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에서 성경을 읽고 있는 예쁜 미친 아가씨
인숙은 세상을 초월하고 싶어하는 매우 대담한 아가씨이다.
그녀도 이전에는 세상 사람들의 의견에 늘 신경을 쓰고,
부끄럼을 많이 탔었다. 무언가 작은 일을 하려고 할 때에도
가족의 눈치를 보았고, 친구들이 뭐라고 할까봐 걱정했고,
낯선 사람들의 시선도 늘 의식을 하곤 했다.
그러던 그녀가 완전히 변했다.
교회를 나가긴 했지만 정말 건성으로 다녔다. 한 마디로 말해
Sunday Christian, 즉 일요일에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긴
했는데 월요일에서 토요일까지는 누가 봐도 기독교인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세속적인 삶을 살았었다. 믿음이 깊은
기독교인이라면 늘 기도를 하고, 성경을 읽고, 말과 행동이
기독교인으로서 부끄럽지 않는 실천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
허나 인숙의 삶은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책을 읽는 것을
대단히 좋아하는 그녀였지만 성경에는 손이 전혀 가지 않는
것을 어쩔 수가 없었다. 말씀을 읽지 않는 것에 대해 일말의
종교적인 죄책감이 일어야 정상적인 신앙인인데 아예 무감각한
상태가 너무도 오랫동안 지속되어 왔다.
인숙에겐 그런 자신의 신앙 불감증이
본인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무관심 그것이 그녀가 가진 최대의 문제였다.
그러던 그녀에게 변화가 오기 시작한 것은 삶에 끊임없이
닥쳐오는 어려움들때문이었다. 웬만하면 본인의 힘으로 문제들을
해결하려고 그녀는 기를 썼었다. 늘 역부족이었다. 뭔가
하나를 해결하면 또 다른 문제가 생기고, 그것에 대처해서
애를 쓰다보면 다시 더 큰 문제가 발생하곤 했다. 그녀의
삶에 그러한 위기가 닥쳐온 것은 처음이었다. 사람들은
다 그런 것일까. 인숙의 삶이 평탄하고 모든 것이 순조롭게
풀려나갈 때 늘 다정하게 그녀의 곁에서 즐거움을 나누던
친구들이 하나, 둘 떨어져 나가기 시작했다. 그녀의 남자친구도
예외가 아니었다. 죽을 때까지 모든 즐거움과 고통을 함께
하자고 굳게 약속했던 사이였다. 그도 그녀와
동일한 종교를 믿는 잘 생기고, 지적인 사람이었다.
'이 세상 누구보다도 믿음직스럽던
사랑하던 이마저 인숙을 버렸다!'
쯔나미가 밀려오는 듯 했다. 토네이도가 불어닥치는 듯 했다.
자그마한 한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환난이
그녀에게 닥쳐 이리 끌고 저리 끌고 하면서 그녀의 마음을
갈기 갈기 찢어 놓았다. 그녀는 죽고 싶었다. 도저히 그런
어려움 속에서 헤어날 길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어떤 방법을 택할까?
그녀는 고민 고민하기 시작했다. 더 이상 수치스러운 이생의
삶을 이어나가기 싫어졌다. 다른 이들을 대하는 것도 너무도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한강 다리에서 뛰어 내릴까,
손목을 자를까,
다량의 수면제를 먹을까
어느 배우처럼 목을 맬까
벼라별 고민을 다 하였다. 전화비가 두, 세달 밀리자
마치 범죄자 취급을 하듯 온갖 협박성의 전화와
편지, 문자 메세지가 날아 들었다. 이전에는 그런 것들은
문제도 아니었는데, 너무 지쳐있는 인숙의 영혼은 더 이상
자그마한 문제도 스스로 처리할 수가 없는 가엾은 상태에 달했다.
무릎을 꿇어라!
어디선가에서 음성이 들려왔다.
고개를 숙여라!
이리저리 살펴 보아도 그 음성의 주인공은 없었다.
아마 내가 잘못 들었나봐.
하고 인숙은 생각했다. 너무 고통스럽게 살다 보니
듣지도 않은 것을 들었다고 착각을 하고 있나보다라는
생각이 들자 그녀는 씁쓸한 웃음과 눈물을 동시에
웃고 흘렸다.
