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커뮤니티 > 자유게시판
자유게시판

3. 경북 영양 문학 기행기 -조지훈 문학관-

송인자 6 1856
둘째 날 (일)

5시가 조금 넘어서 ‘권재도’사무국장님께서 문을 두드려서(?) 찜질방을 이용하실 분은 가시라는 통에 잠이 깼습니다.

그곳은 워낙 오지라서 핸드폰도 터지지 않았습니다. 전날 저녁에도 몇 번씩 시도해봤으나 헛수고였습니다. 미리 그런 얘기를 해주지 않아서 가족들이 염려할까 봐 그게 또 걱정됐습니다. 엄마라는 자리는 자나 깨나 걱정하는 자리인 모양입니다.

비온 뒤 햇살이 화사한 아침은 낯선 잠자리에서의 상쾌치 못했던 기분을 남의 일처럼 느끼게 했습니다. 전날 내린 비로 숙소 주변을 흐르는 도랑엔 물이 가득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물이 놀랍도록 말갛고 찼습니다. 비온 후에는 흙탕물을 보는 게 일상인지라 그게 신기했습니다.

또 도랑 주변에 이끼가 끼어있지 않았는데 그런 것은 아주 어린 시절 말고는 깊은 산속에서나 볼 수 있는 광경입니다. 그것을 보자 “월든”에서 ‘헨리데이빗 소로우’가 “먼지가 나는 것은 인간들이 자연을 뒤엎고 파서 그렇지 자연에서는 먼지가 없다“던 대목이 생각났습니다.

기왕 “월든”을 소개한 김에 책을 뒤져서 멋진 한 대목을 올려봅니다.

* 노동자는 단순한 기계 이외에 다른 아무것도 될 시간이 없다. 인간이 향상 하려면 자신의 무식을 항상 기억해야 하는데, 자기가 아는 바를 수시로 사용해야만 하는 그가 어떻게 항상 자신의 무식을 기억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그를 평가하기 전에 그에게 가끔 무상으로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주며, 우리의 강장제로 그의 기운을 북돋아주어야 하겠다.

* "채소만 먹고는 못삽니다. 뼈가 될 만한 성분이 하나도 없거든요” 그러고는 자기 몸에 뼈 성분을 공급해 줄 원료를 생산하느라고 꼬박꼬박 하루의 일부분을 바친다. 농부는 이런 말을 하는 동안에도 줄곧 소 뒤를 따라 다니는데, 그 소인즉 풀만 먹고 자란 뼈를 갖고서도 온갖 장애물을 해치면서 농부와 그의 육중한 쟁기를 끌고 있다.
-월든 본문 중에서-

오전 7시, 시원한 동태국과 간고등어, 나물들로 간단한 아침식사를 하고 짐을 챙겨서 8시 12분쯤 펜션을 출발했습니다. MP3에 가득 담긴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태고의 전설을 간직한 이끼 낀 바위와 울창한 숲을 바라보노라니 행복했습니다.

“조지훈”선생님 문학관으로 이동하느라고 주변이 탁 트인 곳으로 나왔더니 그때에야 휴대폰이 터졌습니다. 집에 전화했더니 평소 일요일이면 날 잡아 잡수 하고 일어나지도 않던 녀석들이 모두 깨어있었습니다. 이 없으면 잇몸이라더니, 아빠가 마구잡이로 깨웠답니다.

이번 여행 중 “이문열”작가님 문학관엘 들른다고 주변사람들(그래봤자 관심도 없는 사람들이지만)에게 떠들었는데, 못 가는 줄 알았더니 일월산 산나물 축제 참관을 생략하고 그쪽으로 간다는 반가운 소식을 전해줍니다.

문학관을 가기 전 조지훈시인의 형님이신 ‘조동진’선생님의 시비가 있는 곳을 들렀습니다. 겨우 21세에 유명을 달리했다는 조동진님의 시비는 1940년에 조지훈 시인님께서 세워주셨답니다. “.....길게 살아 무엇 하리, 오래 살아 무엇 하리, 끝이 구슬픈 삶일 양이면,”
시를 읽으며 누군가 그랬습니다. “시를 보니까 알겠구만, ‘차중락’도 “낙엽따라 가버린 사랑을 부르더니 가버렸고, 이 분도 미리 시에서 다 얘기 했구먼” 다들 긍정하는 분위기였습니다.

