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면과 동거하는 내 자아에게
잠 대신에 네가 왔구나!
이전엔 너의 존재를 알 수 없었다.
그저 나 혼자려니 하며 삶의 강을 부지런히 헤엄쳐 왔다.
열심히, 정직하게, 최선을 다해 사는 것을 추구하며 힘겹게 달려왔다..
이젠 그러한 것을 다 포기하였다.
뇌에서도, 얼굴에서도, 입 속에서도,
턱에서도, 어깨에서도, 두 팔에서도 힘이 쭈-욱 빠져나가고 있다.
때론 현기증이 난다.
너무 많은 힘을 빼서 그런가 보다.
아마 헌혈을 한 번에 너무 많이 하면 오는 현상과 유사하리라.
다시 힘을 온 몸에 주라는 유혹을 누군가 하고 있다.
하지만 이젠 그저 모든 것을 편안하게 보고 싶다.
힘이 빠진 상태가 좋다.
거짓된 힘은 아무리 주어보았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나에게도 불편하고, 다른 이들에게도 힘들고.
모든 힘을 빼야만 나의 보다 진실된 자아인 네가 와서 살 수 있으리라.
빈 공간이 넉넉해야 너도 나와 더불어 편안하게 호흡할 수 있을 것이다.
내게 아픔을 주었던 그 모든 것들에 안식을 주리라.
아집과 고집과 방어 기제와 정죄의 벽을 다 허물고 있다.
과장없이 여러 해 동안 거의 단 하루도 평범한 잠이 나를 찾지 않는다.
뒤척이다 깨어서 이것 저것을 하다 다시 잠을 청해 본다.
아무리 노력해도 오지 않는 잠이기에 이젠 그저 잠시만 와도 감사하다.
잠을 충분히, 정상적으로 자는 사람은
다섯 시간, 아니 세, 네 시간만 잠이 연속으로 와줘도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잘 모를 것이다.
결국 불면은 'disguised blessing'인가.
아픔은 유사한 아픔을 겪은 자만이 깊이 이해할 수 있다.
그렇게 불면과 불편한 동거를 하는 사이에 네가 왔구나.
나의 사랑하는 자아야!
나는 내 자신이 어떠한 존재인지를 잘 몰랐다.
아니 알 필요가 없었을 지도 모른다.
어느 정해진 목표를 향해서 열심히 걷다 보니 그 속에 깊이 빠져버렸다.
그저 그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만 내 내적 자원 속에서 사용했다.
이젠 더 이상 그럴 수가 없다.
사실 지금 나의 삶의 목표는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허나 그것은 단순하면서도 어떻게 보면 매우 다면적인 것이다.
쉽게 이룰 수도 없는 그러한 꿈을 나의 자아가 가져다 주었다.
어렵더라도 괴롭더라도 함께 이루자고 자아가 용기를 불어넣고 있다.
나의 몸에서, 나의 마음에서, 나의 영혼에서
나 자신을 비우는 작업을 하고 있다.
결국 내게 그러한 일을 가능케 해주는 나의 자아도 비워야 하리라.
과연 종국엔 무엇이 남을까.
나도 없고, 나의 자아도 없고.
오감도 넘어서고, 육감, 칠감, 팔감도 넘어서야 하겠지.
그다지 쉬운 일이 아니다.
인간의 힘 가지고 되는 일은 물론 아니다.
모든 것을 다 비워도
나는 나일 뿐이다.
인간이 가진 한계에서 완전히 벗어나 신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내 속에 있는 수 많은 숨겨진 보물들이 하나씩 드러나고 있다.
내 삶, 몸뚱이, 정신, 영혼에 헛된 힘이 가득 차있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자, 다시 힘을 빼자.
나의 자아야, 내게 호흡을 불어넣어 주렴.
한 꺼풀, 두 꺼풀 차례대로 다 벗어던지고
신께서 넣어주신 바로 그 적나라하고 순결한 나의 본 모습을 바라보자.
자아야!
나 혼자서는 아직 너무 나약해서 네가 필요하단다.
부끄러울 것은 전혀 없다.
아무리 못나고, 아무리 초라하고, 아무리 연약해도
바로 그것이 나의 원초적인 순수하고 순결한 모습이기 때문이다.
