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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소망

barokaki 3 874
오랜만에 들렀습니다.
얼마전에 끄적여본 글을 올립니다.
모두들 편안하시고... 행복하시고....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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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소망

내가 노년이 되어 거처를 마련한다면 우선 주위에 나무가 많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집안에는 전등을 달지 않을 것이다. 해뜨면 일어나고 해지면 잔다. 필요하다면 촛불이나 밝히고 창을 열 것이다. 집안은 단순한 구조여야만 한다. 이때쯤이면 별도의 용도를 요하는 방들이 필요 없을 것이다. 그냥 하나의 공간 속에 뒹굴면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약간의 공간만 있으면 족하리. 언제든 볼 수 있도록 책이 꽂혀있는 책장과,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 정도. 주방기구래야 냄비와 주발 몇 개만 있으면 될 것이고, 옷이래야 늙은이가 무슨 화상을 볼 것이라고 욕심을 내겠는가? 올이 굵은 옷이 난 마음에 든다. 그런거 몇 벌만 있으면 될 것이다.

또 하나 타의(他意)에 의해 움직여지는 경우는 없어야 하겠다. 내 의지가 타력(他力)에 의해 수행되어진다면 그건 참기 어려울 것이다.
그 때는 단연코 삶을 마감할 용의가 되어 있다.

아마 나의 노후는 낭만적일 것임에 틀림없다. 오늘도 뭉게구름이 저쪽 산 위에서 피어올라 하늘을 가로질러 날아갔다. 인생도 그렇게 흘러간다. 우리가 신으로부터 축복 받은 것이 있다면 그건 바로 죽음을 선사 받은 게 아닐까 싶다. 사라지지 않는 생명을 생각해 보라. 상상이 가는가? 지옥이 따로 없을 것이다. 죽음은 바로 생의 꽃이다. 꽃은 후세를 위하여 씨앗을 남기고 시든다. 우리 역시 그렇게 가야 한다. 우리는 그 꽃을 준비하며 평생을 산다. 이것이 자연의 법도다. 다 아는 얘기이다. 다 아는 얘기이지만 당신이 죽는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당신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그냥 그렇게 살면 된다. 사는 방식에 대해서는 불문(不問)이다. 그런 건 서로 묻지 않는 게 그 인생에 대한 예우이다. 돈을 많이 벌든, 운동을 하든, 접장을 하건, 그런 건 간섭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그러나 삶이란 게 그렇게 만만한 것은 아니어서 우리는 하루에도 수 차례 번민하고 속상해 한다. 억울한 일이 어디 한 두 가지이겠으며, 말못할 사정이 어디 한 두 가지이겠는가? 남의 자식과 비교해 보면 나의 자식은 터무니없이 모자르는 것 같고 그나마 남들처럼 가르치지도 못하는 회한에 밤잠을 설친 게 어디 하루 이틀이더냐. 그래서 우린 아웅다웅 산다. 여기서 부딪치고 저기 가서 하소연한다. 그러나 우린 언제나 그렇게만 사는 것은 아니어서 그래도 웃고 또 웃는다. 요새는 까딱만 실수해도 전 재산을 털어먹기 일쑤다. 재기할 수 있는 기회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세상도 옛날 같지 않고 삭막하기가 삭풍 같다. 주위를 둘러보면 이러한 사람들이 쌔빗다. 항간의 얘기로는 서울역의 노숙자들이 없어진 건 일터로 돌아가서가 아니라 죽어 없어졌다는 것이다. 사실이라면 무서운 얘기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일들이 우리에게 절망으로 다가온다. 나의 노년이 편할 수 있다는 건 엄청난 사치이자 죄악도 될 수가 있는 것이다. 비록 소박하고 단순한 삶을 꿈꾸고 있다고 해도 말이다. 이러한 불균형과 모순에 닿아있는 삶을 사는 것이 우리이다. 언젠가는 꼭 죽는다. 어떻게 죽는가가 사실은 중요하다. 존엄한 죽음을 나는 원한다.

