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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분의 생신을 축하합니다. ^^

유랑인 3 752
전용 자가용으로 외출 준비 중이시네요.. 
윗마을 그 새로지은 집에서 포즈를 취하셨습니다.

지난 여름에 몇 회원이 아우 곰님과 갔었습니다.
그땐 벼도 많이 쓰러져 있어 걱정이 많으실때였지요..

목도강 매운탕  정성어린 농산물을 이것저것 챙겨주셔서
참 염치없고 감사하게 대접만 받고 돌아왔지요


게을러서 시기를 놓치고는 이 기회를 빌어 사진 올려봅니다.  괜찮지요?  ㅎㅎㅎ

전망이 너무 좋은 곳에서 이제는 행복하십니다.
시어머님도 같이 찍었으면 참 좋았을텐데요~~
오래 건강하세요~~




>내 나이 60에
>
>밤새 눈이 와서 온 세상을 하얗게 변하게 하였다.
>오늘 내 나이 60의 생일 .
>
>그제 일요일날 아이들이 미리 와서 이웃과 함께 미역국을 나누어 먹고
>오늘 정작 내 생일날에는 시어머님과 우리 부부가 밥상을 받고 보니
> 참으로 쓸쓸하기 짝이 없다 .
>어머니가 아침 식사를 하시면서
>“ 네 친구들 불러서 화투라도 하고 놀 아 라 ” 하신다 .
>마실 을 별로 안나가는 며느리가 쓸쓸해서 안돼 보이시나 보다.
>“쓸쓸하긴요 뭐 괞찮아요”
>그래도 어머니는 일찍이 경로당으로 마실 을 가셨다 .
>
>청소와 설거지를 마치고 TV 앞에 앉으니 만가지 상념이 떠오른다 .
>이루어 놓은 것 없이 벌써 인생 60고개를 넘어서니 한숨도 나오고
>지나간 세월도 함께 흐른다 .
>과부 시어머니를 만나서 울고 웃으며 살은 세월,
>참으로 야속해서 많은 눈물도 흘렸던 지난 세월이다
>우리 어머니는 17세에 시집오셔서 19세에 아들 하나 낳으시고
> 21세에 홀로 되신 청상 과부이시다 .
>칭칭 시하 어른들 밑에서 남편 없는 시집살이를 하신분이다 .
>남이 홀로 되었다고 처다 볼까 길을 가셔도 고개 한번 눈 한번 번쩍
>들고 다니지 않고 큰길을 비낀 뒷길로만 다니셨다 한다.
>홀시어머니란 이유로 친정 부모님의 극심한 반대를 무릅쓰고 아랫말서 윗말로
>시집을 오고 보니 그야말로 시어머니는 전형적인 과부 시어머니였다 .
>앉으라면 서야 했고 서라면 앉아야 하는 어느것도 눈에 차지 않는 며느리 였다 .
>친정에서는 손 귀한집의 맏딸로 손에 물 한번 안대보고 곱게 길러 고등 교육 시킨
> 신식 처녀였건만 .
>우리 아버지는 개명을 하신 분이라 딸도 능력껏 살아야 한다고 큰딸의 능력을 크게
>평가 하시어서 국회의사당이나 중앙청 또는 서울의 정부 주요  관청을 데리고 다니면서 견학을 시켜 주실만큼 사랑하고 기대가 크셨었다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배움의 허리가 짤렸지만 ...
>
>게다가 업 친 데 덥 친 격으로 남편은 믿고 맡긴  친구에게 배신을 당해
> 사업이 몽땅 망하는 지경이 되었다 .
>궁색한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산 나는 그야말로 지옥 같은 생활 이였다 .
>아궁이에서 나무하고 솥에서 쌀농사 짙는 너무나 알뜰한 어머니를 나는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
>사람이 먹기 위해 노력하는데 이리 아낄려면 무엇 때문에 이 고생을 하나 하고 .
>아침에 보리쌀에다 가운데 쌀 한 웅 쿰 얹으면 쌀밥은 시 할머니와 아기 주고
>어머니와 나는 보리밥을 먹고 저녁이면 죽이나 국수 아님 감자나 고구마가 주식 이였다 .
>악식을 먹어보지 않은 나는 고구마나 감자를 하나 먹으려면 김치 한 탕기에 물 한 대접을 먹어야 했다 .
>목이 메어서 넘어가지 않아서 눈물 반 고구마 반으로 때를 때웠다
>나는 차음에는 시집 식구들이 미개인 같았다 .어찌 저런 것으로 때를 외우나 하고 ...
