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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모의 추억. 정영숙 글

정문종 12 1189

고모의 추억. 정영숙 글


날 짜 2005.05.11 18:02

해마다 여름이 오면 지리산 자락에 계시는 고모로부터 연락이 온다.
“ 종호에미냐? 언제휴가 올끼고? 올 때 꼭 전화하고 온네이,,
고모의 가냘픈 전화 음성을 듣고 난 나는 그날부터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
발을 덤벙덤벙 헛짚고 다닌다.
그리고 마음은 고향산천을 향해 뛰어 다닌다.
아름다운 내 고향 함양.
지금은 수많은 사람들의 발자국과 쓰레기로 오염된 땅이지만
어릴 때는 감격스리 아름다운 산천이다.
우리 가족은 일주간의 휴가를 얻어 고모의 집을 향하여 버스를 탔다.
버스의 창틈으로 코를 간지럽게 하는 그윽한 풀꽃 향기는
온몸을 사그라지게 녹여 주었다.
뿐만 아니라 차창 유리알 사이로 필름처럼 돌아가는
고모의 소탈한 표정은 나로 하여금 무언의 미소를 짓게 하였다.
항상 인정덩어리를 손에 쥐고 계시는 고모를 만난다는 보고픔에
버스가 천천히 가는 것 같은 성급함이 왔지만,
가슴을 누르고 누르는 사이에 차는 고모의 집 입구까지 왔다.
“고모! 고모!,, 큰소리를 지르며 부르니까
밭에서 일을 하다가 달려온 고모는
“아이구 내 강생이 왔구나,, 하고 만나자마자 내 엉덩이를 톡톡 때린다.
아들딸이 결혼을 하여 손자까지 얻은 나를 보고 고모는 강생이라고 부른다.
그래도 나는 고모 앞에서는
강아지가 되어 졸랑졸랑 꼬리를 흔들며 돌아다니고 싶다.
고모는 작은 체구인데 키가 크고 잘생긴 아들을 넷이나 낳아
두 아들은 외국에 두 아들은 한국에 살고 있다.
며느리들이 어찌나 효성이 지극한지
보는 이로 하여금 기쁨과 시샘이 졸졸 흐르게 한다.
복뎅이 우리고모, 점심 식사 후
산 수박을 툭 쪼개어 나의 입에 넣어주며
“내 새끼 많이 묵어라이. 내 강생이 순하기만 했지 욕심이 없어서
만날 동생들 한테 뺏기기만 하고 , 아이 내 귀여운 강생이-,,
또 고모부가 참나무에서 따온 표고버섯을 맛있게 복아 주며
“새끼야, 많이 묵고 많이 커 라이,,라고 하니까
가만히 앉아 웃고 있던 딸이
참았던 웃음이 폭발하여 그만 밥상이 좀 어수선하게 되었다.
딸이 하는 말
“고모할머니는 엄마가 지금 몸무게가 몇 키로 그램인데 먹고 커라 합니까?,,하며
또 비식비식 웃었다.
다음날 그 다음날에도 토종꿀에다
약초, 약술, 열매 등을 따와서 입에 넣어준다.
또 얼굴을 쓰다듬어 면서
“ 내 강생이 어찌 그리 큰오빠를 쏙 빼 닮았을까!
나는 천국가신 오빠가 생각나면 강생이 사진보고 오빠를 부른다이 ,,
그 말에 나도 눈물이 핑 돈다.
어머니도 목멘 소리로
“그건 맞다. 좋호 에미가 꼭 오빠를 닮았지. 얼굴, 식성까지 꼭 닮았지”
칡넝쿨 걷어치우며 산길 깊숙이 들어가면 아무도 모르는 야외 목욕탕이 있다.
하나님과 우리들밖에 아무도 모르는 독탕 개울이다.
우리들은 여기가 -에덴동산- 이라고 즐거워하며 물장난을 치고 논다.