나는 죽어가고 있구나!
절망감이 그녀를 휩싸 안았다. 길이 없다. 나갈 수도
들어갈 수도, 먹을 수도 안 먹을 수도, 만날 수도
안 만날 수도 없는 아예 행동을 전혀 할 수 없는
자폐인의 상태로 이르고 있었다. 우울증은 또 전염병처럼
계절과 계절의 틈 사이로 교활한 웃음을 지으며 그녀의
몸과 영혼을 파고 들었다.
순종해라!
또 다시 음성이 들려왔다. 이번엔 아예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또 다시 헛 것을 듣는다고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아니 너무 피곤에 절어서 헛 것이 아니더라도 귀를
기울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성경을 읽어라!
눈이 번쩍 뜨였다. 성경을 읽으라고 누군가가 그녀에게
속삭이고 있는 것을 이번에는 분명히 느꼈기 때문이었다.
마지막 경고였다. 그녀에게 보내진 천사의 소리였다.
'성경을 읽어라, 내 딸아!
성경을 읽어라, 내 사랑하는 자야!
인숙은 길을 걷다가 그 즉시로 무릎을 꿇었다. 많은 사람들이
길을 가다 말고 그녀를 이상한 듯 쳐다보았다.
어디 아픈가!
맛이 약간 갔나!
뭐가 잘못됐나?
쑥덕쑥덕 서로 말을 주고 받으며 그녀의 곁을 지나쳐 갔다.
인숙의 귀에는 그들의 말이 전혀 들려오지 않았다. 자신의
절망적인 삶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희망의 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이젠 더 이상 다른 이들이 뭐라고 하든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그녀가 생각하던 것처럼 그녀에게
많은 관심을 갖지 않았다. 다들 자신의 삶을 살기에 바빴고,
각자 자신의 고민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신이 없었다.
문제가 없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인숙은 이를 악물었다. 말씀을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에,
기독교인으로서의 삶을 올바르게 살지 못했기 때문에,
다른 이들과 바른 나눔의 삶을 실천하는데 실패했기 때문에
문제들이 활화산처럼 타올랐다는 것을 그 순간 깨달았기
때문이다.
잘못했습니다, 주님!
용서해 주십시오.
죄인입니다.
제 손을 잡고 인도하여 주소서!
말씀을 읽겠습니다.
인숙은 거리에서 일어나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서점을 찾았다. 그녀의 집에는 성경이 여러 권 있었다.
그렇지만 인숙은 집에까지 갈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시간이 없었다. 천사가 전해 준 하나님의 말씀에
당장 순종하고 싶었다. 서점에서 성경을 한 권 사들고
나와 다시 길을 걸어가기 시작했다. 성경을 펴들었다.
잠언이 나왔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계속해서 성경을 읽으며 걸어갔다. 누가 옆을 스치며
뭐라고 하든 말든 읽어나갔다. 발이 가는대로 계속해서
걷다가 보니 절의 대문이 보였다. 다른 쪽으로 발을
돌리려는데 다시 음성이 들려왔다.
절에 들어가라!
절에 들어가라!
절에 들어가라!
그 음성이 너무도 강렬했기에 인숙은 거부할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절간으로 들어섰다. 수행자들의 모습이 많이
눈에 띄었다. 말씀을 읽지 않을 수 없는 강렬한 소망이
끊임없이 솟구치고 있어 성경을 덮을 수도 없었다. 성경을
읽으며 절 경내를 돌았다. 대웅전을 가운데 두고 수십 번,
수백 번을 돌았나보다. 잠언을 다 읽고, 시편을 읽고,
욥기를 읽고 전도서, 아가서를 다 읽은 것을 보면 말이다.
도를 닦는 곳이라 그랬을까. 아님 해탈하여 모두 부처가
되고 싶은 궁극적인 소망이 신자들의 마음에 다 있어서
그런 걸까. 인숙의 그러한 행동에 대해 누구도 크게
눈여겨 보거나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지 않았다. 으례
간절한 소원을 비는 불교 신자의 행위라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대웅전 주위를 끊임없이 돌면서 성경을 읽는 인숙의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도저히 말씀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주변에 교회 건물들이 많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성령은 그녀를 절로 인도하였다. 불자가 되라고
그쪽으로 보낸 것이 아니었다. 그저 그녀에게 깨달음을
얻으라고, 그녀의 모든 어려움이 신앙불감증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그녀는 그곳에 보내졌다.