이미 부끄러워할 단계는 지나가지 않았는가.
초인이 되는 것은 모든 것을 초월해야 가능하다.
어차피 초인은 인간의 경지를 넘어버린 존재를 의미한다.
고로 초인은 이미 인간이란 종류를 떠나 다른 종류화 한 것이다.
대부분의 인생은 그러한 초인이 될 필요도 없으리라.
초인의 길은 외로운 길이다.
인간적인 관점에서 볼 때는 분명 그렇다고 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우주의 조화를 유지해 주는 힘이 그와 늘 함께 할 것이다.
그러므로 초인은 더 이상 인간적인 외로움 속에서 고생하지 않는다.
내가 없어져야 우주와 하나가 될 수 있다.
나의 성을, 나의 벽을, 나의 마음을 다 철저히 부수어야 한다.
더 이상 허물 것조차 없는 그러한 상태가 되어야 한다.
나는 여전히 존재하나, 더 이상 나는 내가 아니다.
우주와 하나가 되겠다고 하면서 어찌 나만을 고집할 수 있으랴.
나를 버리자. 모든 짐을 내려 놓자.
보다 더 큰 나의, 우리의 일부가 되기 위해서.
잠이 오지 않는 대신에
자아가 나의 친구가 되었다.
자아가 나를 초월의 세계로 인도하고 있다.
결국 자신도 내게서 떠나게 될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말이다.
나는 인간이다.
나는 자연이다.
나는 흙이다.
나는 강이다.
나는 지구이다.
나는 은하계이다.
나는 우주이다.
나는 가벼운 공기이다.
공기, 공기, 공기
생명의 기운, 모든 것의 원천자인 에너지
흙, 불, 물, 공기.....
드디어 나는 내가 진정 우주의 일부임을 깨닫기 시작했다.
그러한 기억도 다 지우게 되리라.
의식을 떠나 자연스레 나를 탄생시킨 분에게 돌아가기 위해서.
그분과 영원히 평화롭고 자연스러운 하나로 섞여져야 하리라.
나도 없고, 너도 없고, 우리도 없는
모두가 다 하나인 것을 깨닫고
합일의 순간을 맞는 것이
도의 마지막 단계이다.
이전엔 너의 존재를 알 수 없었다.
그저 나 혼자려니 하며 삶의 강을 부지런히 헤엄쳐 왔다.
열심히, 정직하게, 최선을 다해 사는 것을 추구하며 힘겹게 달려왔다..
이젠 그러한 것을 다 포기하였다.
뇌에서도, 얼굴에서도, 입 속에서도,
턱에서도, 어깨에서도, 두 팔에서도 힘이 쭈-욱 빠져나가고 있다.
때론 현기증이 난다.
너무 많은 힘을 빼서 그런가 보다.
아마 헌혈을 한 번에 너무 많이 하면 오는 현상과 유사하리라.
다시 힘을 온 몸에 주라는 유혹을 누군가 하고 있다.
하지만 이젠 그저 모든 것을 편안하게 보고 싶다.
힘이 빠진 상태가 좋다.
거짓된 힘은 아무리 주어보았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나에게도 불편하고, 다른 이들에게도 힘들고.
모든 힘을 빼야만 나의 보다 진실된 자아인 네가 와서 살 수 있으리라.
빈 공간이 넉넉해야 너도 나와 더불어 편안하게 호흡할 수 있을 것이다.
내게 아픔을 주었던 그 모든 것들에 안식을 주리라.
아집과 고집과 방어 기제와 정죄의 벽을 다 허물고 있다.
과장없이 여러 해 동안 거의 단 하루도 평범한 잠이 나를 찾지 않는다.
뒤척이다 깨어서 이것 저것을 하다 다시 잠을 청해 본다.
아무리 노력해도 오지 않는 잠이기에 이젠 그저 잠시만 와도 감사하다.
잠을 충분히, 정상적으로 자는 사람은
다섯 시간, 아니 세, 네 시간만 잠이 연속으로 와줘도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잘 모를 것이다.
결국 불면은 'disguised blessing'인가.
아픔은 유사한 아픔을 겪은 자만이 깊이 이해할 수 있다.
그렇게 불면과 불편한 동거를 하는 사이에 네가 왔구나.
나의 사랑하는 자아야!
