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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국을 하면서...

싸나이 8 1005
트랩을 오르는 순간 아스라히 떠오르는 유학시절
달랑 보따리 하나들고 시작한 몇 년여
어쩌면 인생에서 지우고 싶었던 순간이기도한
고통스러웠던 나날들이 미웁게도 아련한 추억이 되었습니다.
시간을 내서 찾아간 나의 추억들은
지진에 의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보기도 생소한 건물들이 뽐내듯 올라서 있었습니다.

여독을 풀 겨를도 없이 짜여진 스케쥴에 기대서
이참 저참 돌아다니다 문득 생각난 마지막 아르바이트 장소
아! 거기에 흰머리마저 듬성거린 공장 주인부부들
공구,벽에 걸린 그림,희미한 백열전구,골목,
어느것 하나 빠짐없이 빼꼼히 나를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이어지는 술잔 잔 마다 과거가 묻어나오고
눈물나도록 그리운 과거들을 모자이크하듯
밤새 짜맞췄습니다.그리고 서로가 대견해서 취했습니다.

그리고 동호회를 생각하며 우리가 누구의 공구가 되고
퇴색된 그림이 되고 백열전구가 되고.....
기다려주는 과거들이 되어서 모두가 아닌
모자이크의 조각이 되었으면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살다 지친 우리의 동무들이
내세울 것 없이 초라한 얼굴로 왔을 때
모두들 편하게 쉴수 있는 긴 의자가 되었으면 했습니다.

그리움은 왜 우리를 맘 저미게 할까요?
귀국하는 길목에서 나는 잘 정돈됀 엘리트보다
봉천7동처럼 살기로 했습니다.
완벽한 것 보다는 노이즈가 있는채로 살기로 했습니다.
닝게루를 꽂아야 겠습니다.
8 Comments
신재미 2003.08.27 07:49  
  모두가 편히 쉴수 있는 긴 의자 좋지요. 마음만이라도 / 링겔을 꽂으시더라도 정량을 넘기지 않은 지혜를 갖추었다면 인생은 늘 즐겁답니다.
오숙자 2003.08.27 07:51  
  즐거웠거나 고통스러웠던
지난 일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또 하나의 그리움으로 남는가 봅니다
그래서  추억은 아름답지요

어수선하고 흩으러져 있어도
내 집이 편하듯
소박한 소음속에
우리의 본연의 정겨움이 있지요.
그래야
링게루 꽂을 여유도 생기고...

잘 다녀오셔서
그 또한 고맙고요....
바다 2003.08.27 08:19  
  뜨거운 포옹

저 세월 건너 저편
인생의 설계도를
보따리 하나에 싸들고
산첩첩 물첩첩 건너
청운의 꿈을 폈던 곳

고통스러웠던 날들
샘물처럼 뿜어내던
땀방울이 훈장 되어
새로 솟은 건물보다
더 자랑스러워

술잔 위에 아련히 떠오르는
마지막 아르바이트 장소
내 인생의 밑거름이 되어
과거와 현재를 모자이크하며
정상에 오른 날 뜨겁게 포옹하네

잘 다녀오셨군요

참 좋은 말씀
<잘 정돈된 엘리트보다 봉천 7동처럼 살기로 했다>
가슴을 뭉클하게 합니다.
반갑습니다.
정우동 2003.08.27 08:56  
  되기 반갑습니다 !
이제나 저제나 기다렸더니 잘 다녀 오셨군요.
어서 빨리 님의 그 긴 의자에 앉아 닝게루 꽂고 싶습니다.
음악친구 2003.08.27 23:14  
  어머! 언제 오신거예요?
잘 다녀 오신거죠?
제 선물 사오셨어요?
히히~~~

포도당엔 포도알갱이가 없다면서요?
전 닝게루는 못 꽂아도 꽂는거 구경은 할수 있는디~
^.^
유랑인 2003.08.28 15:41  
  봉천7동... 제 어릴때 머물던 곳.  장마때마다 산사태로 여럿의 가슴을 찢던 곳..
무질서하지만 따뜻했던 동네..작은 허한 가슴들 서로 웅숭구리고 다독이던 동네.. 산 꼭대기 순복음 교회에서의 중고등부 성가대 시절... 교회 가던 풀섶길에 어느 가을 날.. 누구인가의  풀잎피리의 동심초연주 소리 ..... 사람냄새 물씬하던 동네... 그때가 너무 깨끗했었네요... 제가...        그렇게 살고 싶네요
평화 2003.08.28 21:22  
  제 생애 아름다운 동행중에 한분이신 싸나이님!
건강하게 잘 다녀오셔서 참 반갑습니다.