늘 부끄럽기만 하고, 슬프기만 하고, 남을 너무 지나치게
의식하던 그녀에게 극적인 변화를 만들어내기 위해 그곳에
보낸 것이다. 세상 어디에 가도 하나님은 그녀와 함께 하신
다는 사실을 알 수 있도록 그러한 행위를 하게 한 것이다.
오랜 시간 탑돌이를 하듯 성경을 읽으며 대웅전 주위를 돈 뒤
벤취에 앉았다. 몸이 많이 피곤했다. 눈을 스르르 감자
다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나왔다. 회개의 눈물이었다.
대웅전 안에서 부처님이
인자한 눈빛을 하며 인숙을 쳐다보았다.
마치 그녀에게 따스한 미소를 보내고 계신 것 같았다.
인숙이 앉아 있던 벤취 주위가 환히 빛나기 시작했다.
하늘에서 천사들의 찬양이 들려왔다.
주를 찬양하라!
주를 찬양하라!
주를 찬양하라!
인숙은 다시 무릎을 꿇지 않을 수 없었다. 두 손을 모으고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그녀를 누군가가 보고 있다면
부처님께 기도를 드리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주님, 감사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벤취에 앉아 오랫동안 말씀을 읽어 나갔다. 아직도 약간
겨울의 찬바람이 느껴지긴 했지만 인숙은 개의치 않았다.
자신을 찾아온 주님의 은혜가 너무도 크게 느껴졌다.
죄인입니다, 용서하소서!
잘못했습니다. 불쌍히 여기소서!
구제불능의 인간입니다. 자비를 베푸소서!
기도를 드리고 일어나 다시 성경을 읽어 나갔다. 더 이상
주위 사람들에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시간과 공간은
그녀에게 더 이상 의미가 없었다. 어디에 있든 언제든지
말씀을 읽을 수 있는 마음밭이 닦였다. 말씀을 읽고, 듣고,
실천할 수 있는 믿음의 샘이 그녀의 영혼에서 흐르기 시작했다.
한 달에 한 번 이상 성경을 읽는 사람이 되었다. 그로부터
10년이 흘렀다. 이미 성경을 백 번이상 완독한 인숙은 이전의
그녀가 아니었다. 성경 말씀이 늘 그녀의 삶 속에서 살아 움직였다.
그녀의 말과 행동과 생각에 늘 말씀이 함께 했다. 작고 큰 결정을
하기에 앞서 말씀을 생각해 보고 기도를 드렸다. 그때마다 하늘에서
음성이 들렸다.
내 사랑하는 딸아,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네 기도와 소원을 들어주리라!
그녀는 고아들을 돌보기 시작했다. 심신에 장애가 있어 거동이
불편한 노인분들과 함께 하기 시작했다. 말씀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가지고 있는 모든 것들을 이웃들과 나누기 시작했다. 늘 고운 말로
다른 이들을 축복했다. 기도가 그녀의 입과 맘에서 끊이지 않았다.
말씀이 그녀의 손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녀는 성녀(聖女)가 되었다.
그녀는 의인이 되었다.
그녀는 진실로 하나님이 기뻐하는 딸이 되었다.
평생 그녀는 기독교인으로서의 신앙적인 삶을 죽는 순간까지 살았다.
천사들이 하늘에서 내려와 그녀를 수종들었다. 떠나야 할 시간이
되었다는 것을 직감했다.
오, 하나님!
감사합니다.
말씀을 주셔서 저의 삶을 변화시키셨군요.
너무도 냉랭하고 무관심하던 저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사랑해주시고 지켜주신 주님!
제 삶 속에서 영광을 받으셨기를 빕니다.
제 맘과 뜻과 정성을 다해
주님을 섬기고 사랑하였습니다.
이젠 제 영혼을 받으소서!
감사합니다
그녀는 이렇게 기도했다. 그것이 그녀의 마지막 기도였다.
내 사랑하는 딸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했으니
내가 너를 위해 금면류관을 준비해 놓았단다.
너를 위해 잔치를 마련하였다.
어서 오너라.
나와 함께 즐기자.
