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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잎의 그리움

현규호 14 1084
지하철 7호선 청담역 8번 출구에서 100m 거리에 gallery the space가 있다고 했다. 큰 걸음으로 150보 정도려니 계산하고 발을 떼는 순간 출구에 정우동 님이 서계신 것이 시야에 들어왔다. 다들 잘 찾아들 올 터이니 들어가시자고 권하여도 막무가내시다.
초행길이니 안내를 하여야 하신다며, 쭉 내려가다 두 번째 골목으로 좌회전하라시며 혹시 근방에 해야로비 님이 안내를 하고 있다면 공연한 수고니 들어가라고 말씀전해달라신다.

내가 들어섰을 때 스페이스는 그저 공간에 지나지 않았다. 피아노가 놓여있고, 의자가 놓여있고, 몇 사람이 앉아 있었고, 조금은 삭막한 느낌도 들었다. 점점 동호회원들이 모여들고 의자의 갯수를 늘려가자 사람의 체취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어디 그뿐이랴. 인애 님이 제공하신 인절미며, 김메리 님의 강원도 찰옥수수가. 말레시아에서 잠시 귀국하셔서 자리를 빛내주신  이니 님이 커피나 녹차를 타 주시겠다는 인정마저 베푸시니 마치 동네 사랑방에라도 들어온 기분이다. 니벨룽 보다는 가곡교실을 택하셨다는 탁계석 님의 글은 감격 자체였다.

사람이 서로 만나는 것은 늘 사람의 맘을 뛰게 한다. 이번 9월 가곡교실에서 서들비 님이 23년 만에 은사를 만나는 극적인 해프닝이 있었단다. 얼마나 짜릿한 순간이였을까? 얼마나 감격스러웠을까?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중에 우연한 기회로 어떤 특정인을 만난다는 것이 정말이지 기적이 아니면 가능할까?

연애하던 시절 내 머리 속을 점령했던 여인네들을 떠올려 본다. 그 중 어느 누가 날 생각하며 밤을 뒤척여 본 사람이나 있을까 생각하니 절로 쓴 웃음이 지어진다. 얼굴은 도저히 떠올릴 수 없을 것 같은 데 간혹 보고 싶은 사람들도 있다. 한 때는 우연을 가장하고라도 그 사람이 있을 만한 곳을 배회하고 픈 적도 있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내 첫사랑을 먼 발치로 발견했다. 그렇게 날씬하던 그미는 마치 작은 공이 굴러가는 착각을 할 정도로 배가 볼룩 나오고 양미간에 심술이 덕지덕지 붙어 있는 것이 머리 속에 그리던 그미의 모습이 아니였다.

환상은 이렇게 깨젔었는 데 배울 노래 '한 잎의 그리움'(조준 시/한지영 곡)에서는 아름다움으로 승화되였다.

    가을 마다 한 잎 씩 쌓인 그리움이 스물이나 됩니다.
    그리울 때마다 한 잎 씩 써놓은 편지도 스물이나 됩니다.
    떠날 때 다시 만나리라 님과 약속도 못한 채
    중년의 무게를 더 합니다.
    잘 간직하리라 묻어 두었던 기억 속의 언어는
    녹이 슬어 찬란한 빛을 잃었읍니다.
    그래도 나는 그리운 님에게
    잘 접어 놓은 그리움을 보내 봅니다.

둘은 대학 미팅 때 만났단다. 헤어지고 군대가느라 소식 못 전하고, 미국으로 이민 가느라 소식 돈절되고, 20년 세월이 휙 지난 후 우여곡절 지내고 겨우 재회할 수가 있었단다. 간절함이 묻어난다. 이렇게 아련할 수가. 이렇게 예쁠 수가....
속인과 예인의 차이를 절실히 느낀다.

'배울 노래'만 남겨 놓고 '우리 가곡 부르기 행사'의 '부르실 곡'은 전부 불려졌다. 특별 순서의 원민이 꼬마 아가씨를 사회자 임승천 님이 소개했는 데 잠잠하다. 어떤 이가 사정을 전했다. 차례를 기다리다 지쳐 잠이 들고 만 것이다. 가끔은 할머니를 따라 온 우진이가 잠을 자다 찍세에게 두 눈을 반짝이며 앙징맞은 포즈를 취한 적은 있었다. 대신 최유진 아가씨(초교 2년)의 완숙한 동요를 들었다. 이처럼 고운 목소리가 저 작은 몸매에서 나오다니, 찬사가 절로 나왔다. 끝나고 인사도 얼마나 천연덕스럽던 지 무대 매너도 백점을 주어야 했다.
잠을 깬 원민이는 피아노를 쳐가며 '나비야'를 참착하게 불러주었다. 전혀 흔들림이 없다. 유치원에 다니고 있다니 이런 뱃심이면 커서는 세계를 제패할 날을 기원해도 욕심만은 아닐 것 같다.

가곡교실이 파하고 스페이스를 나오는 순간 성큼 닥아선 가을의 문턱에서 왠지 허전한 속을 채우기 위해 한 쪼끼 걸치고 가자고 동행인에게 청해볼까 하다가 오늘 부터 하기로한 단식의 결의를 깨기 싫어 그냥 지하철로 발을 돌렸다. 멀어져가는 사람을 그냥 바라봤다.