과거는 실수투성이던 미움이 가득했었던 고통스러웠던 모두가
좌우지간에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이유만으로도 충분히 그리운가봅니다.
제 마음에도 아름다운 동행들을 위한 긴 벤취를 제가 아름다운 도구가되어
살다가 드문드문 짬내어 튼튼한걸루다 하나 장만해두렵니다.
누구던지 살다가 쓸쓸해질때 언제라도와서 편하게 쉴수 있도록 말이지요...

오늘밤은 저도 흘러간 지난 시절이 가슴 저미도록 그리워옵니다.
그리운 동무들과 을숙도 갈대숲속 허름한 술집에서 모닥불 피워놓고
밤 깊도록 피아노 반주에 맞춰 아름다운 노래들을 불렀었던 정녕
돌이킬 수 없는 그 때가...
아까 2003.08.28 22:34  
  싸나이님.
정말 부럽네요.
저는 해외 여행은 제주도밖에 없네요.
남편은 여기 저길 돌아다녀도 그때마다 저는 메인 몸이라  꼼짝도 할 수가 없었지요.
남편이 미국으로 여행을 간다고 가방을 쌀 땐 억울해서 심통도 부렸지요.
남들은 부부동행인데. 나만 못 가니 약 올라서.
같이 못 데리고 가는 남편이 마음 아파하는 걸 알면서도 괜히 심통을 부렸지요.
어느날 사회 선생님이 좋아라하며 난리였습니다.
쵸코파이에서 4인가족  호주 7박 8일 여행의 행운을 안았습니다.
마침 방학 1주일 전이라 별로 부담도 없고.  수업도 당겨하고  생활기록부 쓰고 철저히 준비를 했지요.

그런데 갑자기 갈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공무원은 학기 중엔 외국 여행을 할 수가 없다고 하네요.
공짜인데도.

억울하게도 그 행운은 다른 사람에게로 돌아갔습니다.

그 소리를 듣고 국어 선생님이 남편에게 쵸코 파이를 사오라고 했는데
몽셀통통을 사 가지고 와서 영문도 모르고  아내에게 혼이 났다는 거 아닙니까?

싸나이님의 글을 보니 저도 한동안 잊고 지냈던 정말 행복했던 시절이 떠 오릅니다.
19년전 첫 발령을 받았던 경북 영덕의 오지 마을.
참 행복했습니다.
4년동안 근무하고 떠나온 이후로도 연락을 합니다.
그런데 한동안 잊었었군요.

저 인기 많았어요.
퇴근을 하며 집으로 가는 길에 마당에는 모내기후, 가을 걷이 후에 쌓인 설겆이가 산더미같이 쌓였거든요.

집에 가서 옷 갈아입고 설겆이 하러 갑니다.
농사철이 되면 거의 매일인 셈이죠.
그랬더니 시골 아지매. 아제들은 저를 너무 좋아하셨죠.

그때가 참 행복했습니다.

저 원래는 수박을 먹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수박을 제일 좋아합니다.
수박 농사를 짓고.
트럭위에 던질 때 너무 잘 익은 수박은 순간 금이 가거든요.
그러면 퇴근하는 저에게 안겨 주셔요.
처음엔 싫었는데.
버릴 수가 없어서  저녁밥은 짓지 않고 수박으로 끼니를 해결했지요.
자다가 목 마르면 또 수박 먹고.
그러다가 수박에 맛을 들였습니다.

싸나이님 덕분에 행복했던 기억을 떠올리고 행복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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