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잔 걸치고 싶다
언제부터인가 가끔은 마음에 맞는 친구들과 정담을 나누며
밤새도록 술을 마시고 싶을 때가 있다.
아직은 한 번도 그렇게 해본 적이 없고 여기에 주량도 공개할 수 없지만...
직장에서 만나는 직장 동료 외에 일주일에 두 번씩 만나는
7~8명의 남성동지들이 있는데 그들은 만나기만 하면 술타령이다
코가 비뚫어지게 마셨느니...
술에 맞아버렸느니...
술독에 빠져버렸느니...
그런데 그 중에 한 친구는 언제나 술을 한 잔 걸쳤다고 말을 한다
“ 대낮에 고향후배들과 소주 한 잔 걸치고....”
‘ 한 잔 걸치고’ 이 말이 너무 재미있어 써 놓았던 글을 여기에 올려본다
<한 잔 걸치고 싶다>
소주 한 잔 걸치고
이 짧은 한 마디가
박인희의 '목마와 숙녀'를 듣게 한다
소주 한 잔 걸치고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
한 잔 걸치고
술 한 잔을 배낭에 담아
어깨에 걸쳤을까?
가디건처럼 목에 감았을까?
걸쳤다는 게 무슨 뜻일까?
이제 보니 술도 걸치는구나
* - * - * - *
고향을 닮은
어느 민속주점 그 곳엔
우물가에
댕기머리 아이들이 그리워
표주박이 이리저리 뒹굴고
한 쪽 귀퉁이엔
인정이 드나들던 그 사립문이
열지도 닫지도 못한 채
버티고 섰다.
통로 옆 작은 선반 위엔
세상의 불의를
다 태워버리기엔 버거워
가느다란 심지 드러내며
깜박이는 호롱불
설날 아침이면 집집마다
복을 전해주던 복조리는
이제는 빈 가슴으로
쓸쓸히 놓여 있다
그 옛날
할아버지가 큰기침하며
하얀 연기 뻐끔뻐끔
품어내던 곰방대는
구레나룻 할아버지를 그리워하고
어머니의 한을 담아
또드락 또드락
두들기던 다듬이 소리는
지금도 내 가슴에
메아리 되어 울려 퍼지고
멍석, 망태, 지게, 항아리, 키는
향수병에 걸려
제 빛을 잃은 지 오래다
나는 그 곳에서
이마엔 이등병 계급장이 자랑스럽고
머리엔 간밤에 하얗게 내린
무서리를 이고도 무겁다 하지 않는
아름다운 친구를 만나고 싶다.
그 푸른 하늘같은
고향의 옛친구와
반달같은 모습으로 마주앉아
이른 새벽이라도
한 대낮이라도
지란지교를 이야기하며
국화향 가득한
그 작은 고향에서
가슴을 열고
이마를 맞대며
구수한 동동주 한 잔 걸치고 싶다
(2002. 9. 22. 추석 연휴)
**^^** **^^** **^^**
이제는 지난 번 서울에서 번개팅을 했던 친구들과
서울의 안암골에서 멋지게 술 한 잔 아니 몇 잔이라도
다시 걸치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