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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의 가곡 작품에 대한 쓴 소리 한 마디

임수철 4 1799
요즘, 가곡에 대한 대중적인 인기는 예전만 훨씬 못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작곡가들의 가곡 창작에 대한 열기는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워서
최근에 많은 창작 가곡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작곡가의 한 사람으로서 이러한 창작 열기에 대해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하지만 창작 가곡 작품 하나 하나를 전문가적 시선에서 바라보자면,
솔직히 착잡함을 금할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작품의 양에 비해 질이 만족스럽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홍난파, 현제명으로 상징되는 서양음악 1세대 시절에 비하면,
요즘의 작곡 기술적 수준은 정말 눈 부실 정도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명가곡으로 손꼽힐 만한 창작 가곡은 거의 나오지 않는 것 같습니다.
사실, 작곡 기술이라는 게 수단이지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닙니다.
그런데 요즘 만들어지고 있는 대부분의 가곡 작품들은 현란한 기술만 있는 것 같습니다.
작곡자 특유의 독창성과, 음악적 아이디어가 없는 것 같습니다.
조금 유식하게 표현하자면, 작곡자만의 독특한 음악 언어가 없습니다.
그래서 수 많은 가곡들이 쏟아져 나오지만, 그 곡이 그 곡 같습니다.
조금 심하게 표현 하자면, 모두 같은 성형외과에서 같은 방식으로 성형을 한 무개성한 얼굴 같습니다.

게다가 가곡 작곡가들의 문학적 이해도가 많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어떤 詩에다 곡을 써도 거의 같은 스타일의 가곡 작품이 만들어지는 것 같습니다.
詩가 어떻든 이미 굳어진 내 작곡의 틀에다가  찍어 내겠다는 식입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소위 좀 잘 뜨는 가곡은 작품 그 자체보다 작곡자나 성악가의 명성에 좌지우지 되고 있습니다.
예컨대, 썩 좋은 가곡이 아니더라도 조수미처럼 유명 성악가가 부르면 거품이 낀 명가곡이 되는 식입니다.

가곡 애청자들의 음악적 이해도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습니다.
무개성한 가곡이라도 적당히 감미롭고, 화려하면 대부분 좋다고 합니다.

전문 성악가들의 한국가곡에 대한 가창력에도 문제가 많은 것 같습니다.
대부분의 성악가들이 한국가곡을 마치 이탈리아 가곡이나, 오페라 아리아처럼 부릅니다.

한국어 딕션도 아주 엉망입니다.(특히 여자 성악가)
조수미의 한국어 딕션, 정말 엉망입니다.
조수미보다 명성은 훨씬 못한 소프라노 박순복이 딕션도 더 정확하고, 한국가곡도 잘 부르는 것 같습니다.
바리톤 윤치호 선생같이 한국어 딕션이 좋은 성악가분도 계시지만, 아무튼 이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가 필요하다가 생각합니다.

결론은, 가곡 작품의 양이 아니라 질이라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가곡 작품은 요즘 너무 많이 생산이 되어서 문제인 것 같습니다.

다시 정리하자면 요즘 창작 가곡들, 너무 상투적이고, 과장스럽고, 현란하고, 무개성한 것 같습니다.
피아노 반주 처리도 한결같이 비슷비슷하고, 화성 처리도 엄격한 화성학 법칙에 갇혀 교과서적인 것 같습니다.

기존의 작곡 매뉴얼적으로 볼 때, 아주 완벽하지만 무개성한 작품보다는
조금 서툴고 어설픈 것 같아도 독창성이 있는 가곡 작품이 차라리 한국 가곡 발전에 더 큰 기여를 할 것이라는 게 저의 개인적인 견해입니다.
4 Comments
김균태 2015.12.20 03:58  
저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동감이 되는 부분도 있고, 아닌 부분도 있습니다.

많은 양만 쏟아져 나오고, 현란한 기술만 선보이는 곡들이 넘친다는 말씀에는
동감합니다. 이렇다 보니, 많은 곡들이 쏟아져 나와도 일반인들이 이해하거나
애창하기는 어려워서 전문가들에 의해 창작발표때나 한두번 연주되고 잊혀지는
경우가 많은 걸 봐왔습니다.