고모는 달콤한 향기 풍기는 꽃가지를 끊어와 나의 머리에 꽂아주며
“새끼야 우찌 이리 예쁠 꼬, 목욕 깨끗이 해라이- ,,
또 계곡을 타고 올라가면 피서객들이 텐트를 처 놓고 짚시 촌을 이루고 있다.
지리산 계곡의 물은 힘차고 맑게 흐른다.
나는 물살을 잡으며 올라 가다가 미끄러지고 넘어지고 하였다.
뒤에서 미심쩍어 따라오던 고모는 내가 발을 헛디딜 것 같이 느끼면 깜작 놀라
“아이구 업어줄까?,, 참으로 어이가 없어 배꼽을 잡고 웃을 지경이다.
겨우 40kg이 조금 넘은 고모가 70kg의 질녀를 업고 물살을 헤쳐 간다니...
내 새끼 많이도 컷 다며 엉덩이를 두드리는
고모를 몇 일간 보아오던 딸이
“고모할머니는 엄마만 너무 좋아 하는데 이모가 질투 내겠다,,며
미안 적어 하였다.
그 말에 공감이 같지만 낸들 막을 둑이 없어 정이 터저 나오는 대로 흘러버릴 뿐이다.
내일 떠나자는 약속을 한 우리 가족들은
6일간의 재미있었던 이야기를 도란도란 하였다.
그중 딸이 느끼는 바를 말하면서 엄마는 조금 반성해야 된다고 지적하였다.
왜냐하면 고모할머니는 엄마를 너무너무 사랑 하시는데
엄마는 조카와 질녀들한테 호랑이 같이 무서운 고모로 통하고 있으니
이번 기회에 깨닫고 고치라는 것이었다.
충고를 듣고 보니 맞는 것 같다.
나도 고모인데 조카와 질녀들은 나만 보면 무서워서 살살 피하고 말을 안 한다.
대학졸업을 한 조카들, 꼬막내기 조카들,
심지어는 한집에 살다싶히 한 여동생의 아들딸도 이모가 무섭다며 인사만 하고 나간다.
오늘날까지 한번도 그들에게 꾸중이나 작난 삼아 헛주먹도 올린 적이 없는데
왜 호랑이라는 별명을 가졌는지 몰라서 고모에게 문제를 풀 수 있는 방법을 물었다.
“고모 ! 나는 고모가 좋은데 조카들은 나를 피하거든요. 어찌하면 돼요?
내손에 가시가 돋친 것도 아니고
내 눈에 권총이 들어 있는 것도 아닌데 나만 보면 슬슬 피해 도망만가니,
아마 나죽고나면 울어줄 조카 놈들은 하나도 없을 것 아닙니까,,
하고 반 농담으로 물었더니 고모가 펄쩍 뛰며
“ 고 년 놈들이 피해? 네가 얼마나 순하고 좋은데,
어릴 때 좀 말이 없어서 내가 땅바닥을 치고 말을 시켰다만,
그래도 입을 열었다면 씨가 되는 말을 하여 요게 뭐가 되여도 될 것 같아
내가 얼마나 자랑을 하고 다녔는데,, 라며 열을 올렸다.
질문의 판단을 정확하게 하지 않고
그저 나를 어릴 때 업고 기른 사랑만 남아 내편만 들고 있으니
답 찾기는 어려웠지만,
말수가 적고 했다면 씨가 꼭 박히도록 했다는 그 냉정함이
나로 하여금 반성의 요지가 되었다.
이름모를 새들이 푸드득 푸드득 날고 밤이면
꾸르륵 꾸룩 시를 읊는 듯한 운율을 느끼게 하는 지리산 깊은 곳에,
여름이 오면 구름과 산이 한 몸 되여 어울리는 산 꼭대기에 살고
봄, 가을은 들꽃을 꺽어 면류관을 쓰고 다니는
-에덴의부부-인 고모부 내외는 겨울이 오면 마을로 내려와 장작불을 지핀다.
초록의 산과들은 내 영혼을 분홍빛으로 곱게 물들이고
돌 뿌리를 차고 가는 하얀 물살은 오염된 회색의 물을 깨끗이 정화시켰다.
낭만이 조개껍질처럼 깔린 고향의 정취를 가슴과 눈에 담고
우리는 숨이 막힐 듯한 도심의 생활터전으로 돌아왔다.
내년여름에 또 고모님이 오라는 정다운 음성을 들으리라 생각하고-.