그 존엄한 죽음 속에는 이러한 사회의 모순과 불평등이 내포, 동반되기 때문에 그 괴로움이 있는 것이다. 그러한 불평등속에 나 역시 속해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빠져나갈 방도 또한 무망한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허구한날 허허거리며 시시닥 노닥거리고 웃는다. 아니다. 울기는 또 얼마나 많이 우는가? 사회에 대한 책임과 개인의 행복이라는 만나지지 않는 평행선을 누가 만나게 해 줄는지...

종교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생략......예수님은 그 누구보다도 어두움을 직시하고 오직 사랑으로 그 어둠을 거슬러...어둠에 속한 이들이 파묻어 버리려 했던 사회의 불의 부정, 지배계층의 위선과 거짓을 고발하고, 또한 가난하고 버림받은 사람들, 나병환자들, 불구자와 창녀들, 억눌려 사는 사람들과 사귀며 그들의 고통을 어루만져 낫게 하심으로써 세상의 어둠을 이기셨습니다.....생략." ( 김수환 추기경의 1986년 성탄 메시지 옮김 )

그리고 석가모니는 왕자로 태어났으면서도 병든 자와 버려 진자 핍박받으며 가난한 자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하여 스스로 고행의 길을 택하였다. 그리고 그 깨우침으로 중생들의 혼탁한 길을 비추어 주었다.

나는 신앙인은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선지자들을 나는 존경한다. 나는 그렇게는 살아갈 수 없기에 경외한 마음으로 존숭한 마음을 보낸다. 이러한 성인이 있으므로 해서 그나마 인간의 죄악이 이 정도로 그친 것은 아닌지...

누구나 편안한 노년을 기다릴 것이다. 나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고통스러운 말년보다는 풍요롭고 안온한 삶을 원한다. 그러나  지금 건너는 강이 너무 차갑고 깊게 느껴지는가 하면, 그 강물에 익사할 수도 있거니와  물결에 떠내려갈 수도 있다. 이 강물에 정면으로 맞선다고 해결될 문제도 아니고 피한다고 땡도 아니다.

그래서 내린 마음의 결정은, 나만이라도 이 혼탁한 사회에 더 이상의 오염을 뿌려서는 안되겠다는 것과, 개인적으로는 되도록 단순하고 소박한 삶을 영위하고 싶다는 것이다.

이것이 소망이라면 소망이다.



<첨부>

지금의 나의 생활태도를 바로잡고
혹시 있을지도 모를 老欲에 대비코자
‘노후의 생활지침’을 만들어 머리맡에
붙여놓고 항시 操身하고자 한다.

《노후의 생활지침》

1. 식사는 하루에 한끼만 한다(찬은 두가지를
넘지 않는다).
2. 방에는 전등을 달지 않는다.
3. 형편이 허락한다면 집 주위는 나무로 둘러
싸였으면 한다.
4.오전에는 책을 읽는다.
5. 건강이 허락하는 한 봉사활동 한가지 정도는
지속적으로 실행한다.
6. 외출복을 제외한 평상복은 한 철에
두벌을 넘지 않는다.
7. 젊은 사람들의 생각을 이해하기 위한
구체적이고도 실천 가능한 접근방안을 모색한다.
8. 자연과 친화한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한다.
9. 생각과 행동을 되도록 단순하고
소박하게 갖는다.
10. 평생을 나와 살아준 아내에게 고마운
마음을 잊지 않는다.
3 Comments
정우동 2003.09.11 19:21  
  " 해뜨면 일어나고 해지면 잔다"는 barokaki님의 소망은 자연의 리듬에 따라 살아보겠다는 저의 소망이기도 합니다. 님의 생각하게 하는 글을 읽으면서 태어나는 것은 자신의 마음
정우동 2003.09.11 19:29  
  대로가 아니지만 죽음만큼은 자신의 뜻대로 하겠다는 생각으로 100년을 살고는 곡기를 끊고 스스로 삶을 마감한 스코트 니어링 박사를 떠올려 봅니다
barokaki 2003.09.15 11:17  
  저 역시 '조화로운 삶'이란 책을 읽고 감명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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