사랑하는 내 딸아!
너는 내 사랑하는 딸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그녀도 이전에는 세상 사람들의 의견에 늘 신경을 쓰고,
부끄럼을 많이 탔었다. 무언가 작은 일을 하려고 할 때에도
가족의 눈치를 보았고, 친구들이 뭐라고 할까봐 걱정했고,
낯선 사람들의 시선도 늘 의식을 하곤 했다.
그러던 그녀가 완전히 변했다.
교회를 나가긴 했지만 정말 건성으로 다녔다. 한 마디로 말해
Sunday Christian, 즉 일요일에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긴
했는데 월요일에서 토요일까지는 누가 봐도 기독교인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세속적인 삶을 살았었다. 믿음이 깊은
기독교인이라면 늘 기도를 하고, 성경을 읽고, 말과 행동이
기독교인으로서 부끄럽지 않는 실천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
허나 인숙의 삶은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책을 읽는 것을
대단히 좋아하는 그녀였지만 성경에는 손이 전혀 가지 않는
것을 어쩔 수가 없었다. 말씀을 읽지 않는 것에 대해 일말의
종교적인 죄책감이 일어야 정상적인 신앙인인데 아예 무감각한
상태가 너무도 오랫동안 지속되어 왔다.
인숙에겐 그런 자신의 신앙 불감증이
본인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무관심 그것이 그녀가 가진 최대의 문제였다.
그러던 그녀에게 변화가 오기 시작한 것은 삶에 끊임없이
닥쳐오는 어려움들때문이었다. 웬만하면 본인의 힘으로 문제들을
해결하려고 그녀는 기를 썼었다. 늘 역부족이었다. 뭔가
하나를 해결하면 또 다른 문제가 생기고, 그것에 대처해서
애를 쓰다보면 다시 더 큰 문제가 발생하곤 했다. 그녀의
삶에 그러한 위기가 닥쳐온 것은 처음이었다. 사람들은
다 그런 것일까. 인숙의 삶이 평탄하고 모든 것이 순조롭게
풀려나갈 때 늘 다정하게 그녀의 곁에서 즐거움을 나누던
친구들이 하나, 둘 떨어져 나가기 시작했다. 그녀의 남자친구도
예외가 아니었다. 죽을 때까지 모든 즐거움과 고통을 함께
하자고 굳게 약속했던 사이였다. 그도 그녀와
동일한 종교를 믿는 잘 생기고, 지적인 사람이었다.
'이 세상 누구보다도 믿음직스럽던
사랑하던 이마저 인숙을 버렸다!'
쯔나미가 밀려오는 듯 했다. 토네이도가 불어닥치는 듯 했다.
자그마한 한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환난이
그녀에게 닥쳐 이리 끌고 저리 끌고 하면서 그녀의 마음을
갈기 갈기 찢어 놓았다. 그녀는 죽고 싶었다. 도저히 그런
어려움 속에서 헤어날 길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어떤 방법을 택할까?
그녀는 고민 고민하기 시작했다. 더 이상 수치스러운 이생의
삶을 이어나가기 싫어졌다. 다른 이들을 대하는 것도 너무도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한강 다리에서 뛰어 내릴까,
손목을 자를까,
다량의 수면제를 먹을까
어느 배우처럼 목을 맬까
벼라별 고민을 다 하였다. 전화비가 두, 세달 밀리자
마치 범죄자 취급을 하듯 온갖 협박성의 전화와
편지, 문자 메세지가 날아 들었다. 이전에는 그런 것들은
문제도 아니었는데, 너무 지쳐있는 인숙의 영혼은 더 이상
자그마한 문제도 스스로 처리할 수가 없는 가엾은 상태에 달했다.
무릎을 꿇어라!
어디선가에서 음성이 들려왔다.
고개를 숙여라!
이리저리 살펴 보아도 그 음성의 주인공은 없었다.
아마 내가 잘못 들었나봐.
하고 인숙은 생각했다. 너무 고통스럽게 살다 보니
듣지도 않은 것을 들었다고 착각을 하고 있나보다라는
생각이 들자 그녀는 씁쓸한 웃음과 눈물을 동시에
웃고 흘렸다.
나는 죽어가고 있구나!
