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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면과 동거하는 내 자아에게

김형준 12 783
잠 대신에 네가 왔구나!
이전엔 너의 존재를 알 수 없었다.

그저 나 혼자려니 하며 삶의 강을 부지런히 헤엄쳐 왔다.
열심히, 정직하게, 최선을 다해 사는 것을 추구하며 힘겹게 달려왔다..

이젠 그러한 것을 다 포기하였다.
뇌에서도, 얼굴에서도, 입 속에서도,
턱에서도, 어깨에서도, 두 팔에서도 힘이 쭈-욱 빠져나가고 있다.

때론 현기증이 난다.
너무 많은 힘을 빼서 그런가 보다.
아마 헌혈을 한 번에 너무 많이 하면 오는 현상과 유사하리라.
다시 힘을 온 몸에 주라는 유혹을 누군가 하고 있다.

하지만 이젠 그저 모든 것을 편안하게 보고 싶다.
힘이 빠진 상태가 좋다.
거짓된 힘은 아무리 주어보았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나에게도 불편하고, 다른 이들에게도 힘들고.

모든 힘을 빼야만 나의 보다 진실된 자아인 네가 와서 살 수 있으리라.
빈 공간이 넉넉해야 너도 나와 더불어 편안하게 호흡할 수 있을 것이다.

내게 아픔을 주었던 그 모든 것들에 안식을 주리라.
아집과 고집과 방어 기제와 정죄의 벽을 다 허물고 있다.

과장없이 여러 해 동안 거의 단 하루도 평범한 잠이 나를 찾지 않는다.
뒤척이다 깨어서 이것 저것을 하다 다시 잠을 청해 본다.
아무리 노력해도 오지 않는 잠이기에 이젠 그저 잠시만 와도 감사하다.

잠을 충분히, 정상적으로 자는 사람은
다섯 시간, 아니 세, 네 시간만 잠이 연속으로 와줘도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잘 모를 것이다.

결국 불면은 'disguised blessing'인가.

아픔은 유사한 아픔을 겪은 자만이 깊이 이해할 수 있다.

그렇게 불면과 불편한 동거를 하는 사이에 네가 왔구나.
나의 사랑하는 자아야!

나는 내 자신이 어떠한 존재인지를 잘 몰랐다.
아니 알 필요가 없었을 지도 모른다.
어느 정해진 목표를 향해서 열심히 걷다 보니 그 속에 깊이 빠져버렸다.
그저 그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만 내 내적 자원 속에서 사용했다.

이젠 더 이상 그럴 수가 없다.
사실 지금 나의 삶의 목표는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허나 그것은 단순하면서도 어떻게 보면 매우 다면적인 것이다.

쉽게 이룰 수도 없는 그러한 꿈을 나의 자아가 가져다 주었다.
어렵더라도 괴롭더라도 함께 이루자고 자아가 용기를 불어넣고 있다.

나의 몸에서, 나의 마음에서, 나의 영혼에서
나 자신을 비우는 작업을 하고 있다.
결국 내게 그러한 일을 가능케 해주는 나의 자아도 비워야 하리라.

과연 종국엔 무엇이 남을까.
나도 없고, 나의 자아도 없고.
오감도 넘어서고, 육감, 칠감, 팔감도 넘어서야 하겠지.

그다지 쉬운 일이 아니다.
인간의 힘 가지고 되는 일은 물론 아니다.

모든 것을 다 비워도
나는 나일 뿐이다.
인간이 가진 한계에서 완전히 벗어나 신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내 속에 있는 수 많은 숨겨진 보물들이 하나씩 드러나고 있다.
내 삶, 몸뚱이, 정신, 영혼에 헛된 힘이 가득 차있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자, 다시 힘을 빼자.
나의 자아야, 내게 호흡을 불어넣어 주렴.

한 꺼풀, 두 꺼풀 차례대로 다 벗어던지고
신께서 넣어주신 바로 그 적나라하고 순결한 나의 본 모습을 바라보자.