근데, 작곡자의 독창성이나 음악적 아이디어라는 부분은 양면성이 있을 것 같습니다.
이 독창성과 음악적 아이디어라는 것은 "예술성"과 관련있는 범주일 것 같은데,
이것과 함께 생각해야 할 범주는 "대중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보면 예술성만을 강조하려다 보니 기교만 현란해지거나
아니면 전체적인 흐름이나 분위기가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어려워지는 면이 많은 것 같고
그렇다고 "대중성"만 강조하려다 보니 예술성은 부족해지고
그 곡이 그 곡같고 저 곡이 저 곡같은 현상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성악가나 작곡자의 명성에 따라 곡의 생명력이 결정된다는 것은
반은 맞고 반은 아닌 듯 합니다.
맞는 경우의 이유는
유명인이 작곡하고 유명인이 부르면
나도 그 곡을 부름으로써 내 가치도 높아진다는
그런 심리를 갖고 있는 분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닌 경우의 이유는
위에서 언급한 "대중성"이 크게 작용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는 리듬, 박자, 음정, 음역대 등등에
좌우되는 경우도 많으며
각자의 취향에 따른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구체적인 작곡자와 작품을 언급하지는 않겠지만
신작곡(물론 아주 최근 신작곡은 아닙니다) 중에
아주 유명하신 작곡자분이 작곡하시고 아주 유명하신
테너 분이 초연하신 곡이 있는데
저 또래의 젊은 층이 들을 때는
트로트같은 느낌이 많이 들어서
별로 좋아하지도 연주하지도 않는 거 같은데
문화센터 등에서 수업을 들으시는
연세 많으신 분들은 엄청나게 열광하신다고
하더군요.

문학적인 이해가 떨어진다고 평가하신 것은
감히 말씀드리자면
좀 삼가하셔야할 발언이 아니신가 합니다.
문학이라고 하는 것은
작가 본인이 아니고서는
보는 사람에 따라서 해석이나 분석이나 의미파악이
달라지기 마련입니다.
선생님께서는 선생님의 시각과
다른 사람의 시각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생각지 않으시고, 오직 선생님의 문학적 이해방법이
옳기 때문에 나머지 사람들은 이해능력이 떨어진다고
하신 것은 아닐런지요....
그분들도 나름대로의 이유나 해석방법이 있었겠지요....
문학의 이해방식에는 정답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다고 봅니다.
굳이 잘못되었다라고 하려면
우리말로 된 문학작품을
서양식 음악으로 표현하려는 그 자체가 잘못이고 모순이 아닐까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완성된 하나의 전체 작품을 평가하는 것도
보는 시각에 따라서 다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전문가가 보는 기준과 일반인들이 보는 기준이 다르며,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또는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보는 기준이 다르니까요...
단적인 예를 들자면,
창작가곡 콩쿨의 경우
심사위원들의 심사표를 보면
동일 곡을 놓고도
어떤 분은 70점대를, 어떤 분은 90점대를
주신 걸 보았습니다.

결국,
창작곡이 만들어지고 발표가 되고 난 이후에는
그 곡이 좋은지 안좋은지, 생명력이 길지 짧을 지는
오직 대중들의 선호도에 달려있을 것 같고,
한 개인의 견해를 마치
절대적인 기준인 것처럼
피력하는 것은 조심스러워야 할 부분인 것 같습니다.
임수철 2015.12.20 12:46  
제 개인적인 주장에 대해 좋은 의견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선생님 말씀 대로 작곡자 입장에서 볼 때, 예술성과 대중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다는 게 정말 쉬운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큰 틀에서 보면, 결국 마찬가지이겠지만 음악 전문가나 대중의 음악적 취향은 결국 학습적인 것과 환경적인 결과물입니다.
저는 서양음악 전공자입니다만, [전폐희문],[해령],[시나위 합주], [육자배기], [전통 가곡-이삭대엽], [거문고 산조]와 같은 한국 전통음악을 무척 좋아합니다.
하지만 이런 음악을 좋아하는 분들은 극히 드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 음악들을 접하고, 학습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지요.
우리 인간의 청각은 무척 보수적이어서 태어나 대략 20대 전후까지 경험하고, 학습한 음악이 거의 평생의 음악적 취향으로 굳어진다고 합니다.
그래서 음악적 취향에는 세대차이가 무척 심합니다. 그러므로 어린 시절의 음악 교육이 아주 중요하지요.

모차르트가 음악의 천재라고하지만, 결국은 자신이 체험한 그 시대의 서양음악 양식적인 범위 내에서 천재일 뿐이지요.
만약, 모차르트가 [전폐희문]이나 [수제천] 같은 한국의 전통음악을 들었다면 음악적으로 어떻게 인지하고 이해했을까요?
절대음감이라는 것도 사실 큰틀에서 보면, 일종의 상대음감이지요.

