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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아! 보고 싶다 1

바다 4 1140
아이들아! 보고 싶다 1

 눈을 감고 있으면 가끔은 생각나는 아이들
 오늘따라 유난히 보고 싶은 아이
 나는 그 아이를 만나기 위해 서랍장 첫째 칸에 보관된 17년 전의 편지를 읽으며
 17년 전으로 여행을 떠난다.

1986년도에  맡게 되었던 4학년 아이들을 추억하면 지금도 그 모습이 생생히
떠오르곤 한다. 그 당시는 학급 임원을 선출해도 성적이 거의 올 수에 가까운
아이들만 후보가 되고 뽑히게 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3월 초에는 학급 임원을 뽑게 되고 칠판 구석에는 후보자 명단이 3일쯤  공고가 된다.
 
그 중에 한 아이 위정량
눈이 쌍거풀이 지고  동그랗고 얼굴도 잘 생겼던 남자 아이.
수업시작 종이 울리고 5~6분이 지나면  화장실을 가겠다  물을 먹겠다는 등 살금살금 
몰래 기어 다니며 무언가를 하며 또 아이들을 괴롭혀 나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일이
너무나 빈번하여 신경을 곤두세우게 했던 아이

그 아이가 수업 중이나 쉬는 시간에 너무 피곤하게 하여 저 아이가 학급의 임원이 되면
절대로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고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그 아이의 기를 죽이기 시작했다.
  “너 같은 애는 임원이 되면 안돼! 담임을 이렇게 피곤하게 하고 학급 분위기를 해치는
  녀석이 어떻게 임원이 될 수 있겠니?”

 생활기록부에는 아버지는 중학교 국어교사에다 시인이셨으며 1남 3녀 중 막내였고
 어느 것 하나도 버릴게 없는 모범아이로 잘 기록되어 있지 않은가?  내가 잘못 본 것인가?
그 선생님이 잘못 기록한 것일까? 혼란스러웠다.
그런데 그 아이가 임원 선거하는 그 날 아침 후보를 사퇴하겠다고 하여 그 당시 내심으론
안심하였고 다른 아이들이 임원에 뽑히게 되었다.

 학부모회의가 열리는 날
뜻밖에도 예쁜 철쭉 한 그루가 리본에 그 아이의 이름을 달고 배달되었다.
그 아이가 하는 짓이 너무나 피곤하게 하여 그 아름다운 꽃조차 반갑지가 않았었다.
담임교사와 학부모가 빙 둘러앉아 대화를 하게 되는데 그 아이의 엄마와 대화를 하는
차례였다. 그 어머니는 의기양양하게 물어보는데 나는 그 동안 보고 느꼈던 사실을
죄다 말했더니 그 아이의 엄마의 얼굴이 붉어지기 시작하더니 바로 일이 있어 가봐야겠다고
일어서지 않는가? 지금 생각하면 그 뒤로 개인적으로 기분이 상하지 않게 할 수도 있었는데...

어느 날은 일기검사를 하는데 그 아이의 일기는 어느 아이보다도 문장구성력이 좋고
읽을수록 살아있는 글에 알찬 내용은 그냥 넘기기엔 너무나 아까운 일기였다.

  “오늘은 아주 좋은 일기를 여러분에게 읽어주겠어요. 많이 빼먹고는 썼지만 그래도
  잘 썼으니  여러분들도 듣고 참고하도록 하세요”

그 동안도 그 애는 참지 못하고 책상 밑에 기어 들어가 아이들에게 장난을 걸며 나의 눈치를
보며 별별 짓을 다하고 있는 것이었다.
수업 중이나  쉬는 시간까지도 내 눈을 거슬린 행동을 해 꾸중만 받던 정량이가 칭찬을 받다니.
순간 교실 분위기가 숙연해 지고 있었다.

그 다음 일기 검사를 하는 날 그 아이의 일기장에는 이런 글이 적혀 있었다.
  “ 나는 일기를 빼먹고 썼다고 꾸중할까봐 부끄러워 책상 밑에 숨었는데 뜻밖에도
    내 일기를 잘 썼다고 칭찬해 주시다니. 나는 앞으로 일기를 쓰지 않으면 죽는다는
    결심으로 일기를 하루도 빠짐없이 쓰겠다.”
나는 이 내용도 다시 친구들 앞에서 읽어주었다

그 다음엔 금년엔 상을 열 개 이상 받아서 담임을 기쁘게 해드리겠다고 쓰고
시험을 보면 시험을 잘 봐서 선생님을 기쁘게 하겠노라고 쓰고
상을 받으면 우리 선생님이 기뻐하시는 모습을 또 보고 싶어서 더 열심히 하겠노라던
그 아이.

매일 매일 일기장에 그 아이가 꼭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아주고 칭찬해주는 글을
날마다 써주게 되었으며 그 일기장은 그 애와 나와의 특별한 만남의 시간이 되고 있었다.
나는 그 아이의 일기를 읽는 기쁨에 그 애는 선생님의 답글을 읽는 기쁨에

그 아이는 자기가 일기장에 약속한 것을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을 하였고 10개 이상
받겠다던 상은 그 해 19개를 받았으며 글짓기상  과학포스터 학력상 등 받을 수 있는 것은
거의 다 받았다. 어떻게 생각하면 그 아이에게만 편중되지 않았을까 할 정도였지만 그건
결코 아니었다. 다른 아이들은 하기 싫어서 하지 못해서 못해오는 것을 그 애는 최대한의
노력을 하여 해 왔고 그 능력이  인정되었기 때문이었다.