절망감이 그녀를 휩싸 안았다. 길이 없다. 나갈 수도
들어갈 수도, 먹을 수도 안 먹을 수도, 만날 수도
안 만날 수도 없는 아예 행동을 전혀 할 수 없는
자폐인의 상태로 이르고 있었다. 우울증은 또 전염병처럼
계절과 계절의 틈 사이로 교활한 웃음을 지으며 그녀의
몸과 영혼을 파고 들었다.
순종해라!
또 다시 음성이 들려왔다. 이번엔 아예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또 다시 헛 것을 듣는다고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아니 너무 피곤에 절어서 헛 것이 아니더라도 귀를
기울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성경을 읽어라!
눈이 번쩍 뜨였다. 성경을 읽으라고 누군가가 그녀에게
속삭이고 있는 것을 이번에는 분명히 느꼈기 때문이었다.
마지막 경고였다. 그녀에게 보내진 천사의 소리였다.
'성경을 읽어라, 내 딸아!
성경을 읽어라, 내 사랑하는 자야!
인숙은 길을 걷다가 그 즉시로 무릎을 꿇었다. 많은 사람들이
길을 가다 말고 그녀를 이상한 듯 쳐다보았다.
어디 아픈가!
맛이 약간 갔나!
뭐가 잘못됐나?
쑥덕쑥덕 서로 말을 주고 받으며 그녀의 곁을 지나쳐 갔다.
인숙의 귀에는 그들의 말이 전혀 들려오지 않았다. 자신의
절망적인 삶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희망의 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이젠 더 이상 다른 이들이 뭐라고 하든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그녀가 생각하던 것처럼 그녀에게
많은 관심을 갖지 않았다. 다들 자신의 삶을 살기에 바빴고,
각자 자신의 고민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신이 없었다.
문제가 없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인숙은 이를 악물었다. 말씀을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에,
기독교인으로서의 삶을 올바르게 살지 못했기 때문에,
다른 이들과 바른 나눔의 삶을 실천하는데 실패했기 때문에
문제들이 활화산처럼 타올랐다는 것을 그 순간 깨달았기
때문이다.
잘못했습니다, 주님!
용서해 주십시오.
죄인입니다.
제 손을 잡고 인도하여 주소서!
말씀을 읽겠습니다.
인숙은 거리에서 일어나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서점을 찾았다. 그녀의 집에는 성경이 여러 권 있었다.
그렇지만 인숙은 집에까지 갈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시간이 없었다. 천사가 전해 준 하나님의 말씀에
당장 순종하고 싶었다. 서점에서 성경을 한 권 사들고
나와 다시 길을 걸어가기 시작했다. 성경을 펴들었다.
잠언이 나왔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계속해서 성경을 읽으며 걸어갔다. 누가 옆을 스치며
뭐라고 하든 말든 읽어나갔다. 발이 가는대로 계속해서
걷다가 보니 절의 대문이 보였다. 다른 쪽으로 발을
돌리려는데 다시 음성이 들려왔다.
절에 들어가라!
절에 들어가라!
절에 들어가라!
그 음성이 너무도 강렬했기에 인숙은 거부할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절간으로 들어섰다. 수행자들의 모습이 많이
눈에 띄었다. 말씀을 읽지 않을 수 없는 강렬한 소망이
끊임없이 솟구치고 있어 성경을 덮을 수도 없었다. 성경을
읽으며 절 경내를 돌았다. 대웅전을 가운데 두고 수십 번,
수백 번을 돌았나보다. 잠언을 다 읽고, 시편을 읽고,
욥기를 읽고 전도서, 아가서를 다 읽은 것을 보면 말이다.
도를 닦는 곳이라 그랬을까. 아님 해탈하여 모두 부처가
되고 싶은 궁극적인 소망이 신자들의 마음에 다 있어서
그런 걸까. 인숙의 그러한 행동에 대해 누구도 크게
눈여겨 보거나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지 않았다. 으례
간절한 소원을 비는 불교 신자의 행위라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대웅전 주위를 끊임없이 돌면서 성경을 읽는 인숙의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도저히 말씀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주변에 교회 건물들이 많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성령은 그녀를 절로 인도하였다. 불자가 되라고
그쪽으로 보낸 것이 아니었다. 그저 그녀에게 깨달음을
얻으라고, 그녀의 모든 어려움이 신앙불감증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그녀는 그곳에 보내졌다.