>식사를 제대로 못해 젖이 안 나와서 아기는 밤이면 많이 울었다 배가 고파서 .
>쌀밥이 정히 먹고 싶으면 저녁에 친정집으로 나려 가면 아버지가 ,
>“ 얘 밥 먹어 !
>“먹었어요
>“  애에미가 제 그루 타냐? 먹어라 ”
>나는 눈치 안채게 하려 해도 눈물을 삼키며 쌀밥을 먹고는 돌아 왔다 ,
>밤 외출이 못 마땅한 시어머니의 눈총을 받으며 ,
>사업에 실패한 남편은 절망에 빠저서 매일을 밖에 나가 돌아다니다
>옷이나 갈아입으려고 들어오면 우리 어머니는 귀한 아들은 뽀얀 쌀밥을 지어 주신다.
>해서 우리 남편은 지금도 어머니와 아내가 그리 험한 음식을 먹고 산 줄을 모른다.
>남편이 한달에 5일정도 집에 와서 잠을 자면 그 이틀 날 새벽부터 우리 어머니는
>깨어지지 않는 것을 마당에 던지면서 욕 을 욕을 하신다.
>며느리와 아들이 한방에서 있는것에 화가 나시고 또 사업 실패해 가난해 진것에 화나고 .
>
>남편이 어쩌다 하루 집에 들어오면 언행이 매우 조심스러워 말씨도 줄게 되고
>무뚝뚝한 아내로 변한 내게 애교 없다고 남편은 불만을 하였다 .
>지나칠 만큼 효자인 아들에게 어머니의 이야기를 할 수가 없었다 .
>처음 시집 올때 남편이 내게
>“ 어머니가 이때 쓸쓸히 사셨는데 잠자기 전 에는 네 방으로 건너가지 말고 어머니와 함께 있으라는 ”말에 우리는 굴비 두름 역듯이 아이들과 함께 차례로 누워서
>“자고 가는 저 구름아를 ” 일편 이편 어머니와 서로 나누어 보았다 .
>우리 어머니는 공부는 안하셨지만 아주 똑똑하고 솜씨 좋으신 전형적인 양반가 아낙이시다
>그러다 남편이 돌아와서 내 방으로 돌아오면 다음날은 영낙 없는 벌 받는 며느리가 되었다
>그러나 나는
>“ 남편을 일찍 여윈 어머니가 이런 재미도 없이 살았으니 얼마나 불쌍한가?”
>하고 동기 부여를 하니 야속함은 그리 모르고 참고 살수 있었다
>마음에 없는 말씀만 하지 않으시면 살 것 같았다 .
>
>나는 가계에 도움이 될까 해서 보약 행상을 시작했다 .남편 몰래,
>허나 삼일 만에 남편에게 들켜서 뺨을 얻어맞고 함께 눈물을 흘렸다 .
>남의 집에 문전걸식을 하느냐고 남편은 섧게도 울었다
>허나 나는 도둑질 빼 놓고는 무엇이던 할수 있을 것 같았다 .
>다행인 것은 나는 일어 설수 있다는 희망을 잃지 않았다 .
>또 그 삶이 그리 비관적인 것은 아니였다 .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는 자기 체면을 열심히 걸고 살았다 .
>약을 한재에 5500원에 받아서 7000원에 파는것 이였는데 이웃 사람들이
>안 그럴 사람이 고생한다고 많이도 팔아 주었다 .
>가을에 수금을 해서 계산을 하니 농협에 채무를 거의 변제 할수  있었다.
>사업에 실패한 남편은 그때 농협에 50여만원의 부채를 갖고 있었다.
>지금 환율로 치면 1억원이 넘는 것이였다
>이런 일은 남자는 자존심 상해서 할수없는 일이라고 나는 생각 했었다.
>하늘도 노력하는 자에게는 복을 주시나 보다 ,우리는 그때 논이 780평 이였는데
>농사를 지으면 남보다 마지기당 한가마 정도는 더 나왔다 .
>고추 농사를 하면 평당 2근 정도 따서 남들보다 수확이 훨씬 많았다 .
>
>빗을 치루고 남은 돈을 우리는 양돈을 시작했다 .
>모돈 5마리에 애비 돈 한 마리를 먼 행주까지 가서 구입을 하였다 .
>참 재미나는 일이였다 .새끼 돼지가 얼마나 예쁜지 나는 하루 종일 축사 안에서
>생활 하다시피 했다 ,종일 축사 청소 ,새끼 돼지 예방 주사 놓고 ,새끼 유치 잘라주고,
>우리 세 식구는 아침 5시에 일어나면 저녁 9시나 돼야만 방에 들어 갈수 있었다 .
>허나 호사다마라 했던가 ? 새끼가 성돈이 되어서 팔려 나갈 때 쯤 이 되니 돼지 파동이
>일어서 값은 똥값이 되었다 .
>새끼돼지를 과수원에 파묻었네. 강물에 띄워 버렸네 .새끼가 서로 코를 꼬리를
>뜯어 먹었네 .연일 매스컴은 절망적인 방송 보도였다 .
