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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톤 윤치호 선생님

바리톤 0 1857
  학창시절 저에게는 두분의 스타 성악가가 계셨습니다. 그 두분은 테너 엄정행 선생님과 바리톤 윤치호 선생님입니다.  다른 청소년들이 대중가수인 조용필씨의 노래를 들으면 환호를 할 때 저는 이 두분의 노래를 들으면서 환호를 했지요. 하긴 지방에 살던 저에게 두분 외의 다른 성악가들의 노래를 들을 수 있는 기회는 거의 없었고 그나마 방송에서 왕성하게 활동을 하는 두분의 노래를 들을 기회 밖에 거의 없었기 때문에 어쩌면 두분의 성악가가 저의 마음 속에 오핸 추억으로 남아 계시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처음에는 엄정행 선생님에게 많이 열광을 하였습니다. 그분의 노래가 좋았다기 보다는 먼저 친근하고 사람좋아 보이는 엄정행 선생님에게 매력을 느꼈다고 하는 것이 솔직한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보이소프라노 같은 저의 음색이 테너인 줄 알고 열심히 엄정행 선생님의 노래를 따라 부르고자 하였습니다. 사실 그 당시 많은 청소년 성악도들에게는 엄정행 선생님의 독특한 창법을 모방하는 것이 하나의 유행이기도 하였답니다. ^^ 그런데 어느 날 고음에 약한 저를 발견하였습니다. 나중에 제가 성악에 입문하여 알고 보니 저의 목소리는 테너가 아닌 바리톤이었던 것입니다. 그것도 고음보다는 저음에 더 강한 바리톤 이었습니다(물론 베이스 바리톤에 속하는 것은 아닙니다. ^^). 보이소프라노 같았던 음색은 알고 보니 테너를 하고 싶었던 저의 의도적인 창법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제가 바리톤인 것을 안 후로는 엄정행 선생님 보다 윤치호 선생님에게  더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윤치호 선생님의 노래를 듣게 되었습니다.

  윤치호 선생님의 노래를 들으면서 저는 윤치호 선생님 또한 다른 성악가들 처럼 번듯하게 유학을 다녀와 이탈리아나 독일 음학원에서 받은 Diplom 혹은 MM(Master of music),를 소지하신 분으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제가 한창 윤치호 선생님에게 열광하고 있을 무렵에는 윤치호 선생님이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성악과 이외에는 다른 학위를 갖고 계시지 않았습니다. 물론 윤치호 선생님은 후에 국내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하셨지요. ^^  유럽에서 학위를 취득하지 않은 성악가가 외국에서 학위를 취득한 다른 성악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실력을 가진 것을 볼 때 윤치호 선생님은 정말 타고난 실력을 가진 성악가 인듯 하였습니다.

  윤치호 선생님과 엄정행 선생님은 어쩌면 그분들의 독특한 개성과 함께 많은 사람들의 비판의 대상으로 오르내리지 않았나 싶습니다. 성악에 입문한 후 몇년 간 철이 없이 엄정행 선생님을 비판했을 때 대학시절 한 선배님이 저에게 충고 한 마디를 해 주었습니다.

  "엄정행 선생님이 그 만큼 활동하여 한국가곡을 대중화 시킨 것은 정말 대단한 공로인 것이야."

    그말을 들은 다음 저는 눈에서 비늘이 벗겨지듯 엄정행 선생님을 다시금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참! 윤치호 선생님을 실제로 처음 뵈었던 고등학교 3학년 때가 생각이 납니다. 대전에서 매주 열렸던 MBC 청소년 가곡 무대에 방청을 갔을 때 심사위원으로 앉아계신 윤치호 선생님을 저는 맨 앞자리, 그러니까 윤치호 선생님과 1.5m 정도의 거리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기대하던 마음속의 스타와를 처음 보는 순간....하지만 저의 기대는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예상과는 다르게 자그마한 체구...그리고 윤치호 선생님의 하얀 메리아스가 뒤에 삐져나와 스타의 가장 솔직한 어쩌면 조금 적나라하다고 할 수도 있는 모습을 보게 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마침 방청석의 사람들이 웃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알고보니 심사위원 석에 앉아계신 윤치호 선생님이 무엇을 생각하시는지 고개를 오랫동안 끄덕 끄덕 하는 모습을 본 사람들이 웃음을 떠뜨린 것이었습니다. 방청객들의 웃는 모습을 발견한 윤치호 선생님은 당신도 겸연쩍은 미소를 보이셨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윤치호 선생님은 성품이 정말 털털하셨던 것 같습니다. ^^

  이 후 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하면서 저는 당시 한국 성악계의 거물급 인사들을 한 두번 씩 뵐 수 있었습니다. 연세 대학교 테너 박성원 교수님, 국제오페라단 단장 테너 김진수 교수님, 미남 성악가 한양대학교 바리톤 박수길 교수님, 서울대학교 테너 박인수 교수님 그리고 계명대학교 베이스 바리톤 김원경 교수님,연세대학교 바리톤 김관동 교수님 등 등 물론 무대위에서 이분들을 뵙기도 하였지만 그보다는 저의 지도 교수님의 배려로 혹은 오페라 함창단으로 참여했을 때 탈의실에서 이 분들의 모습을 옆에서 뵐 수 있었던 것입니다. ^^ 우연히 발견한 상의 메리아스 차림의 박수길 교수님은 정말 마음씨 좋은 옆집 아저씨 같은 인상 이었습니다. 물론 박수길 교수님은 정말 인품도 선하고 훌륭하실 뿐만 아니라 제자들도 무척 잘 가르치신다고 들었습니다. ^^

  제가 대학교를 졸업하고 10여년이 흐르다 보니 그 당시의 성악가들은 대부분 현역무대 위에서 뵐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얼마 전에는 박수길 교수님께서 정년퇴임하였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윤치호 선생님에 관해 인터넷 검색을 해보아도 윤치호 선생님의 근황을 알기가 어렵습니다.

  어린 시절 윤치호 선생님께서 모델로 출연하신 M커피 광고로 인해 저는 평생 커피 메니아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위염증세로 하루에 한 잔 이상 마시지는 못합니다.

  독특한 개성과 힘있는 목소리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윤치호 선생님...기회가 된다면 또 다시 윤치호 선생님을 뵐 수 있는 기회가 생기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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