외국의 경우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국내에서 작곡 전공으로 학부과정과 석사과정을 공부했는데,
교육과정에 오로지 음악 실무적인 것만 가르치지 문학이나 철학과 관련된 것은 빠져 있었습니다.
요컨대, 작곡의 기술과 기능만 가르치는 시스템입니다.
그래서 문학적으로 부족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한국의 작곡가들이 문학에 대해 잘 모른다고 지적한 것을,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사실은 어학적인 것입니다.
문학은 선생님 말씀 대로, 해석에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어학, 그 중에서도 문법적인 해석에서는 규칙이나 규정이라는 게 있습니다.
이 부분에 관한 한은, 가곡 작품 하나하나를 놓고 어학적으로 어떤 문제가 있는지 구체적으로 지적할 수 있지만,
이 자리가 학술적인 세미나 자리가 아니어서 생략하겠습니다.

아무튼 부족한 제 의견에 대해 고견을 주셔서 감사드리고, 저의 창작에 반영할 수 있는 부분은 반영하도록하겠습니다.

거듭 감사드리며, 두서없는 글 여기서 마무리합니다.
김균태 2015.12.22 00:42  
아하~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어학적인 면"...
아주 예전에 서점에서 우연히 책을 본적이 있었습니다.
임수철 선생님께서 쓰신 책으로 기억하는데
표지가 붉은 색이고, 좀 얇았던 거 같은데 맞지요? ^^

거기서 작곡할 때 고려해야할 "어학적인 면"에 대한
구체적인 사례를 놓고 설명하신걸 본 걸 어렴풋이 기억이 납니다.

사서 보지는 않았고,
그 때까지는 누구한테도 들어보지 못했던 내용들이어서
신선한 충격이면서, 동시에 어렵기도 했던 기억이 납니다.
(우리말은 외국어와 달라서 못갖춘 마디로 시작하는 곡을 쓰면 안된다는 내용도 있었던 것 같기도 하구.... )

"와~ 이런 걸 다 고려하면서 해야 되는 거구나~" 하면서도
"과연 이게 100% 다 적용되어서 곡이 쓰여질 수 있는 걸까?" 라는 생각 등등
머리가 조금 복잡해지기 시작했던 기억도 나구요 ㅋㅋ

어떤 부분에서는 이해가 되고
또 어떤 부분에서는 글로만 봐서는 잘 이해가 안되어
직접 설명을 들으면 도움이 많이 되겠다는 생각도 가졌었습니다.

지금도 그 책이 나오는지 모르겠네요....
다시 한번 정독해서 읽어봤으면 하네요...
지금 보면 이해가 더 잘 될지도 궁금하구요 ^^
임수철 2015.12.22 11:22  
부족한 저의 졸저를 기억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가곡 작곡법(동진음악출판사)]이란 책이었는데, 12 년 전인 2003년에 출간되었습니다.
지금은 절판되었습니다.
아마도 중고 서적으로는 구입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되는데, 제 개인적으로는 10 여 권 정도 소장하고 있습니다.
꼭 필요한데 중고로도 구입 불가능하면 메일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지금 저자 입장에서 이 책을 아주 당당하게 권장할 만한 용기는 없습니다.
지금 읽어보면, 보완할 부분이 좀 있습니다.

김균태 선생님 말씀 대로, 어학적 규칙을 100% 완벽하게 다 지키면서 가곡을 작곡한다는 것은 사실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하지만, 70% 정도는 지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슈베르트의 가곡을 높이 평가하고 싶은 것은, 그의 가곡이 단지 음악적으로만 훌륭해서가 아닙니다.
어학적으로도 아주 훌륭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한국가곡의 경우, 제가 가장 불만스러워하는 부분 중의 하나가 음악과 노랫말의 부조화입니다.
일단, 가락의 강세와 노랫말의 강세가 불일치하는 가곡이 너무 많습니다.
제 책에서 언급하지 않았지만, 채동선 선생의 그 유명한 가곡 [고향-정지용 詩]의 경우에도
노래의 강세와 노랫말의 강세, 그리고 장단이 완전히 불일치합니다.
음악 그 자체만 놓고 보면, 정말 빼어난 명곡이지만.
마치, 준수한 몸매(가락)에 잘 맞지 않는 옷(가사)을 걸쳐 입은 것 같습니다.
채동선 선생은 일제 강점기에 교육받고 활동을 하셨기에 아마 우리 한국어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을 못받으셨기 때문이라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한글세대의 작곡가들조차도 우리말에 대한 기본을 제대로 모른다는 것입니다.
아니, 모른다기보다는 서양식 가곡 작곡법을 우리식으로 토착화 시키지 않고 그대로 수용해서인 것 같습니다.