음악시간에 스케이팅 왈츠를 감상하면 정말로 빙판 위에서 스케이팅을 하며 춤을 추는
것처럼 유연한 몸으로 흉내를 내고 바이올린 협주곡을 감상하면 어느 음악가보다
더 멋진 포즈를.
어쩌다 우리 민요를 들으면 그 유연하던 그 손놀림
그림자처럼 날 따라 다니며 나와 함께 호흡했던 그 아이
2학기엔 임원이 되어 누구보다도 더 솔선수범하며 아이들의 신뢰를 회복했던 아이

나중에 이 아이가 어느 정도 태도의 변화가 와 상승의 기쁨을 누리게 될 때 그때야
들려주던 부모의 이야기.  내가 말한  아들의 단점을 알고 부모로서 자식의 단점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듣는 순간 담임에 대한 불쾌감을 감추지 못했었다고 실토하며
어떤 선생님도 단점은 한번도 얘기하지 않아서 그냥 내 아들이 최고인줄만 알았는데
그 충격이 너무 컸으며 너무 고마웠다며 그 단점을 고쳐나가기 위해 매일 같이 손바닥에
쓰게 하고 쉬는 시간마다 읽어 그 단점을 고쳐나가도록 잘 이끌어 주신 부모님.

 일기장의 글을 같이 읽으며 아이를 격려하고 담임을 신뢰하고 이 다음에 청년이 되면
이 일기장의 글을 책으로 내주겠다고 아이를 끊임없이 가능성의 길로 인도하셨던
그 애의 부모님

플라나리아를 관찰하러 남평의 냇가로 체험학습을 갔을 때 불쑥 내밀던 도시락.
밤 10시가 넘었는데 우리선생님 점심은 자기가 싸가지고 가야 된다며 간절히 말하는
아이의 청을 차마 물리칠 수가 없어 준비도 없이 쌌으니 이해하라던 어머니의 이야기.

온 가족이 국화를 함께 기르며 그 국화가 반쯤 피던 날.
나보다 먼저 오셔서 교실에 놓고 가시던 그 분들.
선생님과 함께 하며 달라진 아들이 너무 사랑스럽다며 부부가 정중히 인사하던 모습을
잊을 수 없다.

나는 그 해 그 애의 일기를 읽는 기쁨 속에서 그 애가 나날이 자기를 찾아가며 발전하는
모습을 보고 행복한 한해를 보냈었다. 그리고 해마다 학부모 회의가 있는 날 여러 학부형들
앞에서 이 아이와 그 부모 이야기를 사례를 말하게 되는데 그 애는 내 교직 생활에 큰 보물로
남은 아이이다.
 
지금은 28살의 의젓한 청년으로 이 사회의 어느 곳에서 귀중한 주춧돌 역할을 하고 있을
정량이

정량아!
오늘 선생님은 17년 전 너의 빛바랜 세 통의 편지를 꺼내 읽으며 너를 만났단다.
선생님은 네가  정말 보고 싶구나

※ 약 5년 전에 정량이 어머니와 통화를 했는데 서울 공대를 다니다 군복무중이라는
  소식을 들었음

 
4 Comments
서들공주 2003.05.14 10:26  
  바다님은 참 부자십니다.
자신의 일을 그만큼 열정과 사명감을 가지고 하시는 모습이 참 아름답고 고귀해 보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스승의 가르침에 자라고 그 영향이 인생의 큰 밑거름이 됩니다. 
바다님처럼 훌륭하신 은사님을 둔 제자들도 부자이고,
소중한 아이들을 보석처럼 기억하고계신 바다님도 참 부자십니다.
저도 제 은사님께 전화안부라도 드려야 하겠네요. ^^
평화 2003.05.14 12:24  
  바다님!
아마도 선생님의 사랑과 칭찬은 아이들을 성장하게하는
에너지가 되나봅니다.
스승의 날을 맞아 바다님의 아름다운 사랑과 열정에
존경의 박수를 보내드립니다.
정덕기 2003.05.15 09:18  
  나에게도 바다님과 같은 은사가 계십니다.
1964년 경북 영천 청경초등학교 (지금은 이미 폐교가 되었음) 2학년 그 때 20대 초반의 여선생님, 이행로 선생님, 아무리 찾으려 해도 찾을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40년간 마음속에 간직한 나의 스승이십니다
음악친구 2003.05.15 09:32  
  17년전의 아이를 기억하고, 그 아이를 그리워하는 선생님

30년 가까이 교직생활을 하시면서 얼마나 많은 아이들을 기억하시고, 또 그리워 하시는가~

오늘은 스승의 날~!

몇년전에 배우고 간 학생이 꽃다발을 가지고 온다면 분명 제자들 기억속에 오래남는 훌륭한 선생님일 거예요

아마 오늘은 그리운 제자들이 바다님께 많이 찾아올거 같은 데요~ㅎㅎ

오늘 스승의 날을 맞이하신 모든 선생님들께 박수와 감사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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