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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쓰여진 시

고리오 0 1406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시인이란 슬픈 천명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를 적어볼까,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주신 학비 봉투를 받아

  대학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 들으러 간다.

  생각해 보면 어린때 동무를

  하나, 둘 죄다 잃어버리고

  나는 무얼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하는 것일까?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에 나,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 윤 동주 (1917~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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