저의 졸저 [가곡 작곡법]에서 주장한 바와 같이, 우리 말 가사에는 여린 박으로 시작되는 못갖춘 마디의 노래가 잘 맞지 않습니다.
물론, 예외는 있습니다. 노랫말의 첫 단어가 바로 명사(名詞)로 시작되지 않고, 관형사 같은 것이 앞에 붙는 명사로 시작되는 경우입니다.
예컨대, 오, 내 사랑 목련화야-로 시작되는 김동진 선생의 [목련화]는 못갖춘 마디로 시작되어도 됩니다.
그러나 앞에 관형사가 와도 다음의 센박에 -은, -는, -이, -가 ,-를 같은 조사(助詞)가 걸리는 경우는 가급적 피해야 자연스럽습니다.

그런데 비록 갖춘 마디로 시작되어도 장단(長短) 처리나 음고(音高) 처리도 고려해야 합니다.
애국가의 경우, '동해물과-'가 '동, 해물과-'처럼 부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경우를 생각해보셨는지요?

저는 완전히 음악 변방에서 활동하고 있는 재야(在野) 작곡가라서 작곡전공 학부생이나 대학원생들을 만날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혹시 기회가 된다면 '당장은 어설프고 어색하더라도 자신만의 독특한 작곡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작곡가가 되어라!'는 주문을 꼭 하고 싶습니다.

음악도 일종의 언어라는 개념으로 볼 수가 있는데, 제도권 작곡 교육과정에서 가르치는 것은 [표준어적인 작곡언어]라고 할 수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제도권 작곡교육 방식대로 작곡을 하면, 쉽게 말해서 서울말로 작품을 만드는 것과 비슷한 의미가 됩니다.
요즘 작곡되는 창작 가곡들을 큰틀에서 보자면, 거의 모든 작곡가들이 한결같이 서울말로만  작품을 쓴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작곡자의 이름을 보지 않고 신작가곡들을 들으면 누구의 곡인지 거의 구별이 안 될 정도입니다.
제가 주장하고 싶은 것은, 거의 모든 작곡가들이 왜 서울말로만 작품을 쓰느냐는 것입니다.
좀 투박하고, 거칠고, 때로는 어색한 느낌이 들 수 있을지라도 사투리로 작품을 쓰는 작곡가도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방식으로 작곡을 하면, 작곡의 기본과 기초가 안되어있다는 비판을 받게 되는 게 우리 작곡의 현실입니다. 

화성 처리도 기존의 교과서적인 화성 법칙에서 벗어나면, 화성학을 제대로 모르는무식한 작곡가로 대접받게 됩니다.
물론, 교과서적인 화성법에 대한 공부가 필요없다는 주장을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바탕으로 작곡자 자신만의 독창적인 활용법을 만들어낼 수 있어야  창의적인 작곡가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화성학을 마치 종교적인 율법처럼 생각하는 음악인들이 의외로 많은 것 같습니다.
물론, 작곡전공 입시생들은 자기 방식 대로 화성학을 풀면 불이익을 받겠지만.
드뷔시 같은 작곡가가 기존의 교과서적인 화성법에만 매어 있었다면, 그만의 독특한 색깔의 작품을 쓰지 못했겠지요.

바그너 같은 작곡가는 브람스와 달리 기존의 교과서적인 작곡 언어에 서툴었기 때문에 오히려 혁명적인 작곡가가 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말하자면, 당시 기준으로 보았을 때 브람스는 세련된 표준어를 구사하는 작곡가였고,
바그너는 거칠고 생뚱맞은 자기만의 사투리를 구사하는 작곡가였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바그너가 브람스보다 더 위대한 음악가라는 것을 주장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둘 다 훌륭한 음악가입니다.(저는 인간적으로는 브람스를 더 좋아하고, 음악적으로는 바그너를 더 좋아합니다만)
제가 주장하고 싶은 것은, 작곡 언어의 다양성과 독창성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한국가곡도 진정한 발전을 위해서는 지금과 같은, 거의 천편일률적인 한 가지 작곡 언어로만 창작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주장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리고 기악곡이라면 또 몰라도, 가장 고급 문학 장르 중의 하나인 詩를 노랫말로 사용하는 가곡 작곡에서는 음악 공부 이상으로
문학과 어학에 대한 공부도 철저하게 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이러한 제 생각이 100% 진리는 아니겠지만, 작곡학도들에게 조금이나마 참고가 되었으면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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