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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표 이야기> 민족 애환의 꽃 '봉선화'

별헤아림 4 1047
<우표 이야기> 민족 애환의 꽃 '봉선화' -옮긴글 (경향 뉴스 메이커 2005. 11. 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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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곡 '봉선화'의 노랫말은 '울밑에 선 봉선화야'로 시작된다. '울밑'은 '울타리 밑'의 준말이다. 지금은 도시의 주거 형태가 아파트거나 독립 가옥이어서 좀처럼 울타리를 볼 수가 없다. 지난 날 일제 강점기만 해도 우리네 앞마당이나 뜰에는 울타리가 엮여 있었다.

울타리 밑에는 영락없이 빨간 봉선화가 7월의 햇살 아래 더욱 상기되어 있었다.
어린 여자아이들은 봉선화로 손톱을 빨갛게 물들여 뽐내던 시절이었다. 민족의 애환을 노래했던 우리 나라 최초의 가곡 '봉선화'는 1920년 홍난파가 '애수'라는 바아올린 곡을 작곡했는데 여기에다 김형준이 노랫말을 붙여서 만든 것이다.

최근 우리 나라 가곡의 으뜸 가곡에 작곡가 김동진 씨의 '가고파'(이은상 시)가 뽑힌 적이 있다. 성악가 엄정행이 부른 '가고파'보다 '봉선화'가 상대적으로 방송을 타는 기회가 적었다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봉선화'는 민족 애환을 함께 물들이던 대표적 가곡임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지 않을까 싶다.

홍난파를 친일명단에 넣어 매도한다는 것은 엄청난 과오가 아닐 수 없다. 얼마 전 국민가수로 불리는 이미자와 조용필이 평양에서 한결같이 '봉선화'를 열창한 것은 예사로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된다.
1965년 1월부터 우리 나라 꽃들을 우표로 발행하면서 7월의 꽃으로 봉선화를 디자인에 담았다.

여해룡 (시인. 칼럼리스트) yhur4@hanmail.net
4 Comments
고진숙 2005.11.13 19:19  
  홍난파 옛집에서의 작은 음악회와 우표 '봉선화 이야기'가 한날에 어우러지게 읽을 수 있어 제격에 마춘 것같이 보인다. 
'봉선화' 혹은 '봉숭아' 가곡은 우리 가곡의 효시가 되었다. 그리하여 그 후에 생겨 난 동요, 대중 가요의 형님뻘이 된다.

홍난파가 친일이었다면 그가 최초의 한국 가곡을 이런 애국적인 시를 이용했겠는가? 잠시 가사를 살펴보면,

      "북풍 한설(北風寒雪) 찬바람에 네 형체는 없어져도......"
형체가 없어지는 봉선화를 일본에 주권을 빼앗긴 조국을 비유한 것이며,
    "...화창스런 봄바람에  환생(還生)키를 바라노라"
이는 조국은 반드시 광복할 날이 오고야 말 것이라는 민족의 굳은 의지를 보인 것이다.

이것만 보아도 그는 국민에게 용기와 희망을 불어넣어 준 남다른 애국자이다. '

친일 논란' 사이트에서 오숙자 교수가 말한 대로 당시 일본 당국의 위촉에 의해 작곡을 한 것은 생존 문제이며 그 예술가의 정신이나 영혼 문제가 아니다. 이를 값싸게 친일로 몰아서는 안 된다.

<봉선화에 얽힌 한 에피소드>

일제 강점하에서 소프라노 김천애는 전국은 순회하며 '봉숭아'를 불렀는데, 가는 곳마다 이 가곡을 들은 국민들이 조국 독립의 애국심을 불살랐다. 이를 안 일본은 '봉숭아'를 못 부르도록 금지령을 내리기까지 했다.

 '봉숭아'를 작곡한 홍난파는 구름 위로 뚫고 우뚝 솟은 태산이라면, 위촉 작곡 따위는 구름 밑의 소나기인 것이다. 높이 솟은 태산이 발 밑의 소나기 쯤이야 아랑곳없이 의연한  것이다.

일제 강점기의 예술 행위에 대하여 옥석을 가리되, 공로가 뚜렷한 예술인에 대하여 좀스럽게 지나간 올가미를 씌우는 것이 애국하는 마음인가를 곰곰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



 
달마 2005.11.14 04:31  
  아름다운 글...

- 홍난파의 생존시 마지막 사시던 <봉선화의 집>
그곳에 모이신 분
면면히 뿌리깊은 나무처럼
세상 참 아름답게 사시는분들 맞습니다 !
그럴겁니다 !!

선생님, 댓글 큰 가름에 큰 흐름이 보입니다 !
우리가 흑백론리로든 386 어린 이론으로 모든걸 자로 재어
자르고 정리하려는데 어지럽습니다.
원로의 큰 목소리가 그리운때입니다.
좋은 글에 뜻깊은 댓글 올려주신 제 선생님들

감사ㅡ드립니다... 


 <상한 영혼을 위하여> - 고정희 시

상한 갈대라도 하늘 아래선
한 계절 넉넉하게 흔들리거니
뿌리 깊으면야
밑둥 잘리어도 새순은 돋거니
충분히 흔들리자 상한 영혼이여
충분히 흔들리며 고통에게로 가자

뿌리 없이 흔들리는 부평초 잎이라도
물 고이면 꽃은 피거니
이 세상 어디서나 개울은 흐르고
이 세상 어디서나 등불은 켜지듯
가자 고통이여 살 맞대고 가자
외롭기로 작정하면 어딘들 못 가랴
가기로 목숨 걸면 지는 해가 문제랴




 
홍양표 2005.11.16 15:25  
  별헤아림, 진숙이, 달마, 달마? 달마가 남자이니 남자겠지요.
내가 자주 본 님인지?
아무튼 봉선화 그림올려주고 노래생각케 해주고, 그래서 또 불러보았습니다.
친일? 그후에 얼마나 변하고 깊어지고 올랐는가를 보고 용서, 높임으로 안아주어야 하는데. 김일성과 정일이까지 통일꾼으로 추앙하고  있는데.
홍난파 선생, 형님, 선구자를 존경합니다.
봉선화를 품고 있습니다.
여해룡 2005.11.21 11:27  
  봉선화를 통해 홍 난 파 선생님을 다시 그리워하게 되어,여러분들께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위의 "우표이야기"는 시사 주간지 "뉴스메이커"에 매주 게재하고 있는 것을 별헤아림 께서 올린 것입니다.고 진 숙
시인과 별헤아림은 저희들 모임의 한 가족 입니다.여러분들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