자아야!
나 혼자서는 아직 너무 나약해서 네가 필요하단다.

부끄러울 것은 전혀 없다.
아무리 못나고, 아무리 초라하고, 아무리 연약해도
바로 그것이 나의 원초적인 순수하고 순결한 모습이기 때문이다.

이미 부끄러워할 단계는 지나가지 않았는가.

초인이 되는 것은 모든 것을 초월해야 가능하다.
어차피 초인은 인간의 경지를 넘어버린 존재를 의미한다.
고로 초인은 이미 인간이란 종류를 떠나 다른 종류화 한 것이다.

대부분의 인생은 그러한 초인이 될 필요도 없으리라.
초인의 길은 외로운 길이다.
인간적인 관점에서 볼 때는 분명 그렇다고 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우주의 조화를 유지해 주는 힘이 그와 늘 함께 할 것이다.

그러므로 초인은 더 이상 인간적인 외로움 속에서 고생하지 않는다.

내가 없어져야 우주와 하나가 될 수 있다.
나의 성을, 나의 벽을, 나의 마음을 다 철저히 부수어야 한다.
더 이상 허물 것조차 없는 그러한 상태가 되어야 한다.

나는 여전히 존재하나, 더 이상 나는 내가 아니다.

우주와 하나가 되겠다고 하면서 어찌 나만을 고집할 수 있으랴.
나를 버리자. 모든 짐을 내려 놓자.
보다 더 큰 나의, 우리의 일부가 되기 위해서.

잠이 오지 않는 대신에
자아가 나의 친구가 되었다.
자아가 나를 초월의 세계로 인도하고 있다.
결국 자신도 내게서 떠나게 될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말이다.

나는 인간이다.
나는 자연이다.
나는 흙이다.
나는 강이다.
나는 지구이다.
나는 은하계이다.
나는 우주이다.

나는 가벼운 공기이다.

공기, 공기, 공기
생명의 기운, 모든 것의 원천자인 에너지

흙, 불, 물, 공기.....

드디어 나는 내가 진정 우주의 일부임을 깨닫기 시작했다.
그러한 기억도 다 지우게 되리라.

의식을 떠나 자연스레 나를 탄생시킨 분에게 돌아가기 위해서.

그분과 영원히 평화롭고 자연스러운 하나로 섞여져야 하리라.

나도 없고, 너도 없고, 우리도 없는
모두가 다 하나인 것을 깨닫고 
합일의 순간을 맞는 것이
도의 마지막 단계이다.
12 Comments
달마 2006.07.16 02:50  
 
尊 시 감상  잘 하고 갑니다 ~
고맙습니다...


평생 늘 맞아온 비  눈 일거니  임 아시리

얼마나  메 쓸어서 내려야  낮아질 산

휘 도는  기운 돌고돌아  꽃씨 흘려보내네

정우동 2006.07.16 17:07  
  상세한 귀절들은 잊었지만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는 감이 듭니다.

인간정신의 세가지 변화 곧
모든것을 포기한채 노예처럼 일하며 복종만 아는 낙타가
스스로 자유를 창조하고 의무에도 부정하는 자긍의 사자가 되고
순진무구하여 신성한 긍정만 보일뿐인 창조의 어린이가 되는 것은
정반합을 영구히 반복하는 변증법의 시행착오를 초극한
단 한번에 이루는 완결 완성의 대해탈로 생각 됩니다.
.
김형준 2006.07.17 11:44  
  산이 낮아지려 하지 않으면
내가 더 낮은 곳으로 향하고

바다가 높아지려 하지 않으면
내가 더 높은 곳에 간다.

한 알의 밀알이 썩여야 많은 이들이 혜택을 입는다.
김형준 2006.07.17 11:45  
  완전히 벗어나는 것은 또 다른 하나의 소속으로 이어진다.
나 홀로 라는 것은 그다지 좋은 것은 아니리라.