나는 내 자신이 어떠한 존재인지를 잘 몰랐다.
아니 알 필요가 없었을 지도 모른다.
어느 정해진 목표를 향해서 열심히 걷다 보니 그 속에 깊이 빠져버렸다.
그저 그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만 내 내적 자원 속에서 사용했다.
이젠 더 이상 그럴 수가 없다.
사실 지금 나의 삶의 목표는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허나 그것은 단순하면서도 어떻게 보면 매우 다면적인 것이다.
쉽게 이룰 수도 없는 그러한 꿈을 나의 자아가 가져다 주었다.
어렵더라도 괴롭더라도 함께 이루자고 자아가 용기를 불어넣고 있다.
나의 몸에서, 나의 마음에서, 나의 영혼에서
나 자신을 비우는 작업을 하고 있다.
결국 내게 그러한 일을 가능케 해주는 나의 자아도 비워야 하리라.
과연 종국엔 무엇이 남을까.
나도 없고, 나의 자아도 없고.
오감도 넘어서고, 육감, 칠감, 팔감도 넘어서야 하겠지.
그다지 쉬운 일이 아니다.
인간의 힘 가지고 되는 일은 물론 아니다.
모든 것을 다 비워도
나는 나일 뿐이다.
인간이 가진 한계에서 완전히 벗어나 신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내 속에 있는 수 많은 숨겨진 보물들이 하나씩 드러나고 있다.
내 삶, 몸뚱이, 정신, 영혼에 헛된 힘이 가득 차있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자, 다시 힘을 빼자.
나의 자아야, 내게 호흡을 불어넣어 주렴.
한 꺼풀, 두 꺼풀 차례대로 다 벗어던지고
신께서 넣어주신 바로 그 적나라하고 순결한 나의 본 모습을 바라보자.
자아야!
나 혼자서는 아직 너무 나약해서 네가 필요하단다.
부끄러울 것은 전혀 없다.
아무리 못나고, 아무리 초라하고, 아무리 연약해도
바로 그것이 나의 원초적인 순수하고 순결한 모습이기 때문이다.
이미 부끄러워할 단계는 지나가지 않았는가.
초인이 되는 것은 모든 것을 초월해야 가능하다.
어차피 초인은 인간의 경지를 넘어버린 존재를 의미한다.
고로 초인은 이미 인간이란 종류를 떠나 다른 종류화 한 것이다.
대부분의 인생은 그러한 초인이 될 필요도 없으리라.
초인의 길은 외로운 길이다.
인간적인 관점에서 볼 때는 분명 그렇다고 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우주의 조화를 유지해 주는 힘이 그와 늘 함께 할 것이다.
그러므로 초인은 더 이상 인간적인 외로움 속에서 고생하지 않는다.
내가 없어져야 우주와 하나가 될 수 있다.
나의 성을, 나의 벽을, 나의 마음을 다 철저히 부수어야 한다.
더 이상 허물 것조차 없는 그러한 상태가 되어야 한다.
나는 여전히 존재하나, 더 이상 나는 내가 아니다.
우주와 하나가 되겠다고 하면서 어찌 나만을 고집할 수 있으랴.
나를 버리자. 모든 짐을 내려 놓자.
보다 더 큰 나의, 우리의 일부가 되기 위해서.
잠이 오지 않는 대신에
자아가 나의 친구가 되었다.
자아가 나를 초월의 세계로 인도하고 있다.
결국 자신도 내게서 떠나게 될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말이다.
나는 인간이다.
나는 자연이다.
나는 흙이다.
나는 강이다.
나는 지구이다.
나는 은하계이다.
나는 우주이다.
나는 가벼운 공기이다.
공기, 공기, 공기
생명의 기운, 모든 것의 원천자인 에너지
흙, 불, 물, 공기.....
드디어 나는 내가 진정 우주의 일부임을 깨닫기 시작했다.
그러한 기억도 다 지우게 되리라.
의식을 떠나 자연스레 나를 탄생시킨 분에게 돌아가기 위해서.
그분과 영원히 평화롭고 자연스러운 하나로 섞여져야 하리라.
나도 없고, 너도 없고, 우리도 없는
모두가 다 하나인 것을 깨닫고
합일의 순간을 맞는 것이
도의 마지막 단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