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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제물이 된 4월의 아가들(양양산불을 보고)

바다 5 1317
번제물이 된 4월의 아가들
(양양산불을 보고)

박 원 자

살려달라는
단 한 마디 비명도 못 지르고
산 채로 선 채로
피지도 못한 채 그 자리에서
번제물이 되어버린 4월의 아가들
이 봄에 피어나려고
밤마다 푸른 꿈을 꾸며
때로는 모진 눈보라 강풍에도
고뇌하는 수도승처럼
그 여린 몸으로 이를 악물고
간절한 가슴조림으로
긴 밤을 하얗게 지샜을 그 아가들
한 여름 태백산맥 골짜기에서
새살거리며 흐르던 맑은 물은
동해바다로 서둘러서 흐르더니
용광로처럼 타오르는 그 시뻘건 불길에
제 영혼까지 타버리는 아가들을 보고도
성난 분수처럼 솟아올라
화마와 싸워 이겨야만 하는
제 본분을 잊은 채 돌아오지 못하고
시커먼 잿가루가 되어 뒤섞여버린
비목도 못 세우는 그 산에서
하늘은 오늘에야
때늦은 회한의 눈물을 질금질금 흘리누나
산 채로 선 채로
피지도 못한 채
그 자리에서
이름도 모르는 제사의 번제물이 된
4월에 간 어린 영혼을 위해
(2005. 4. 6)


5 Comments
이니 2005.04.07 23:26  
  정말 몸서리 쳐지게 무서운 화마가 휩쓸고 갔습니다.
서로 앞다퉈 새싹을틔우는 연록색 나뭇가지가 아름다운
이봄에 웬일입니까.......

장미숙 2005.04.08 11:07  
  바다선생님의 이 마음!
아마도 온 국민의 마음이지요~
해야로비 2005.04.08 12:55  
  가슴 저리도록...아픔이 말을 잊게 합니다.
현규호 2005.04.08 22:34  
  그래서 사월은 잔인한가 보다
그래서 목련이 더 화사한가 보다
그래서 바다가 더 아련한가  보다
바다 2005.04.09 07:42  
  강원도 양양지역의 산불을 보고
아브라함이 이사악을 제물로 바치는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아버지! 불씨도 있고 장작도 있는데,
번제물로 드릴 어린양은 어디에 있습니까?"
"얘야! 번제물로 드릴 어린 양은 하느님께서
손수 마련하신단다."

.........
묘한 갈등과 함께 가슴이 저려오는 아픔을 겪고 졸글을 썼습니다.

말레이지아의 이니님!
산불로 동병상련을 앓으신 장미숙 시인님!
모든 일에 따뜻한 애정을 담은 눈으로 함께 하시는 해야로비님!
그리고 이 곳에서 첨으로 글로 만나는 현규호님!
감사드리며 내마노에서 언제나 함께 하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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