이야말로 화려함의 극치를 이룬 것이 아닌가 싶다.
  호화로운 가구 집기 샹들리에 촛대 화병, 침실 화장실 세면장의 치장, 벽화 천정화 선조 대대로 내려오는 가족들의 초상화 풍경화들의 고급스런 액자에 이미 내 정신은 혼미해진다.
  아래층 엽총을 비롯한 곰 사슴 노루 여우 독수리 학 오리 꿩 등의 박제, 그보다 더 놀란 것은 일일이 잡은 날짜를 기록하여 벽에 걸어놓은 노루 뿔이다. 어림셈으로 1천점 내외, 노루는 수컷만 뿔이 있으니 암컷까지 합친다면 과연 몇 마리나 잡았을까? 그렇게 살생을 하고도 극락에 올랐는지 모를 일이다.
  문득 의문 하나가 고개를 든다. 왜 이곳에 사냥개의 박제는 없는 것일까. 병졸들이 훈련을 받아 사냥개 노릇을 한 것일까.
  라인 강 변의 수많은 산성들은 또 다른 의미를 갖는다.
  세력가 귀족들이 라인 강의 통행세를 징수하는 착취의 의미기 있지 않으랴...
 
3 Comments
산처녀 2006.10.16 19:27  
  선생님 감사합니다.
3일간을 부평의 딸네 집에 갔다 오늘 돌아 오니
선생님의 책이 두권 제 책상위에 놓여 있네요.
저는 그만 어머나 내게도 이렇게 귀한 책을 보내셨어 ?
하고 저도 모르게 큰소리로 박수 까지 첬답니다.
 감사 합니다 .
열심히 보고 산의 미학을 배우겠습니다 .
이종균 2006.10.16 21:10  
  책이 책다울런지 모르겠습니다.
젊은시절 한 때 농촌운동을 했고, 또 즐겨불렀던 '산 아가씨'노래 생각이 떠올라
보내드리고 싶었습니다.
장미숙 2006.10.17 13:17  
  딸애가 독일에 있어서인지 '독일'이라는 단어에 눈이 확 뜨입니다~^^
"엄마! 독일에 오시면 좋은 시상을 떠올리고.. 참 좋으실텐데.."
딸의 말에  "됐다~ 어서 공부 마치고 빨랑 오기나 해라." 하는
무드없는 엄마지요.
달마다 문예사조에서 만나는 선생님의 글도 반갑게 읽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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