이 글을 써서 수필집을 낸 3년 후에 고모와고모부님은 천국으로 가셨다.

*흐르는곡/정영숙시:내사랑 노래여 *소프라노/유미숙 *작곡/김종덕


12 Comments
정문종 2007.03.15 06:23  
  아름다운 내 고향 함양?? 이런 기막힌 우연이,,, 그래서 "우연은 필연과 공존하며 인연으로 얽혀 있다."는 말이 있나 보네요,,,(제가 서울에서 재수할때 생각해 낸 문구 입니다만,,,) 제 본적이 경남 함양군 수동면 우명리 797번지 (효리부락) 입니다,,, 물론 저는 거기에서 태어나지도 살지도 않았습니다만, 제가 본과 3학년때 혼자 되신 어머니가 지금도 거기에 살고 계십니다,,, 며칠전 부산 외삼촌 둘째아들 결혼식에 오셨다가 지금은 저희 집에 머무르고 계시지만,,, 반갑네요,,, 요즈음도 아버지 기일이나 명절때는 함양(효리)에 들리곤 합니다,,, 5남 1녀 가족모임 때도요,,,
김경선 2007.03.15 07:54  
  아이고 그래서 두 분의 넘치는 열정이
통하는군요. 고마, 영숙이 고모야 해보이소!
정영숙 2007.03.15 12:12  
  정문종씨! 함양군 효리라고요? 나는 함양군 지곡면 개평리가 본이고 정여창(일두선생님)의 16대자손이며 우리 할머니가 지곡면에서 살다가 기독교를 믿어서 배척을 당하고 수동면으로 이사를 와서 그곳에서 교회를 세웠지요. 지금은 개평에 교회당을 잘 건축하고 우리 숙부님이 고신총회장으로 은퇴를 하셨는데 어찌했던 학렬만 알면 내가 고모가 될지 할매가 될지 아니면 우리 아버지가 정순종이니까 아재가 될찌 모르지만 족보 이야기 써 보세요. 우리 고모이야기를 어디서 퍼 왔는지 기분은 좋네요. 꼭 책을 보낼테니까 주소를 써 주세요.
정문종 2007.03.15 13:00  
  저는 일두 할아버지의 17대손인데요 *^^* '순'자 항렬은 제 할아버지 항렬이고요, 아버지는 '상'자 항렬(나무 木)이라 아마 정영숙님과 같을것 같고요(제게 고모뻘 되겠네요,,,) 저는 '병'자(불 火) 항렬입니다,,, 광주에서 의대 다닐때 하동정씨 전국 유적지 순례때 제가 이곳의 안내를 맡은적이 있지요,,, 얼마전에 개평 종가집(일두 할아버지 고택)에 들린적이 있어요,,, 고모이야기는 가르쳐주신 '마산 MBC' 자유게시판에서 퍼왔어요,,, 집주소는 울산광역시 중구 우정동 선경2차 아파트 206동 701호 입니다,,, 방가방가~~ 고모 ~
정영숙 2007.03.15 18:07  
  맞아요. 우리오빠가 정인상. 동생이 진상. 사촌이 은상. 성상등 상자학렬이지요. 그르니까 김경선원장말처럼 내가 고모뻘 되는군요. 한번 만나면 좋겠는데---경남신문 체육문화부장도 하동정씨  조카뻘 되지요. 컴퓨터로 통하여 일가를 만나니 정말 기쁘기 한량없군요. 마산에 오든지 아니면 4월에 섬진강물에 배 뛰우려 오던지 한번 만났으면 좋겠는데---
정문종 2007.03.15 18:16  
  2007년 4월 14일 (토) 오후 5시 30분 하동에서 뵐 수 있을지,,, 매우 반갑네요,,, 큰아버지 성함이 정국상, 아버지가 정길상, 작은 아버지가 정인상 입니다,,, 지금은 모두 다 돌아 가셨네요,,,
오경일 2007.03.15 20:34  
  고모님 만남을 축하 드립니다!!!!!
내마노가 이산 가족 찾기의 광장이 되었네요.
저는 업어서 키워 주신 이모님이 항상 그리운데.
4월14일 하동이 축제의 장이 되겠네요.
정영숙 2007.03.15 21:32  
  특별한 일이 생기지 않는한 가겠어요. 2005년에 함양상림숲에서 정영창 서거 500주년 기념식에 전 가족이 갔다왔는데 깜짝 놀랐지요. 전국의 유림 할배들이 갓쓰고 앉아있는데 나는 기독교를 믿어 제사하고는 영? 아니지만은 볼만하더군요. 어릴때 원족가던 남계서원에도 가서 사진도 촬영하고 상림공원의 역사의 인물 흉상앞에 가서 고마우신 일두 조상님을 만져보고 사진 촬영하고 왔지요. 오빠가 하도 조상뼈를 자랑을 하여 일부러 부끄러워 숨겼는데 ---
김경선 2007.03.16 06:48  
  정문종님 덕분에 사랑샘공동체를 섬기시는 정영숙선생님께서
토요일 오후 시간을 내신다니?
설마 식구들(알코올중독자)을 다 모시고 오시는 건 아니겠지요?
제첩국 대접이야 쉽지만 어디로 사라질지?
정영숙샘, 지난 달 (내 사랑 노래여)를 불러 주신
우사무국장의 형님(우재기?)이 마산가곡교실의 촬영을 맡은
강정철(열린세상)이 작시한 (아내의 생일)을 불러 CD를 냈네요.
정영숙 2007.03.16 11:39  
  김경선원장님은 유머가 있어서 정말로 좋습니다. 아침에 읽어보고 박장대소를 했습니다. 강성기목사님 한테만 연락안하면 혼자갑니다. 어제저녁에 정문중조카의 글을읽고 가기로 결정을 하고 홈벵킹으로 회비를 보낼려고 했더니 서비스 시간이 늦었다며 꽝을 쳤어요. 아이고 송금료600원내느니 오늘밤에 가지고 가기로 맘 바꾸었는데 받아주죠? 15일까지 마감일이지만 생각은 15일 11시에 했으니까 통과되는거죠?
유미숙 2007.03.16 13:55  
  고향냄새가 물신나는 고모와 조카의 정이 흐르는 아름다운 글입니다.그런데 이글을  통하여 조카뻘 되시는 분을 만나게 되다니... 참 좋으시겠어요 사랑샘공동체일은 잊어버리시고 잘 다녀 오십시요
정영숙 2007.03.17 00:06  
  사모님, 기여이 여기 들어오셨네요. 여기 들어 오는 순간부터 한달에 한번 노래 부르러 와야됩니다. 사모님 그 잘하시는 노래실력 여기 들어와서 불러봅시다. 오늘 저녁도 너무 재미 있었습니다. 한달에 한번정도 음악으로 즐거운 날이 있어야 살맛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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