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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칵! 아이고메!

바다 8 956
찰칵! 아이고메!

약 15년 전부터 정을 나누고 있는 모임이 있다.
많게는 나이 차이가 21년의 차이가 나기도 하지만 오랜 세월 모임을 갖다보니
나이는 그리 중요한 것이 못되었다.
이번에도 개학을 며칠 앞두고 모이라는 연락이 왔다.
한 선배가 장흥 유치에 별장을 일년에 걸쳐 지어 우리를 그 곳에 초대한 것이다.

광주대학교 운동장에서 아홉 명이 다 모여  출발하려는데  한 후배는 교통사고가 나서
죽을 뻔했기에 시외를 나가기가 두렵다고 하고 다른 친구는 아직 서툴다고 하고 한 선배는
어른이라 제외하다보니 고급승용차는 못 가게 되고 내 소형차가 가게 되었다.

화순방면으로 들어서니 곳곳에 속도제한 표시판에 눈에 들어오고 나는 거기에
맞추어 페달을 밟아나갔다. 도로는 한가하여 특별히 속도를 낼 일도 없었거니와
차 안에서의 정담에 귀 기울이느라 느긋한 마음으로 차를 몰았다.

전날까지 비가 왔는데 비도 그치고 가로수로 심은 백일홍이 때마침 곳곳에
아름답게 피어 우리들을 반기어 주고 저만큼 보이는 산들이 푸르른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지나다 보니 기차를 타고 통근하던 그 시절 기차를 놓치지
않으려고 죽을 힘을 다해 달려가던 모습과 지금은 거의  아이들 부모가 되어
학부모가 되어 있을 제자들도 아련한 기억 속에서 파노라마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약 1시간 20분 정도 달리다 보니 남도의 끝자락에 제법 아름다운 장흥의
천관산과 계곡에 흐르는 물이 작은 탄성을 지르게 했다. 큰 도로에서
비포장도로를 약 2km를 들어가 목적지에 도착하니 과연 산골짜기에 자리 잡은
반달 같은 별장이 보이는 것이었다.

21평에 방과 욕실이 두 개씩이고. 주방 겸 거실. 모두 황토벽돌을 사용하고
목재를 사용하여 살갗에 스치는 그 공기의 상큼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큰 방에 달아놓은 달님처럼 둥근 창엔 밤이면 달님과 별님이 그 창을 넘어와
밤새도록 속삭일 것만 같고 현관에 깔아놓은 침목으로 된 발판은 그리운  내
님을 실은 기차가 곧 도착할 것 만 같고.
둥근 소나무를 반 갈라 만들어 놓은 장식대는 아직도 봄의 송화가루 냄새를
풍기는 것 만 같고.

아침이면 앞산 위로 희망덩이로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볼 수 있고 새소리, 물소리,
바람소리. 주변엔 얼키설키 얽힌 칡넝쿨, 키 작은 도토리나무, 갖가지 나무들
두릅농장으로 가꾸어 놓은 산 .
동그란 장독대, 화단의 취나물. 채송화. 조그만 텃밭의 열무, 고추, 가지,
언덕 위에 피어난 상사화, 이름모를 꽃들 .
그리고 나비 떼...

더군다나 집주인 언니는 부지런하고 얌전하여 넉넉한 인심을 가득 싸와 지칠 줄
모르고 내놓는 데는 가슴 뭉클한 형제애를 느끼게 할 정도였다.

그 와중에도 나에게 집요하게 파고드는 생각 하나
‘이런 곳에서 사랑하는 님과 한밤을 지샐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 동안 밀려두었던 이야기를 다한 것 같지만 그래도 모자라 가을에 또 한번 오기를
약속하며 회비를 내는데 내가 차를 가지고 왔다고 기름값으로 3만원이나 주지 않는가?
거절을 했건만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아 다음 모임 때는 저녁 값을 내가 내겠다고 미리
언약하고 주머니 속에 집어 넣어두었다.

돌아오는 길은 좀 더 익숙해져 바깥구경도 제법하며 그래도 남은 이야기 줄줄이 엮으며
광주대학교에 거의 도착할 무렵  신호등이 녹색불로 깜박이고 있었다.
빨간 불로 바뀌기 전에 통과하려고 페달을 힘껏 밟는 순간,
빨간불이 켜지고 갑자기 형광불빛이 번개처럼 스치고 지나는 것이 아닌가?

“찰칵! 아이고메!”
“오메!  뭔 일이다냐? 다 와 가지고. 미안해서 어째야 쓸까이...”
그 곳은 시속60km인 지역을 80km로 밟아버렸던 것이다.

그 순간 주머니 속에 기름값으로 받은 3만원... 
거기에 만원을 보태며 나는 은행창구에서 범칙금을 내려고 번호표를 뽑고 있었다.

8 Comments
ㄴr무. 2003.09.01 00:58  
  간만에 종로에서 가족끼리 아주매운 낙지를 먹었지요. 오래전 부터 있던 곳이라구요. 근데 먹기전에 우유라도 먹어둬야 겠어요. 속이 다 따가웁네요. 두번째 먹는것 인데 ㅎ 그것도 거의 빈속에.. 덕분에 늦은시간 여기와서 바다님의 재미난 글 읽고 갑니다.
오숙자.#.b. 2003.09.01 07:21  
  찰각!

그사진 찍혀본사람은 알지요

호사다마 라고

즐거운 모임이나,
오페라 연습때,..
작곡연주 리허설때...
이처럼 신경을 집중할때

정기적으로 날라오는

경찰아저씨의 쌍안경!

조심한다 해도
정말
이 부주의한 버릇...

누가좀 말려줘요~~~
뽀빠이 !!!
유랑인 2003.09.01 10:43  
  좋은 곳에 다녀오셨군요.....  너무 좋은 곳이라 무료로는 안되었던 모양이네요  ㅎㅎㅎ  누군가가 시기해서..
아까 2003.09.01 19:54  
  바다 선생님.
예쁜 아까를 데리고 가셨더라면 길가에서 돈다발 주우셨을 걸.
다음 부턴 저 좀 데리고 다니셔요.


신재미 2003.09.01 23:39  
  바다님 지금 귓가에 찰칵 소리가 들려오는 듯합니다./ 좋은 경험이지요.


동심초 2003.09.02 12:38  
 
 역시 바다언니 옆에 졸졸 따라 다니면 뭐가 떨어져도 떨어진다니깐요
 참  좋은 사람들 속에 함께 어울려 사는 바다언니가 늘 부럽답니다
 언니만 졸~~~~~졸  따라 다니면 나도 그런 사람 될 수 있을까요?

 카메라에 찍힐때 찍히더라도 오늘은 언니와 쫘~~~~~~악 펼쳐진 도로위로
 마냥 달리고 싶어라~~~~~
가객 2003.09.02 16:51  
  장흥 유치라... 
20대때 가지산 보림사 가는 길에 한번 들러 본 기억이 나는 곳입니다.
한자지명을 有治라기 보다는 幽峙라고 하는 것이 더 좋겠다고
농을 했을 정도로 그윽한 아름다움을 느꼈던 고장으로 기억합니다.
세상사에 공짜는 없는 법인가 봐요~~.
훗날 멋진 추억의 댓가를 카메라가 받아 낸 것같습니다.
음악친구 2003.09.03 22:32  
  비싼 사진 찍으셨네요~ㅎㅎ~
이왕이면 "김치~~~"하고 찍을걸 그랬나요?

오랜만에 입가에 미소가 번집니다~
예쁜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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