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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혹(眩惑)

열린세상 1 747
현혹(眩惑)

칠칠한 머리카락 밑에서까지
마음 놓기는 다 틀렸네.
사랑하는 사람아, 그대 달은 뺨 너메
바다 하나 햇살이 울어 내린다.

어느 알뜰한 사랑인들
죽은 이들은 못 다한 사랑,
머리카락 흐르듯이 햇살 되어
우리의 잘 안되는 사랑을 대신하는가.

그래, 언제토록을 그대 사랑하면서 사나,
우리의 사랑은 그 끝이 안 맞는 것을.
이사랑 이러다 만일
그대 먼저 가시면 어찌 될까.
그대의 조금은 설찬 사랑의 설움이 햇살 되어
미칠 만하게 나를 그 속에 안 비출까

그 생각하면 어지러웁네.



위의 시는 내가 즐겨 암송하는
박재삼 시인의 두 편의 시 가운데 하나다.
입에 구을려 쓴 것이라 틀린 곳은 없는지...
나는 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울음이 타는 가을 강” 도 좋아하지만
이 시 “현혹(眩惑)”에 더 현혹되었다.

오늘 그가 어려 자란 삼천포(三千浦)에서는
제10회 박재삼 문학제가 열린단다.
아, 벌써 무정세월은 그렇게 흘렀나 보다.

문득 그 소식에 나도 꼭 가 보아야겠다고 생각하였다.
고교 시절, 신구문화사(新丘文化社)에서 나온 한국전후문제시집(韓國戰後問題)을
헌 책방에서 구하여 읽으면서 만난 50년대의 시편(詩篇)들에
얼마나 많은 감동을 하며 수많은 날과 밤들을 가슴저려하였던지
지금 생각하면 꿈 같이 흘러 간 아스라한 세월 저편의 일이다.

책갈피 헤지도록 읽고 또 읽은 시들
입술에 달려있어 때도 없이 읊조리네.
그리워 알뜰한 정에 그대 찾아 가려네.

내가 직장생활 초년병시절에
그냥 재미삼아 투고했던 “샘터 시조란”,
“가을”이란 단시조가 박재삼 시인의 고름으로 실리고
난생처음 2,000원의 고료도 받아보았던 기억도 있다.
그것을 고르며 선후평(選後評)을 써 주셨던
그 옛날의 박재삼 시인을 잊을 수 없다.

그대를 기리는 이 나 만일까 하였더니
인왕산 그늘은 강동 팔십 리에 미쳐
오늘도 큰 집에 가득 따르는 이 뵈옵네.
1 Comments
열린세상 2007.11.03 09:50  
나는 어젯밤 문학의 밤 행사에 가서 박재삼 시 전집을 한 권 받아들고 참 행복하였다.
그리고 眩惑(현혹)을 찾아 보았더니 두어 줄 틀린 것을 확인하고 위 글을 수정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