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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6월 - 테너 김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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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11.05 인천 출생

■ 학력
1962 서울대 음악대 성악과 졸업
일본 무장야음악대(武藏野音樂 부쪼노옹가꾸대) 성악
일본 무장야음악대(武藏野音樂 부쪼노옹가꾸대) 대학원 수료

■ 경력
1970 오페라 AIDA에 RADAMES역 출연
1974 오페라 OTELLO에 OTELLO역 출연
1974 제1회 독창회 개최(귀국독창회)
1975 오페라 RIGOLETTO에 DUCA역 출연
1975 서울시립교향악단과 협연
연세대 음대 성악과 강사
1976 계명대 음대 성악과 조교수
1981 국립오페라단 단원
1987 현대오페라단 단장
1977 오페라 DONCARLO 에 DONCARLO역 출연
1977 레코드 독집 이태리가곡집 출반
1978 오페라 카르멘에 DONJOSE역 출연
1979 레코드 독집 물망초 출반
1980 레코드 독집 태양의 나라 출반
1981 자유중국 대북시에서 오페라 리골레토에 DUCA역 출연
5개국 합동공연 LUCIADILAMMERMOOL에 EDGARDO역 출연
1982 오페라 LATOSCA 에 CAVARADOSSI역 출연
1983 오페라 춘향전에 이도령역 출연
1984 오페라 PAGLIACCI에 CANIC역 출연
1984 오페라 ILBARLLOINMASCHERA에 ALMABIVA역 출연
1985 오페라 UNBALLOINMASCHERA에 RICARDD역 출연
JOINT RECITAL (김윤자 김진원) 개최
1986 오페라 LERSIRD AMORE에 NEMORINO역 출연
이탈리아 고전가곡집 출판(태림사 200곡집)
1987 이탈리아 고전가곡집 출판

■ 작품
이탈리아 가곡전집(200곡)

김진원 선생님의 연주곡 모음


'Gigli는 죽었어도 노래는 살아있다' 라고 이태리 로마에서 테너 김진원의 노래를 듣고
Beniamino Gigli와 함께 연주를 하였던 지휘자 Maestro Moreli의 말이었다. 또 Gigli와 함께
그가 지휘한 오페라 "Cavallelia Rusticana'를 들려주면서 격찬을 아끼지 않았다.

1908년대 초 주한 이태리 대사로 있었던 Costa대사는 그의 노래를 듣고 이태리의 국경일이
되면 매년 대사관에 그를 초청하여 축가를 부르게 하였다. 그리고 테너 김진원을 소개하면서 '이 사람은 동양사람처럼 생겼지만 이태리사람이며 이태리에서도 나포리 사람이다'라고 하면서 웃곤 하였다. Costa대사는 그를 나포리 주지사에게 추천하여 주지사에게 직접 노래를 듣게하였다. 주지사 일행은 즉시 이태리로 가자고 제의하면서 높은 연봉을 제의하였다. 그러나 그는 이태리로 가지 않았다. 테너 김진원은 그때를 이렇게 회상한다. '나는 한국사람이며 앞으로도 한국사람일 뿐이다. 따라서 이 곳 나의 조국에서 우리 민요와 더불어 살리라'고 하였다.

그는 이미 나와 함께 뜻을 같이하여 우리 민요를 Bel Canto창법과 접목시켜 서양기법으로 세계화하는 연구를 하며 발표해 왔던 터였다. 우리 민속음악의 농현은 세계에서도 독특한 기법이며 연주가에따라 서로 달리 표현할 수도 있다. 때로는 미분음을 구사하는데 약간 낮게도 부르며 반대로 높게도 노래할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절대음을 추구하는 서양음악에서는 금기사항이지만 우리 민요는 그런점에서 자유롭다. 그는 그러한 농현을 잘 알고 그의 독특한 창법으로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는 유일한 성악가이가. 테너 김진원의 노래 중 특히 정선아리랑, 이별가, 挽歌(상여소리)등을 들어보면 가슴이 뭉클해진다. 외국의 어느 성악가가 우리민요를 이토록 애절하게 노래할 수 있을까... 수 십년 전부터 우리 민요를 나와 함께 우리민요 보급에 뜻을 같이한 것도 그의 집념과 남다른 예술세계를 느꼈기 때문이었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고 생각하면서 이제 이 노래들이 한국은 물론 서양에서도 징검다리가 되어 세계적으로 불려질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2003년 9월 작곡가 최영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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