지하철에서 만난 어느 분은 300여곡을 알고 계시다고 했다. 그 분 말씀이시다.
목에 핏대 올려가며 듣는 사람도 괴로운 괴성을 질러대야 할 필요가 있을까? 꼭 피아노 반주가 있어야 할까요? 노래방에서 처럼 키를 낮추어도 될 터인 데, 그저 기분 좋게 흥얼흥얼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것들이 서민 생활에서 가곡을 멀게하는 원인이 아닐까? 이제 부턴 듣는 것 따로, 부르는 것 따로 한다면 여유롭게 여러 사람들이 가곡을 즐길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신 단다. 가곡을 보급시켜야 한다는 우리 동호회원 만이라도 개악을 하고 싶으시단다. 어느 한 날 피아노 반주 없이 특별 순서에도 참석해 보시겠단다.
14 Comments
김경선 2005.10.01 23:53  
  선생님께서 올려주신 명화 '한잎의 그리움'
감상 잘 했습니다.
서들비 2005.10.02 01:19  
  예 선생님!!
참 좋은 만남에 감사하고
함께 할 수 있는 즐거움에 감사합니다.
선생님의 멋지고 재미있는 후기에도 즐겁습니다.
^^*
해야로비 2005.10.02 08:40  
  어느 한날...피아노 반주없이 특별 순서에 참여하실...그날 기다리겠습니다.
모두에게 용기를 주실 어느 한 분이 또...기다려집니다.
지킬박사 2005.10.02 12:21  
  그냥지나가는 이야기로 흘려들을 수 만은 없는 말이라고 봅니다. 가곡이 본디 예술성을 지니고 있을진댄 예술가들이 하는 것이니 일반인들과 다른 무언가가 있어야 하는 것이겠지요마는 예술도 보고 듣는 일반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은 누구나 공감하는 사실, 항상 보고 듣는 수동적 입장에만 있던 일반 감상자들이 최근엔 점점 직접 예술에 참여하는 추세인 듯 합니다. 그럴려면 역시 일반도 따라하기 쉽게 되어야 할 것인데.. 예술로서의 권위와 집착을 버리면 되겠지요만.... 10.02. 12:20 - 삭제
내마노(합)총무 2005.10.02 15:05  
  아~~ 반주없는 읊조림~~  그거네요.. 우리는 항상 그렇게 부르는데..  그게 정말 가곡 사랑일 듯도 싶네요..  현선생님 멋집니다~~
산처녀 2005.10.03 03:45  
  저도 동감합니다 .
예술가의 가곡이 아니라 그저 흥얼거릴수 있는 그래서 가까운 가곡이어야
할것 같음니다.
젊은날의 뜻도 미처 모르면서 흥얼거렸던 아리아가 다음에 동생들도  자식에게도 흥얼거리면서 친해젔던것과 같이 말입나다
旼映오숙자 2005.10.03 05:02  
  애틋한 사랑 일 수록 더욱 그립고 아름다운 사랑으로 남는가봐요....
노을 2005.10.03 11:34  
  마음만 보냈던 9월 가곡교실
누가 그날의 정경을 그려주실까 매일 잠깐잠깐 들려봐도
별 흔적이 없어 서운했는데
역시 현규호선생님이 올려주셨군요.
사진 먼저 보고 글 읽으니 훨씬 생동감 넘칩니다.
한 잎의 그리움, 참 정답고 그리운 제목의 노래, 같이 못 불러 아쉽네요.
저도 현선생님처럼  우연한 해후로 인한 즐거움을 겪은 적 없음을 애석해 하며
살지요. 이 가을 멋진 만남 기대해 보시지요.
바다 2005.10.03 16:10  
  저는 그 날 <한 잎의 그리움>에 담긴 사연을 제 친구에게 띄워보냈습니다. ㅎ ㅎ
노래로는 제게 별로 가까이 오지 않았는데 사연을 들으니 애정이 가더군요.
참 묘한 일이지요? ㅎ ㅎ
현규호 선생님 자세한 후기 감사드립니다.
현규호 2005.10.03 17:24  
  후기랄 것도 없지만 쓴다는 것이 그저 시시하게만 느껴져 한참을 망설였읍니다.
읽을 만한 소재가 될까? 재미를 전할 수가 있을까? 그 나물에 그 밥이 아닐까? 등등.
그래도 늘 단골로 댓글을 달아 주시는 분들이 고마워서 또 무척이나 궁금할 것같아 쓰긴하였는 데 신통치가 못하군요.
좀 더 정감이 가는 글을 써 주실 분들이 나타나 주셨으면 하는 바램인 데, 너무 아끼시는 것같아 하소연 해봅니다.
바다 2005.10.03 22:57  
  계속해서 써 주세요.
다른 분에게 미루지 마시고...
 다른 분은 그 분 나름대로 또 쓰시고...
 다양한 후기가 나오면 더욱 가고 싶은 가곡교실
 더욱 부르고 싶은 우리 가곡
더욱 만나고 싶은 사람들...
더욱 많은 사람들의 독창행렬...

이렇게 될 것 같아요. ㅎ ㅎ
정덕기 2005.10.05 18:26  
  못 뵈어서 죄송합니다
꼭 가려고 했는데 그만......
이 니 2005.10.07 18:04  
  현선생님 후기 감사합니다.
오랜만에 참석한 가곡교실에서 만나뵙고 반가웠습니다.
선생님글 읽을때마다 어쩜이리 재미있게 쓰시는지
절로 미소가 지어집니다.
좋은글 많이많이 올려주세요.          ^&^
philip 2005.10.10 10:29  
  저는 못가보아서...
이렇게 후기를 써 놓으신 분의 글을 읽고 대리 만족을 한답니다.....
후기는 현선생님이 꼭 쓰셔야 합니다...
다만, 너무 의식하지 마시고
그냥 편하게 쓰세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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