>나는 종일 호수를 들고 돼지에게 물을 먹였다 .
>한 끼 먹을 수 있는 사료를 하루 두 번 아 침 저녁 나누어 먹이며 물이라도 먹으면 굶어 죽지는 않겠지 .
>사람 발짝 소리만 나면 돼지는 배고파 미친 듯이 소리를 질러대고 .
>이렇게 하다보니 3개월 반이면 출하를 하는 돼지가 6개월이 걸렸다 성장 속도가.
>헌데 이게 왼일인가 ? 마구 잡이 도살을 하던 돼지가 숫적으로 너무 적어서 값이 오르기 시작했다 .
>사료 한포대에 4800원하고 돼지는 한관에 300원해서 성돈이 될 때까지 한 마리가 먹는
>사료값은 6만원돈이고 돼지는 7500원정도 하던 것이 점점 올라서 종당에는 돼지 한관에 
>8000원까지 받는 웃지 않을 수 없는 사태가 생기고 말았다
>우리는 돼지를 파니 그동안의 사료 값 축사 건축비등을 제하니 10만원이 남는 계산이 되었다 .
>이듬해 다시 돼지 농사를 지어서 논을 500만원 주고 1000평을 장만하고 하다 보니 논이 5000여평을 장만 할수 있었다 .
>그러는 사이 이곳에서 우리 남편은 성실한 사람으로 추대 받아서 부도 난 농협의
>조합장을 4선 을 거처서 근 20년 가깝게 봉직하고 전국의 일등 조합으로 이루어 놓고 
>올봄에 퇴직해서 본연의 농부로 돌아 왔다 .
>그동안 미를 전하는 화장품 외판원을 13년하고 성실하게 살다보니 아이들도 모두 성실한
>젊은이로 잘 자라 주었다 .
>가장 고마운 사람은 우리 어머니다 . 젊어서 시집살이를 시켜서 야속한 눈물도 많이 흘렸지만 너무나 성실하고 근면한 어머니에게서 많은 것을 배우고 우선 참는 것을 배운 나는
> 할 수 있다는 의지를 얻을 수 있었던 것 같다 .
>지금은 내가 몸이 많이 불편해 활동을 제대로 못하니까 85세의 울 어머니 몸이 부서저라 며느리의 몫까지 하시느라 고생이시다,
> 좀 쉬시라면 외려 화내시며 죽으면 썩어질 육신을 살았다는 증거인데 왜 일을 못하게 하느냐고 하신다 .
>그간 어머니의 도움으로 이만큼 입에 밥풀칠을 하고 살게 되었음을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다 .
>이제 내 나이 60 , 정말 많이 산 것 같다 .
>하고 싶은 것도 많고 주체 할 수 없는 욕망에 괴로운 날도 많았으나 이제는 겸손하고
>내가 받은 것만큼 봉사하면서 살줄을 알아야 겠다 .
>
>한가지 나의 사는 방법중에 변한것은 마음이 많이 아플때면 노래를 계속 불렀는데 지금은
>그때처럼 노래가 불러 지지 않는다 .
>다시 이제는 파랑새처럼 즐거움을 노래하는 가곡 전령사가 되어야 겠다 .
>인생은 즐거운거라고 참고 살으면 해피한 일도 있다고 .
>
>지루한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
>
> .
>
>
3 Comments
산처녀 2005.12.14 17:28  
  어휴 거기 뚱뚱한 아즘마 누구예요? ㅎㅎㅎ
에이 창피해 . 들에 나갈려면 먼길을 걸을 수가 없어서 전용 자가용을 타고 나갑니다 .
농촌 주부들의 큰 발이랍니다
우지니 2005.12.14 18:42  
  아름다운 저 별장의 주인공은 누구실까?

저 위에 싸이카에 앉아 있는 아지매 정말 멋쟁이네.
아름다운 별장에서 영원히 행복하게 살게 할려고
구비구비 고생구비 걸어서 왔는가..

이제는 저 산위에서  평화로운 햇빛이
그대의 가정에 그대의 마음속에서
행복의 꽃이되어 아름답게 피어나고 있네요.



.
2005.12.18 03:53  
  함박눈 처럼 축원하네요...
세모의 영광 합께 하시길...
늘 과만한 스침을 주시네요

생신 축수드리며
글 막음 함입니다@@@

함 박 눈

눈이 내리오
하늘 튼 상처 새로
눈이 밤새워
무던히 어둠을 위로하느니

함박 눈이오
사랑은 연옥처럼 불행하다
타일러 이르듯
가슴꺼정 푹푹푹 쌓일것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