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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시인의 별, 그리고 나의 별

차성우 1 1979
어린 시절, 동네 친구들과 어울려 들로 산으로 다니며
늦게 집으로 돌아오다가 동네 어귀 언덕쯤에 오면,
날은 어두워지고 새까만 하늘에는 별들이 총총 빛나고 있었다.

우리들은 언덕에 잠시 앉아서 별을 바라보며
 “별똥별이 떨어져 땅에 닿기 전에 소원을 말하면 이루어진다.”는
말을 믿으며 별똥별이 떨어지는 때를 맞추어 소원을 말하곤 했었다.
하지만, 별이 땅에 닿기 전에 소원을 다 말한 친구는 없었다.
그때 나의 소원은 돈 많이 벌어서 마당이 넓은 집을 짓는 것이었다.

일곱 살쯤일 때 칠월 칠석 날 할머니는 큰 감나무가 마당에 서있는 집
마루에 앉아 있는 나에게
"오늘 밤에는 견우와 직녀가 만나는 날이니 하늘을 보아라", 하셔서
그 때 이후로 칠석날이 될 때 마다 하늘을 보았지만 별이 제대로 보인적은 없었고
해질녘에 까막까치만 온 동네 주변을 떼를 지어 날고 있었다.

이후로 알게 모르게 별은 내 마음 속 한 편에
표현 할 길 없는 물결 같은 모양으로 남았다.
꿈으로, 소원으로, 그리움으로, 슬픔으로,
할머니로, 어머니로, 어린 친구들로,
때로는 풀지 못할 지독한 그리움으로 남아,
지금도 나는 밤이 되면 가끔 마당에 서서 별을 바라본다.

고등학교 2학년쯤에 윤동주 시인의 ‘별 헤는 밤’을 배우며
시인의 속 깊은 뜻을 다 이해하지는 못하였지만,
'어린 시절 내가 자란 시골의 분위기와 마음을 어찌 이렇게 잘 표현하였을까' 싶은
감탄을 하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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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헤는 밤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


가슴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佩), 경(鏡), 옥(玉)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
벌써 애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잼'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봅니다 .


아이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슬히 멀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 보고
흙으로 덮어버리었습니다


딴은 밤을 세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게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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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로 가득 찬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
윤동주 시인이 가슴 아파했을 수많은 가을이
나에게서도 지나가고,
남아있는 삶의 날들 중에서 몇 번이고 맞이하고 보내야할 가을 마다.
어린 시절의 꿈들과 함께 내 가슴 속에 펄펄 돋아나올 슬픔과 기쁨, 그리움들이
어쩌면 나에게는 ‘자랑처럼’이 아니라 부끄럼 같이 무성할 것 같다.

나는 내 이름을 한 번도 나답게 써보지 못한 고향의 언덕과 동네의 타작마당과
세상모르고 뛰어놀았던 초등학교 운동장이 지금도 별과 함께 떠오르며
아름답기도 하고, 짠하기도 한 기억들로 고개를 숙인다.

스물일곱 살이라는 아까운 나이에 시인은 가셨지만,

내 육신은 윤동주 시인과 다른 시대의 세월을 따라 여기저기 부대끼며 지나와
어린 청춘은 가 버렸으나
마음의 청춘은 부끄럼도 모르고 끈질기게 남아서

세상살이를 견디다가 지친 날 밤이나,
어쩌다 맞는 한가한 밤이나,
눈물을 흘리지는 못하고 펑펑 울고 싶을 때나,
잊지 못할 지나간 시절이 그리울 때
문득 떠오르는 사람들이 지독히 보고 싶은 밤에,

어린 시절의 별들을 떠 올리며
추억과 사랑과 쓸쓸함과 그리움과 시와 어머니,
별빛과 연관 된 일들이 가슴속 하늘로 들어와 배긴다.

초등학교 1학년인가 2학년 때쯤 이불에다가 오줌을 싸서
'키'를 머리에 쓰고 뒷집 아주머님께 소금을 꾸러 갔었다.
커다란 주걱으로 엉덩이 두 대 맞고 소금 한 종지 얻어 와서
어머니로부터 용서를 받고, 그 날 하루 종일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학교에서 다른 친구들이 알까, 내내 고개를 떨군 채 있었다.

세월 가고 고등학교 3학년 때, ‘우리 아버지, 17살 때쯤
만주로 돈 벌러 가셨었다.‘는 말을 할머니로부터 들었다.
윤동주 시인의 '오줌싸개 지도'는 나에게 이런 기억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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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줌싸개 지도



빨래줄에 걸어 논
요에다 그린 지도
지난밤에 내 동생
오줌 싸 그린 지도


꿈에 가 본 엄마 계신
별나라 지돈가?
돈 벌러 간 아빠 계신
만주 땅 지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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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닭은 알 수 없었으나,
왠지 우리 아버지에 대한 짠하고 안타까운 생각이 지금도 든다.

나는 윤동주 시인의 시에서 조국의 비참한 모습이나
일제의 잔학한 역사의 흔적을 실감나게 느끼지는 못했었지만
‘우리 아버지가 그 시대에 어린 나이로 만주에 가셨다가
해방될 즈음에 돌아오셔서
고향의 강둑을 만드는 공사장에서 일하셨다가
다시 육이오를 깊은 병환 중에 지내시고
전쟁이 끝난 해 군복을 염색하는 행상 일을 하셨다.‘는
할머니의 이야기들이 생각나는 것이다.

오줌을 이불에 싼 아침,
행여나 이불이 조금이라도 마를까 싶어 자는 척 뒤척이며
게으름을 부리다가 소금을 꾸러 간 어린 시절의 기억과 ,
‘만주로 돈 벌러 가셨었다.’는 우리 아버지의 젊은 시절에 대한 상상,
‘오줌싸개 지도’는 나에게 이런 생각을 나게 하였다.

불빛이 밝을수록 잘 볼 수 없는 별,
어둠이 짙을수록 더 또렷하게 보이는 별,
전등불빛이 찬란한 도시의 한 가운데에 사는 현대인에게
점점 멀어져 가는 별들,

이제는,
별을 별답게 보고 느끼려면 어린 시절의 캄캄한 하늘로 돌아가야 한다.
욕심으로 입을 쩍쩍 벌리는 현대의 거리에서,
조명등의 밝기로 사람을 유혹하는 거리에서,
좀 더 나은 것들을 얻기 위하여 온종일 투쟁하다가
지친 몸으로 밤을 잊은 채 쓰러지는 시간과,
닭장 같은 아파트의 편안함에 찌든 몸뚱아리로
총총한 별을 빼앗긴 오늘,

어린 시절의 캄캄한 하늘로 돌아가서
제대로 보이는 별다운 별을 보고 싶다.
윤동주 시인의 ‘오줌 싸 그린 지도’에서처럼

꿈에, 엄마 계신 별나라도 가보고
만주 땅으로 가서 아버지의 흔적을 보기도 하고...

별들이 총총한 밤에 끝없이 하늘을 날며 찾아갔던 꿈 속 나라에서
나도 모르게 그렸던 그 펑퍼짐하고 짭조름하게 젖은 지도,
어쩌면, 지나온, 그리고 찾아갈 인생의 지도인 ‘오줌싸개 지도’.
그 지도를 오늘 다시 그려서 그 위에 두 다리를 굳게 펴고 서서
눈 크게 뜨고 총총히 빛나는 별을 헤아려 보고 싶다.
1 Comments
고리오 2011.03.29 17:46  
윤동주 선생의시  오랬만에 감상했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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