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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구름 단상

꽃구름언덕 3 1731
가을구름 단상 꽃구름언덕

은빛 이슬이 풀 섶 위에서 아직 살아지지 않은 시간이이다.

어젯밤 그리도 푸르던 달빛을 받았는지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저리 곱게 웃는 청초함에 겸허를 배우며 매일 다른 기분으로 집을 나선다.

먼데 산자락엔 아침노을이 비단실처럼 깔려있고 흰 구름이 군데군데

해안선 같은 하늘가에 정박한 배 모양을 하고 있다.

대지는 아직 들끓고 있지만 가녀린 듯 하면서도 강인한 들꽃들의

단아함에 가슴시린 가을을 본다.

유난히도 무더웠던 여름이 빨리 가기를 바라고 또한 오는 듯 하면 하면 가버리는

가을이 아쉬워 일찍부터 구실을 찾아 미리 가을 구름이라 이름 지었다.

가을이 오면 구름이 예전 같지 않다.

밤이면 온 산천을 떠들썩하게 풀벌레들의 교향악이 조화로운 조물주의

지휘로 연주되어도 버드나무는 은빛으로 잠들건만 밤송이는 속살을

찌우며 달빛을 받고 영그는 시간이다.

짙푸른 감나무의 푸른 열매가 진홍색이 되는 것은 작열하는 태양보다

가을밤 가을달빛 때문이 아닌가 여겨질 때도 있다.

동해바다를 거꾸로 놓은 듯한 가을 하늘엔 변화무쌍한 소백산의 구름이

과수원 위를 지나면서 결실을 박수하는 가을색이다.

산 꿩이 여름내 키워온 제 새끼 다섯을 데리고 꽃구름

내려않은 도라지 밭 사이로 유유히 노니는 이 고즈넉한 산골엔

유난히 구름이 모양을 오래 간직하지 못한다.

가을바람 때문이다. 가을 구름은 이 영그는 대지에 충만한 결실에 힘을 더해준다.

적당히 가려주기도 또 적당히 태양을 받게 하기도 하면서.......
.
이른 아침 차 소리에 살찐 산토끼가 사과가 익어가는 나무사이로

꼬리를 감추고 달아나는 마을을 지날 때 마다 물야라는 면 어귀에

날마다 눈여겨보는 옹달샘 하나 있다.

솔숲사이로 가을이 색 색깔로 내려앉을 채비가 한창인데

파르스럼한 안개 사이의 옹달 샘물을 길어 올수가 없다.

가을 구름이 떠 있는 저 샘물!

들국화 물결치던 내 유년의 추억을 빛바랜 채 간직하고 싶은 마음에서이다.

무슨 그리움 같은 감정을 지우고 싶지 않아 친구의 흰 나래 같은 사연들을 내 기억의

페이지에서 지우고 싶지 않아 그 샘물을 길어 올수가 없다.

모두 가을이기 때문이다.

가을에 충만이 내게 있는가?


이 깨끗한 가을 구름 아래서 무었을 거둘 것인가?

길섶에 조그마한 강아지풀에도 단풍이 들면서부터 씨앗이 영글기

시작한다. 왜 이 가을에 나는 이리도 처절한 빈손인가?

버려야 할 것 들을 놓지 않으려는 연고로 내 손에 가까운


축복을 잡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무심한 저 가을 구름을 보며 정직한 답을 해야 하리라.


너무 염치없이 가을을 맞는 것이 자꾸만 부끄러워진다.

하늘엔 또 하나의 바다가 생기고 파도 같은 가을 구름이 인다.

내 가슴에도 오늘부터 바다를 하나 만들어야겠다.

분주했던, 고뇌했던 일상사들 어리석고 허물진 마음들

포용하고 지우고 다독이는 말없는 하늘이 되고 싶어라



자그만 여울목에 비친 가을 구름 사이로 가재가 한가로이

청청한 다래넝쿨 아래 쉬고 있다.

가을의 가을다움은 비취빛하늘과 함께 가을 구름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 여름 천둥번개를 동반한 먹구름은 이제 저리도 순한 양떼구름으로

새하얀 뭉게구름으로 어느 때엔 노을에 비낀 비늘구름으로

유유한 가을 구름을 보노라면 그 순간만큼은 이기심과 사심 없는

순수에로 돌아가게하는 신비한 매력에 빠져든다.

옹달샘 주위로 낙엽이 지고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지면 바라만 보던

가을구름 떠 있는 샘물을 필경 길어 오리라.

남모르는 행복감으로.......

오늘부터 출근길에 더 자주 가을 구름을 보며 저 옹달샘 물을 보며

여름내 분주하게 방치한 영혼을 씻어 슬프도록

아름다운 갈꽃 들을 부끄럼 없이 바라보아야겠다.




3 Comments
장미숙 2004.09.30 12:07  
  섬세한 감각의 이 아름다운 가을단상을 읽은 후
소백산 아랫마을 풍경이 그림처럼 펼쳐집니다.
가을 하늘의 구름은 가을 바람으로 제 모양을 유지하지 못한다는
말씀을 생각하며 가을 하늘을 자주 올려다 볼 것 같아요~
우지니 2004.10.02 23:19  
  그 어느 계절보다 더 아름다운 가을의 구름과 자연의 신비로움을 자상하고 생동감있는
이 가을의 예찬론에 감격스럽습니다
그리고  "저 구름 흘라가는 곳"  언제 들어도 변함없이 좋은 음악까지 함께하여 들려주시
니 고맙습니다.
옛날에 43년 전에 우리 반 친구가 이 노래를 너무 잘 불렀거든요.
지금도 그 기억이 새롭네요.
꽃구름언덕 2004.10.03 12:04  
  장미숙시인님!우지님! 늘 인정스레 말씀해 주셔서 감사해요.
필설로 이 예쁜 가을을 다 표현할수 있다면 엄마나 좋을까요?
오늘도 너무나 맑고 푸른 가을 하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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