허나 홀로가 되지 않고서는 자유와 깨달음은 오지 않는다.
갈대 2006.07.17 14:12  
  충분한 깨달음과 자신을 바라보는 눈이 겸손하시니
평안을 벗삼아 여유로운 삶을 가져보심이 어떠하실지요.
욕심을비우고 순리의삶을 따라가다보면 잠도 잘 오겠지요
늘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사랑노래 2006.07.17 17:09  
  잠 안 오는 이에게 밤은 길고 
먼 길 떠나는 이에게 길은 멀어라.

‘나를 보는 나’ 누구이던가?
‘자아를 인식하는 나’ 누구이던가?
‘이 생각, 저 생각, 그 생각의 주인’ 누구이던가?

백번을 입에 외운다 한들
증득하지 않고는
답은 답, 나는 나일뿐

나가 누구이기에 우주와 같을까?
나의 본성이 무엇이기에 우주의 본성과 같을까?

깨달음을 이루는 것은
본성을 보는 것일 뿐이리!
김형준 2006.07.17 22:18  
  '평안'이 그대에게 오시길.
하늘이 주는 평안은 세상이 말하는 평안과는 다르다.
여유롭고 욕심없는 삶, 그것은 모든 인생이 추구하는 것이다.

준비가 되면 나의 귀에 부드러이 소곤거려 주시길 바란다.
김형준 2006.07.17 22:21  
  본성을 직시하는 것은 모든 이에게 가능한 것은 아니다.
마음이 진실로 완전히 빈 상태가 되는 경지에 도달할 때
비로서 본성의 본질을 깨닫게 된다.

의식의 늪을 헤매이는 상태에서는
모든 것의 본성이 일치한다는 사실을 어찌 깨달을 수 있으리.
김형준 2006.07.19 11:47  
  자기 성찰이 늘 가능한 것이 아니다.
자신의 영혼 깊숙한 곳에 들어가
상처가 난 부위를 어루만지고 달래주어야 할 때가 있다.
아무리 오랫동안 몸과 마음을 쉬어도
무언가 늘 힘들고 무언가 늘 지치게 할 때에는
우리의 영혼이 안식과 평안을 구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영혼도 때로는 청소가 필요하다.
맑아지고 깨끗해져야 다시 건강할 수 있음이다.
김형준 2006.07.21 07:54  
  영혼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은 그다지 쉽지 않다.
설사 그 유무를 논리적으로 입증해 보인다 해도
믿고 안 믿고는 각 사람의 자유이다.

초인간적인 미스테리한 경험을 살면서 하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그러한 직접 경험한 사람들은 논리적인 근거를 통해서가 아니라
체험을 통해서 영혼이 존재함을 믿게 된다.

해탈과 설법 등의 용어를 쓰는 종교와
전도, 설교 등의 용러를 쓰는 종교는 서로 다른 듯 싶다.

영혼 내지는 초자연적인 현상 내지는 존재에 대한
관심을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나마 가지고 있다.
김형준 2006.07.21 13:50  
  여유로운 삶을 사는 길이 무엇일까요?
욕심은 어떻게 하면 버릴 수가 있을까요?
순리대로 사는 삶은 참 좋을 겁니다.

이러한 의문들에 귀한 답을 주실 분은
제게 살짝 귀속말로 해주세요.

좋은 의견이면 군말없이 따르렵니다.
김형준 2006.07.24 11:22  
  불면을 겪어보았거나 현재 경험하고 있는 분들은
그것이 얼마나 큰 고문인지를 잘 앍고 계실 것이다.

가장 힘든 것은 에너지가 균형감있게 흐르지를 못해
늘 피곤하고 졸린 상태에서 빛이 지배하는 낮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이유에서 시작되었는지 모르지만
불면을 경험하는 모든 분들에게
보다 깊고, 보다 평화로운 잠이 얼른 찾아오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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