어느새 나타났는지 영양군 기획이사라는 여자 분이 우리를 “주실 숲”으로 안내했습니다. “주실 숲”은 악귀와 나쁜 기운을 쫓기 위한 보호림으로 그 지방 사람들이 영험한 숲으로 여기는 곳이랍니다. 둘러보니 햇빛에 반짝거리는 나뭇잎과 은은한 신록의 향, 산새소리가 있는 정말 아름다운 숲이었습니다.

또다시 버스로 이동해서 문학관이 있는 “주곡리”에 내렸습니다. 마을은 새로이 단장을 한듯했지만 워낙 아담한 작은 마을이었습니다. 그곳은 비록 본 행사는 지났다지만 예술제 기간 중인데도 예상과 달리 너무나 한적했습니다.

선생님의 여러 유품들이 진열되어 있는 문학관엘 먼저 들렀습니다. 평소 사용하시던 안경, 장갑, 약간은 화려한 붉은 줄무늬 나비넥타이, 파이프, 훈장등도 볼 수 있었고, 평상복, 모시와 명주 두루마기등도 있었습니다. 여러 사진들을 통해서 주로 검은테 안경을 쓰셨으며 이마가 유난히 훤한 미남자였다는 사실도 알았습니다. 사진속의 선생님은 키가 생각보다 크신 듯 했고 아주 고고해보였습니다.

스피커를 통해 여자 나레이터가 선생님의 시와 삶을 잔잔한 목소리로 들려주고 있어서인지 시대를 초월한 듯 한 분위기에 압도당했습니다. 해드폰을 끼고 “낙화”를 읊는 선생님의 육성을 듣기도 했습니다. 선생님의 목소리는 힘이 없었고, 함께 낭송을 하던 여성이 끝부분에 가서 흐느끼는 것으로 보아 병환 중이었거나 운명하시기 얼마 전일 것으로 추정되었습니다. 그곳은 학창시절 빼고는 별로 접하지 않았던 “지훈”선생님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게 해주었습니다.

가장 기대를 했던 “시 공원”, 줄지어서 나무 계단을 올랐습니다. 계단 옆으로 선생님의 주옥같은 시가 대리석에 새겨있었고. 많은 분들이 합창을 하듯 낭독했습니다. 내가 그냥 눈으로 읽을 때보다 누군가 낭랑한 목소리로 읽어주자 감동이 몇 배가 됐습니다. 그래서 시낭송가가 따로 있나 봅니다.

워낙 시를 사랑하는 분들이어서인지 누군가는 선생님의 시라면서 거기에 없는 “귀촉도”를 외우자 함께 외우던 머시기 선생님은 그건 “미당”선생님의 대표작이라고 일침을 놓기도 했습니다. 저는 긴지 아닌지도 모릅니다.




6 Comments
바 위 2007.07.11 12:11  
  강 건너 남한산성 흐릇하니 웃는날

빗 방울 첨벙첨범 강 건너 오는 날

오늘은 천리 밖 벗님이 말타시고 오시리...


송선생님
고맙습니다...
노을팜 2007.07.11 21:30  
  영양이란 두 글자에 누-ㄴ이  번쩍 뜨였읍니다.
물 맑은 송하계곡에서 하룻밤을 지내셨군요.
다음 번 들러게 되시면 놀팜이 살고 있는 물 맑은 수하계곡에서 지내시구려.
먼 훗 날 만남을 기대하면서-------.
송인자 2007.07.12 11:11  
  바위선생님
오랜만입니다.
칭찬 고맙습니다.^^

노을팜님
아하~ 그곳이 송하계곡입니까?
그곳 펜션에서 하룻밤을 묶었지만...이름도 몰랐습니다.
먼동이 트고 ...차차 밝아지며 ...
찬란한 햇살이 산과 들을 비추자 너무나도 상쾌했었답니다.
그곳을 잘 아시나 봅니다.
수하계곡도 좋다구요? ...기회가 닿으면 꼭 가볼게요.^^
김형준 2007.07.13 20:32  
  좋은 글을 잘 읽고 갑니다.

아주 유익한 여행을 하셨군요.
여러 모로 영양가 풍부한 공부가 되셨으리라 믿습니다.
김경선 2007.07.14 12:35  
  경북 영양하면 이젠 노을팜네 가족도 생각나는군요.
내년 내마노 테마여행은 노을팜이 (꿀벌여행)을 하시면서
계실 곳에서 음악회를 해보면 어떨까요?
송인자 2007.07.19 08:37  
  김형준선생님
칭찬 고맙습니다.^^
글 쓰는 데 참 부지런하신 분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김경선원장님
원장님은 차기 음악회까지 미리 계획하셔야 하니
참으로 바쁘시겠습니다.
"꿀벌여행".....이름이 참 멋져요^^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