늘 부끄럽기만 하고, 슬프기만 하고, 남을 너무 지나치게
의식하던 그녀에게 극적인 변화를 만들어내기 위해 그곳에
보낸 것이다. 세상 어디에 가도 하나님은 그녀와 함께 하신
다는 사실을 알 수 있도록 그러한 행위를 하게 한 것이다.
오랜 시간 탑돌이를 하듯 성경을 읽으며 대웅전 주위를 돈 뒤
벤취에 앉았다. 몸이 많이 피곤했다. 눈을 스르르 감자
다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나왔다. 회개의 눈물이었다.
대웅전 안에서 부처님이
인자한 눈빛을 하며 인숙을 쳐다보았다.
마치 그녀에게 따스한 미소를 보내고 계신 것 같았다.
인숙이 앉아 있던 벤취 주위가 환히 빛나기 시작했다.
하늘에서 천사들의 찬양이 들려왔다.
주를 찬양하라!
주를 찬양하라!
주를 찬양하라!
인숙은 다시 무릎을 꿇지 않을 수 없었다. 두 손을 모으고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그녀를 누군가가 보고 있다면
부처님께 기도를 드리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주님, 감사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벤취에 앉아 오랫동안 말씀을 읽어 나갔다. 아직도 약간
겨울의 찬바람이 느껴지긴 했지만 인숙은 개의치 않았다.
자신을 찾아온 주님의 은혜가 너무도 크게 느껴졌다.
죄인입니다, 용서하소서!
잘못했습니다. 불쌍히 여기소서!
구제불능의 인간입니다. 자비를 베푸소서!
기도를 드리고 일어나 다시 성경을 읽어 나갔다. 더 이상
주위 사람들에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시간과 공간은
그녀에게 더 이상 의미가 없었다. 어디에 있든 언제든지
말씀을 읽을 수 있는 마음밭이 닦였다. 말씀을 읽고, 듣고,
실천할 수 있는 믿음의 샘이 그녀의 영혼에서 흐르기 시작했다.
한 달에 한 번 이상 성경을 읽는 사람이 되었다. 그로부터
10년이 흘렀다. 이미 성경을 백 번이상 완독한 인숙은 이전의
그녀가 아니었다. 성경 말씀이 늘 그녀의 삶 속에서 살아 움직였다.
그녀의 말과 행동과 생각에 늘 말씀이 함께 했다. 작고 큰 결정을
하기에 앞서 말씀을 생각해 보고 기도를 드렸다. 그때마다 하늘에서
음성이 들렸다.
내 사랑하는 딸아,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네 기도와 소원을 들어주리라!
그녀는 고아들을 돌보기 시작했다. 심신에 장애가 있어 거동이
불편한 노인분들과 함께 하기 시작했다. 말씀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가지고 있는 모든 것들을 이웃들과 나누기 시작했다. 늘 고운 말로
다른 이들을 축복했다. 기도가 그녀의 입과 맘에서 끊이지 않았다.
말씀이 그녀의 손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녀는 성녀(聖女)가 되었다.
그녀는 의인이 되었다.
그녀는 진실로 하나님이 기뻐하는 딸이 되었다.
평생 그녀는 기독교인으로서의 신앙적인 삶을 죽는 순간까지 살았다.
천사들이 하늘에서 내려와 그녀를 수종들었다. 떠나야 할 시간이
되었다는 것을 직감했다.
오, 하나님!
감사합니다.
말씀을 주셔서 저의 삶을 변화시키셨군요.
너무도 냉랭하고 무관심하던 저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사랑해주시고 지켜주신 주님!
제 삶 속에서 영광을 받으셨기를 빕니다.
제 맘과 뜻과 정성을 다해
주님을 섬기고 사랑하였습니다.
이젠 제 영혼을 받으소서!
감사합니다
그녀는 이렇게 기도했다. 그것이 그녀의 마지막 기도였다.
내 사랑하는 딸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했으니
내가 너를 위해 금면류관을 준비해 놓았단다.
너를 위해 잔치를 마련하였다.
어서 오너라.
나와 함께 즐기자.
사랑하는 내 딸아!
너는 내 사랑하는 딸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